‘최진실법’과 우울증
2008년 10월 12일 일요일
심리학자 김태형
자살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 보건복지가족부의 국감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34명씩 자살을 해, 한국은 200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2명을 더블스코어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당당하게 자살율 1위를 차지했다.
2000년에 6437명이었던 자살자는 연평균 13%씩 증가해 2007년에는 1만 2174명으로 늘어났다.
8년 만에 무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자살자의 급증은 한국사회가 점점 지옥 같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인데, 더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 하며 자살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자기 호주머니에 돈을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병든 한국사회를 하루빨리 개혁하지 못하면 이 사회가 한국인 모두에게 자살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자각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자살을 하던 34명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던 정부와 매스컴은, ‘최진실’이라는 유명인이 자살을 하자 온 세상을 들쑤셔대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MB 정부는 최진실 씨가 자살하자, ‘이게 왠 횡재냐’라고 반색하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를 빌미로 자신들을 괴롭히던 인터넷 언론을 탄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MB 정부는 그 이름 하여 ‘최진실법’을 제정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MB 정부의 주장은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도록 명령했던 진범은 그냥 놔둔 채 방아쇠를 당긴 말단 사병에게만 죄를 묻는 것과도 같다.
왜 그런가? 인터넷 악플로 인해 최진실 씨가 자살을 결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인터넷 악플이 타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인터넷 악플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임상심리학에 대한 지독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상일 뿐이다.
자살은 대부분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장기간 동안 진행되어 온 우울증의 결과이다.
따라서 인터넷 악플 등은 자살의 촉발요인에 불과한 것이다.
시청 앞을 촛불로 가득 뒤덮은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피켓을 들고 나왔지만 자살은커녕 더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물도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비록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인터넷 악플러를 살인범으로 지탄하는 것은, 오랜 시간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자기 혼자 먹음으로써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준 행위만 처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인터넷 악플의 뒤에는 마치 공수부대를 광주로 몰아넣었던 주범처럼 배후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배후세력’을 너무나 좋아하는 MB 정부는 기립박수를 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부터 현 정부를 위해 그 배후세력을 알려주기로 하겠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을 첫 손에 꼽는다.
우울증의 원인은 내면에 누적된 분노감정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악플의 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 역시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과 동일한 ‘분노감정’이다.
마음속에 분노가 심하게 쌓여있는 사람들에게 익명의 인터넷 공간은 그 분노를 마구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잔인하고 냉소적인 비난이나 욕설을 퍼부어댄다.
또한 타인을 공격하거나 깎아내리기 위해 근거 없는 내용으로 남을 헐뜯기도 한다.
이렇게 최진실 씨를 자살로 내몬 것도, 인터넷 악플러를 양산한 것도 ‘분노감정’이라면 최종적인 배후세력은 바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을 매우 화나게 하는 어떤 것 혹은 사람일 것이다.
누가,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게 할까?
남녀노소를 모두 약육강식의 게임과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고 있는 이, 부자들 편만 들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린 이가 바로 자살자와 인터넷 악플러를 양산하는 최종적인 배후이다.
이 정도 힌트면 MB 정부가 능히 배후세력을 체포하리라 믿는다.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자살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과거에 영화배우 이은주 씨의 자살도 그랬지만 최진실 씨의 자살도 예방이 가능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정신과 약을 복용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데 그치지 말고 좀 더 심도 있는 치료를 받았어야만 했다는데 있다.
생물학주의를 신봉하는 심리학자들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의 고장’으로 보기 때문에 그 치료도 약물로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뇌 과학적 연구에 기초해 개발된 상당수의 약은 정신질환의 증상을 억제하거나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의 효과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어떤 효과적인 약물도 정신병을 완치시킬 수는 없음을 증명해왔다.
그 이유는 정신질환이 본질적으로 뇌 고장이 아니라 ‘특수한 개인사’나 ‘병든 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의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정신병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약물을 투여해 순간적으로 증상을 현저히 완화시키더라도 병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은 대부분 재발한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 이은주 씨나 최진실 씨가 자살에까지 이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약물이 정신병의 ‘증상을 억제하고 완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정신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울증 약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울증의 증상을 억제하거나 완화시킬 뿐 우울증 자체는 치료하지 못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대중매체에서‘우울증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정신질환 중에 우울증이 가장 치료하기 쉽다’는 따위의 망언을 버젓이 하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이런 거짓선전에 속아 정신과 약을 열심히 사먹으면 제약회사는 살찌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병을 고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질환이 약으로 완치될 수 있다는 거짓주장은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이들에게서 치료적 기회를 박탈하는 심각한 반사회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이 있었던 이은주 씨나 최진실 씨는 단지 정신과 약만 먹을 게 아니라 실력 있는 전문가에게 장기간 심리치료나 분석을 받았어야 했다.
유명인들의 자살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아쉽다.
첫댓글 공감합니다....아이들에게 최진실이 죽은 이유는 마음을 열지 못해 아픔이 쌓인거라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엔 어린 아이들때 부터 분노감정을 쌓기 시작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