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찾은 고향
올해 장마가 마침표를 찍으려는 칠월 하순 화요일이다. 어제 오후 고향을 지키고 계신 큰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통화를 나누었다. 엊그제 서울 올라가 지병을 치료받은 주치의를 만난 이야기보다 다른 일거리가 생겨 통화가 길어졌다. 고향에는 선산이 2구역인데 그 가운데 고조 증조와 숙부님 산소 일대에 멧돼지가 출몰해 봉분을 심하게 파헤쳐 놓아 수습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로 내 고향 마을에서도 멧돼지로 골치를 꽤나 썩고 있다. 산골이라 벼농사를 짓는 들판과 함께 과수원과 밭뙈기에 여러 작물을 가꾸는 복합 영농이다. 고추나 참깨는 짐승으로부터 피해는 받지 않는다. 콩은 고라니가 좋아해 집 근처 밭에다 심어야 녀석이 나타나지 않아 온전했다. 고구마와 옥수수는 멧돼지가 민가까지 바싹 내려와 설쳐대 신경이 쓰였다.
멧돼지는 곡식에 피해를 주는 선을 넘어 산소 봉분을 파헤쳐 놓기 일쑤다. 조부와 부모님 산소도 멧돼지가 여러 차례 주둥이로 봉분을 뭉갠 적이 있었다. 피해를 계속 지켜볼 수가 없어 자동으로 감지 센스가 작동해 벨을 울리는 기둥을 설치했더니 더 이상 피해는 주지 않았다. 그런데 고조 증조와 숙부님 산소는 그 장치도 무용지물로 만든 거구의 멧돼지가 출현한 모양이었다.
아침 이른 시각 같은 생활권에 사는 작은형님과 함께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남강을 건너 의령 관문으로 들어섰다. 퇴직 이후에는 평일에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고향을 찾아 내가 집안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행복으로 여겨도 될 듯하다. 내가 고향을 찾을 때는 동창회가 아니라면 친구들과 만남은 자제하고 순수하게 집안일만 보고 돌아옴을 원칙으로 삼아 여태껏 지켜오고 있다.
고향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큰형님은 콩밭에서 웃자란 순을 잘라주고 있었다. 큰형님과 함께 멧돼지가 일을 저질러 놓은 현장으로 향했다. 산비탈 대봉 단지는 감이 여물어가는 즈음이었다. 고조 증조와 숙부님을 모신 선영으로 가 멧돼지가 파헤친 현장을 확인하니 마음이 다소 놓였다. 상황이 심각하면 포크레인을 동원해 복구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무덤가 세워둔 멧돼지 퇴치 감지 센스는 정상으로 작동되어 벨이 울렸다. 태양광 충전이기에 오랜 장마로 방전되어 전원이 일시 끊어졌을 법도 했다. 아니면 워낙 거구의 멧돼지라 감지 센스가 작동되어도 그와 무관하게 수시로 드나드는 녀석일지도 몰랐다. 현장에서 큰형님이 제안하길 포크레인은 부르지 말고 다가올 벌초 날에 봉분을 복구하고 울타리를 다시 두르자고 했다.
두 분 형님은 마을로 먼저 내려가십사 하고 나는 조부와 부모님 선영으로 올라가 봤다. 거기 멧돼지 퇴치 감지 센스도 정상 작동이 되고 봉분은 파헤쳐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산소 주변에 자라는 밤나무의 어린 밤송이는 가시를 붙인 채 굵어져 가고 있었다. 조생종은 한 달 뒤 알밤이 떨어져 주울 수 있을 듯했다. 밤 수확은 무척 고된 일이라 인부를 사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고향 집으로 돌아오니 큰형님 내외분은 마당의 낡은 솥단지 아궁이를 헐고 다시 설치했다. 작은형님은 장맛비에 무성해진 밭둑 풀을 낫으로 잘랐다. 나는 고구마 이랑으로 가 찬거리로 삼을 잎줄기를 따 모았다. 이후 풋고추와 가지까지 땄더니 청정지역에서 가꾼 채소를 넉넉하게 확보했다. 집으로 돌아와 대구 사촌에게 전화를 넣어 산소 상황을 설명하고 벌초 때 복구하자고 했다.
때가 일렀지만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상을 차렸다. 아침에 준비해간 삼겹살을 불판에 올려 구웠다. 텃밭에서 따온 케일과 깻잎으로 쌈을 싸 먹었다. 불판에 올려 익히는 양파와 마늘까지도 자가 경작으로 수확한 것이었다. 감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마당에서 펼쳐 먹던 점심상이었는데 자리를 끝내지 않았는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낙비가 내려 처마 밑으로 옮겨 식사를 마쳤다. 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