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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빛역사]
1994.10.15 학회설립과 고려예식장 첫 공개 강연회
10월의 빛역사
1987.10.03 화왕산 동굴 노인과의 만남과 비서
1994.10.15 학회설립과 고려예식장 첫 공개 강연회
1995.10.7. 한라산 서치라이트 빛현상
1997.10.10 손인수 교수의 빛만남과 웰다잉
1999.10.02 어머니의 꿈
1999.10.04 계룡산 신원사의 풍경소리
2000.10.20~31 메주고리예 성모님
2015.10.10 카프리섬 제2의 빛만남
1994년 10월 15일 고려예식장 첫 공개강연회 모습
[빛역사 이야기] 빛명상 설립 30주년과 고려예식장 첫 공개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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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카페 학회설립 학회장님 메시지 모음
[학회장님말씀] 2019.10.17. 25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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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남 25년, 본 학회 설립 17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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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 설립 18주년 & 빛만남 26주년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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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남 28주년, 빛명상 설립 2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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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빛VIIT 이야기
세림이동통신 허상녕 사장의 빛VIIT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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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VIIT역사 빛VIIT만평
제60화 초광력 첫 공개강연회와 빛명상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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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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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辛旿 정광호 지음
고려 예식장에서의 오색 빛VIIT현상과
빛명상 창립
1994년, 첫 공개 강연회를 열며 빛명상을 창립했다.
3,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기적이 일어났다.
1999년 9월 15일, 매일 신문에서 초광력에 관한 첫 기사를 보도했다. 열흘 쯤 지났을 때,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연락이 밀려들었다. 하는 수 없이 상담 예약을 받았다. 접수 인원만 2,500명을 넘어섰고, 소문을 타고 예약 신청은 계속 이어졌다. 끝없이 예약이 밀리던 그때, 고려 예식장 우종묵 회장이 본인 소유의 예식장에서 우선 공개 강연회를 먼저 열고, 사무실을 갖춰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우 회장은 평소 이공회3를 후원해 오신 분이다.
3 이공회란 당시 매월 20일 마다 금호호텔에서 열리는 대구·경북 지역 대학 총장의 정기 모임을 일컫는 명칭이다.
이전에 우 회장이 남에게 말 못할 고민을 품고 있을 때, 김영환 몬시뇰의 부탁으로 그의 고민을 빛마음에 청원하여 해결해 준 적이 있었다. 현대 의학이나 종교, 그 어떤 자연적 방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빛VIIT을 받은 후 풀렸다. 우 회장은 아예 예식장을 통째로 무상으로 빌려줄 테니 공개 강연회를 열고 초광력을 시연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의 도움으로 같은 해 10월 15일, 대구 고려 예식장에서 첫 공개 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빛VIIT과 인연을 맺은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심상철 교수가 축사를 맡아주셨다. 훗날 친분이 있던 우암 도사에게 전해 듣기를 , 그날은 처음 보는 최대의 길일4이라고 했다. 이런 까닭에 이미 일 년 전부터 예식장의 예약은 가득 찼지만, 우 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예약자의 항의가 빗발쳤고 거액의 위약금까지 물어야 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4 갑술甲戌 팔자八字가 연결됨. 갑술년甲戌年, 갑술월甲戌月, 갑술일甲戌日, 갑술시甲戌時
1994년 10월 15일, 대구 고려예식장에서 첫 빛VIIT공개 강연회를 시작하며 빛VIIT의 서막을 열었다.
고려 예식장 모든 층에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풍경
행사 당일. 오전 10시부터 앞자리가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했다. 강연은 오후 5시가 예정인데 오후 2~3시부터 몰려든 인파로 예식장 전체 홀이 꽉 찼다. 강연 직전에는 건물의 모든 통로와 주차장 틈새까지도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몰렸다. 이날 3,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수많은 인파의 환호 속에서 강연회는 성황을 이루었고, 그 자리에서 빛명상학회 창립을 선포했다.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빛VIIT을 만났다. 걷지 못하는 아이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오색 빛무지개가 뜨고, 빛향기가 퍼지고 빛풍선5이 나타나는 등 신비로운 빛현상과 함께 수많은 빛VIIT의 기적이 일어났다.
5 빛VIIT과 함께한 영혼은 사후에 빛풍선을 타고 빛VIIT의 세계로 간다.
빛VIIT을 펼칠 때마다 나타나는 빛무지개 현상
비 온 후에 오는 무지개가 아니라, 원형 무지개, 직선 쌍무지개, 거꾸로 무지개 등
각양각색의 무지개로 빛현상이 함께 하였다.
출처 :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초판 1쇄 발행 2026년 6월 1일 P. 40-43
찬란한 빛VIIT과의 만남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불이 아니라, 빛VIIT이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주홍색 빛이 눈부시게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그 어떤 빛도 그토록 찬란할 수는 없을 만큼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가운데 마음속에는 끝없는 질문들이 생겼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 사람을 만나보고 책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그 무엇도 내 의문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11월 30일, 경남의 한 산에서 빛VIIT을 만났다. 그 빛VIIT을 통해 오랜 마음속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았다.
직원 몇 명과 함께 경남 창녕에 있는 어느 작은 산에 올랐다. 바로 그때 아주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산 정상 부근 나무 한 그루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잘못 봤겠지.’ 하고 눈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였다. 촘촘한 가지들 사이로 황금빛 불꽃이 보이고, 넓게 뻗은 가지 사이로 화염이 타오르는 모습이 꼭 불붙은 막대 폭죽 같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그 불꽃이 일행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행을 재촉해 정상 9부 능선에 이르자, 갈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갈대밭이 끝나는 곳에 불에 휘감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보이는 불꽃을 일행들은 보지 못했다.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어 갈대밭 사이로 가늘게 뻗은 길이 드러났다. 그 길을 따라 나무에 다가갈 수 있었다.
“오! 세상에….”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불이 아니었다. 빛VIIT이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주홍색 빛이 눈부시게 나무를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붉은 노을이 나뭇가지에만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어떤 빛도 그토록 찬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대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었다. 명상 중 빛VIIT의 마음을 보고, 빛VIIT의 소리를 들었다.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며 동시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있었다. 이 빛VIIT이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섭리를 통해 함께하고 있는지, 빛마음은 모든 것을 찰나刹那의 느낌으로 전해주었다. 동시에 이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도 한순간에 알 수 있었다. 모든 이치가 순식간에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마음은 ‘빛VIIT으로 둘러싸인 가지 한 줄기를 가져가, 후일 네가 본회를 설립할 때 제1 보물로 간직하여 이날을 기념하라!’고 명하셨다 이어서, ‘너에게 주는 큰 선물이 될 것이다.’라는 느낌도 함께 들었다.1 빛VIIT과 함께한 명상에서 깨어나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마음은 알 수 없는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잠시 후 일행 두어 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쫓아왔다.
1 그때 가져온 ‘빛VIIT의 가지’가 빛명상 학회의 첫 번째 보물이 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그 나뭇가지는 침향나무가 되어 곁에 있었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침향연구에 돌입했고, 그 실체와 효과를 밝혀나가던 중, 침향이 세상을 구원할 약리 성분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침향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KAA한국침향협회를 설립했다. 이후 VAA베트남침향협회와 침향의 주산지인 베트남 하띤성 인민위원회와 함께 MOU를 체결하게 되면서 IAA국제침향협회와 IAMA국제침향명상협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IAA는 세계 최초 국제적인 침향 인증기관으로 학술연구, 성분분석, 품질검증, 등급기준 마련 등을 수행하며 관련 산업의 신뢰를 확보하고 침향 전문가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 동시에 침향의 주산지인 베트남을 생산의 중심지로, 대한민국은 유통과 교육, 지원 및 연구 중심지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침향은 4차 산업 혁명을 이끌며 수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어! 저게 뭐야?”
일행 중 한 명이 깜짝 놀라며 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 좀 보세요!”
나무를 보자, 순간 빛VIIT은 사라지고, 빛VIIT이 떠난 자리에는 온통 빛분2이 내려 반짝였다. 나무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손과 손등까지 완전히 항금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실체가 있는 힘으로서 빛VIIT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첫 경험이었다. 그날의 빛만남으로 빛VIIT의 길이 내 숙명임을 깨달았다.
2 빛분은 빛VIIT의 반향 중 하나로, 빛명상 중 또는 첫빛만남 시 가끔 나타나는 금빛결정체이다.
1986년 11월 30일, 경남의 한 산에서 만난 찬란한 빛무리는 위 사진과 같았다. 사진은 빛만남을 묵상하던 중 포착된 빛현상이다.
출처 :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초판 1쇄 발행 2026년 6월 1일 P. 32-35
빛의 선택이 왜 나였을까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모든 차원, 모든 만물을 존재케 하고 주관하며 관장하시는 우주의 마음이요, 근원이며 우주 자체이신 이 힘, 우주의 절대적인 힘, 초월한 빛VIIT의 힘 ‘초광력超光力’
모든 것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이 빛VIIT은 우주의 원리,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오는 전지전능한 힘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의 힘은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세상에는 높은 정신세계와 깊은 인품을 갖춘 훌륭한 인사들이 숱하게 많이 있음에도 하필이면 왜 나일까? 그토록 많은 성직자와 종교지도자, 돠사와 초능력자, 기공사, 유명인, 무속인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인물들을 제쳐두고 우주의 마음은 왜 나를 선택한 것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 정확한 해답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우주의 마음이 당신의 그 뜻을 내게 명시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삶에는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저 보통의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적어도 항상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꺽지 않고 살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열망을 항상 품에 담으며 살아왔노라고 얘기할 수 있다. 자기 그림 자기가 칭찬하는 격인지 모르지만 언제나 순수 하고자 했고, 언제나 나누고자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나의 모습을 우주의 마음이 과분하게 보아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특별하게 튀지도 않으면서 특별하게 모나지도 않은 나의 모습을 빛VIIT의 마음이 너그러이 보아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추측은 다만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우주의 마음에서 내게 내리시니 이유를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빛VIIT의 선택, 왜 나였을까?
해질 무렵이면 대지 위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샛별 하나를 ‘내 별’이라 하여 무척이나 좋아한 적이 있었다. 내 생에 있어서 가장 어렵고 힘겨웠던 한때 어떤 사람의 함정에 빠져 위증으로 숱한 고통을 받았을 때도, 어둠이 땅 위에 낮게 깔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짝이는 샛별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이기에 인류를, 이 나라를, 나의 이웃을 생각하며 안쓰러워해야 하는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자문하곤 했다.
늘 샛별을 보며 큰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대구의 대신동에 살았다. 지금도 그 옛집에는 아우가 살고 있다. 그때는 우리집 칠형제와 큰집 사촌형제 다섯 명, 그리고 외갓집의 이모까지 합치면 거의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사는 울타리 안은 언제나 장터를 방불케 했다.
사이가 좋다가도 때로는 싸움박질도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집은 우리 모두를 포용했고 비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까지 합쳐 한창 많이 모일 때면 어머니께서 강냉이빵을 가마솥째 두서너 판 쪄주시곤 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것을 들고 달성공원으로 총출동했다. 집의 마당이 아무리 넓기로서니 사내 녀석들이 마음껏 뛰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비좁으니 달성공원의 큰 마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달성공원 앞에는 큰 개천이 흘렀고 그 가에는 갖가지 노점상과 벼룩시장들이 열리는데 아이스께끼 파는 아이에서부터 병아리, 토깡이 새끼, 똥강아지 파는 사람, 뺑뺑이판 돌리는 야바위 꾼 등.
그 당시 입장료가 2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수십 명에 이르는 노인들은 돈이 없어서인지 아까워서인지 는 모르겠지만 공원 입구나 다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돈을 벌면 저 노인들 모두에게 달성공원 구경을 시켜드려야지. 그리고 강냉이 빵도 많이 쪄서 나누어 드리고’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재벌이되어 어떤 큰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180도로 전환한 것은, ‘나 안의 나’, 알맹이의 마음이랄까 정신이랄까, 그것을 알게 되고 난 후였다.
샛별은 더욱 가깝게 다가왔으며, 나는 마음의 재벌이 되어 빈곤에 허덕이는 수많은 마음들에게 맑은 ‘님의 소리(자연의 소리)’를 한 아름씩 안겨주어야겠다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연의 일치인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곁에서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신기하고 신비로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엔가 큰 부자가 되어 온 인류에게까지 도움을 줄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곧잘 했던 것이다.
그 유년의 기억들 사이로 날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분이 있다. 바로 ‘도경道卿’이라는 분이다.
당시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가끔 고모 댁에 갔다. 고모는 부자였고, 집 뜰엔 기이한 화초와 꽃들이 사람 다니는 길만 빼고 가득히 피어 있었다. 우리집 꽃밭엔 상추와 고추 등 주로 먹는 채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고모집에는 채송화에서부터 각종 선인장, 난초에 천리향 등 갖가지 화초들이 있었다. 뒷간이나 마루에도 예쁜 꽃들이 놓여 있었고, 오랜 그림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고모 댁에 갈 때는 미국 선교사가 살고 있는 집의 담벼락을 지나는 계단을 또 올라가야 한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담 밑에 있었던 세 노인에 관한 것이다.
한 노인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당사주」 책을 보여주면서 방문객들에게 뭔가를 봐주고 있었다. 그 노인이 있는 곳에서 열 발자국쯤 더 가면 흰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오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앞을 못 보는지 지날 때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림책도 없었고 손금을 볼 때 쓰이는 돋보기도 없었다. 종이도 붓도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기만 했다. 세 번째 노인 앞에는 가끔 손님이 앉아 있었고 먹을 것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가운데 있는 노인은 누가 지나가도, 양쪽의 두 사람처럼 아는 체하는 것은 고사하고 본채만채 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지나가면 신통하게 알아맞혔다.
“정주사님 오셨군요. 여섯째 놈도 함께 왔구나.”
무뚝뚝하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자리를 내주었다. 눈을 보면 계속 감고 있는데 내가 온 것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어머니는 철저한 천주교 신자이시기 때문에 이런 곳하고는 거리가 먼데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곳에 들를 때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그 노인이었다. 수염도 신기했지만 그가 뭔가 이야기를 하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그 노인은 아무나 봐주지 않고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 앉혀서 봐주곤 했으며, 돈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간혹 사목(山木 : 오죽으로 만든 것)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그 노인은 그 자리에 있었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 노인도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여하튼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아 때로는 고모집 가는 것도 잊어버린 채, 가져온 음식들을 내놓고 소주 두세 병을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는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호탕하게 웃음을 나누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셨다.
처음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갔을 때 그 노인은 나의 생년월일 시각까지 알아맞혔다. 그리고 지나간 일, 앞으로 닥칠 힘든 일, 그리고 먼 미래까지 단숨에 얘기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큰절을 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황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양쪽의 노인들도 이상하다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이라 그 노인이 아버지를 향해 절하는 줄만 알았다.
“얘야, 어려운 한 시절, 억울한 시절이 와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하겠으니, 어찌하든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만 한다.”
노인은 산목 한 개를 뽑아보고 또 세 번 절을 올렸다. 이번에는 하늘을 보고 절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절 그 노인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했고 또 주고 싶어했던 것같다. 나를 볼 때마다 ‘어렵고 억울한 일 두 번 당할 테니 참고 지내거라’고 말씀하셨고, 나에게 한 번, 하늘에 세 번 절을 올리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도를 깨친 장님을 예우한 호칭으로 ‘도경’이라 부르셨다.
“오색 찬란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뭇사람들의 아픔을 쓰다듬고 있는 아드님의 후일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주 밝은 빛VIIT에 싸여 있구려, 머지않아 큰 빛VIIT, 하늘의 문이 열릴 것이외다. 그러나 그 밝은 세상을 열어가는 아드님의 모습을 정주사와 나는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토록 빛나는 형상이거늘…….”
아버지께서 노인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가끔씩 쌀과 찬거리 등을 갖다 주시곤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년 전쯤일까, 그 노인은 나에게 성묘 갈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새겨두라고 하시며 무척 서운해 울기도 하셨다. ‘큰 세상 큰 하늘의 문이 열리는데 우린 못 보겠구려’ 넋두리를 자주 하셨다. 그 이후 기가 막히게도 3년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3년 전 묏자리도 잡아놓았고 당신이 돌아가신 후의 일도 명백히 하셨다. 그리고 ‘도경’이라 불리셨던 그분도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셨다.
그분께서는 붓으로 아무렇게나 써서 책 제목도 없는 케케묵은 조그마한 책 한 권과 호작도(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그림) 한 폭, 신선도 한 폭, 평소 늘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산목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도경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혼 후 분가하면서 작고 낡은 가방 속에 그분에게 받은 것들을 발견하고는 새삼 그때를 떠올렸다.
운명일까. 도경의 예언대로 83, 86년 두 차례에 걸쳐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이해 힘들게 보냈다. 어린 시절 도경이 나에게 했던 얘기를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괴상한 노인이 어린 나에게 했던 얘기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가끔 그 작은 책자를 펴 보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그 뜻이 이해가 되었고 꿈에서 그 원리와 이치가 풀려지곤 했다. 도경의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는 현 시대를 생각하면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분의 높은 학문과 예지력에 깊은 침묵으로 일관하곤 한다.
40년이 흐른 뒤 새삼 정확하게 기억이 되살아나는 ‘도경’이라는 분,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사람. 왜 그 시절 도경이라는 분은 그렇게 구름처럼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을까?
지금도 내가 초광력超光力을 펼칠 때면 오색의 빛VIIT이 눈앞에 머무른다. 이젠 많은 회원들도 그 빛VIIT을 목격했기에 그 빛VIIT은 이젠 신비의 힘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때 도경이 말했던 오색 찬란한 옷자락이란 이런 오색 빛VIIT을 말함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분은 큰 빛VIIT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도경은 오늘 나의 모습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만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이 빛VIIT이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작정 찾아든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빛VIIT과의 만남은 내가 느끼기 오래 전부터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된다.
도경은 내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달려갈 것이라고 했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과연 그러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주변을 되돌아보게 되고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이 몸가짐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듯 사람들의 축복을 바라서도, 의식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내게 맡겨진 이 일을 숭고히 여기며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출처 :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1999년 3월 8일 1판 1쇄 발행
1999년 4월 15일 1판 2쇄 발행
2014년 5월 28일 한정판 1쇄 P. 12-19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의 날,
인류를 위해 애쓰시고 힘든 여정속에서도 학회를 이끌어오신
학회장님의 크신 노고에 깊은 공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빛과함께 할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경과 학회장님 아버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그 찬란한 빛의 세상! 1994년 10월 15일은 고려예식장에서 첫 공개강연회와 빛명상이 창립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우주마음과 현존의 빛이신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
오늘 빛명상학회 설립일 축하드리며 빛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색 빛VIIT에 싸여 밝은 세상을 열어가실 학회장님의 미래를 예견하신
도경님의 경이로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역사의 날
찬란한 빛VIIT과의 만남
빛역사 이야기 다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 날을 축하드립니다.
빛을 만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 빛VIIT을 만나시고 학회를 세우시고 묵묵히 걸어오신 노고의 길에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오늘 학회설립 빛역사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뜻깊은 빛역사의 날
고려예식장 강연
축하드립니다 🎉
귀한빛글 마음에 새겨습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설립 32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학회장님의 노고에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학회설립과 고려예식장 특별강연회가 열린 빛역사의 날..빛글 감사히 마음에 담습니다.
학회설립 빛역사의 날, 축하드리며 감사드립니다.
학회설립 32주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볼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
빛 명상 설립 32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우주 근원 빛 마음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마음 공경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설립 32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히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설립 32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귀한 빛역사 이야기 감사드리며 거듭 빛마음 성장하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설립 32주년
빛역사의 날~*
우주빛마음께 학회장님께
공경과 무한감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