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똥 찬 방망이(10)
이동민
얼마 전에 고향에서 초등학교 동기들의 모임이 있다는 전화가 왔다. 햇수로 따져보니 졸업한지 65년 쯤 되었다. 머리 속을 지나가는 얼굴들 중에 A가 유독 또렷하다. 우리 반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친 일이 없었다. 우리는 감히 그를 뛰어 넘을 생각조차도 못했다.
나는 중학교로 갔고, 공부를 잘한 그는 가난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방황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소식이 끊어졌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검정고시를 거쳐 따라지 중학교와 왕 따라지 고등학교의 졸업장을 구했다. 군 간부 후보생으로 지원하여 대령으로 제대하고, 지금은 편안한 노후를 보낸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내가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그가 진학하였더라면---, 잠시 상념에 잠겨보았다.
“주인님, 지금이 어느 세월인데, 감상에 젖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나요.”
“방망이씨, 참견할 때나, 나서지 말아야 할 때나, 촉새처럼 ------”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끼어든다.
“내 말이 틀렸나요. 감상에 젖어 헛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도 밥을 먹여줄 만큼 이 세상은 그렇게 아량이 넓지 않아요.”
“아니,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밥까지 굶어야 해.”
“주인님이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은 궁벽한 어느 곳에서 힘들게 살겠지요. 실제로 밥을 굶을지도 모르지요. 그게 세상 인심이라는 것입니다.”
방망이씨의 말투가 퉁명스럽다. 내 말에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근에 나는 씁쓸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더래도 자꾸 뒤로만 물러설 수는 없어 대꾸를 했다.
“가난한 집에서 흙수저로 태어났더라도, 출신 학교의 간판이 따라지 고등학교이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한 사람도 많잖아. 그런 사림이면 존경해야지.”
“주인님, 출세가 뭔데요. 감투를 쓰는 것 ------.”
“꼭히 감투를 말하는 건 아니고, 그래 까짓거 감투라고 하자. 흙수저로 태어나서 감투를 쓰면 출세한거지.”
“주인님, 가난하게 태어났고, 좋은 학교를 다니지 못 하였더라도 열심히 노력하여------, 그런 걸 말하려는 거지 요. 할아버지가 말했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하였던 말을 주인님도 말 하려는거지요.”
“그렇다네.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하면 모두가 하는 말일세.”
“주인님, 모두는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면 꼰대라면서 왕따를 당합니다. 또 다른 세상 인심도 보여줄까요.”
“보여주지 말게. 보기가 싫어.”
“그래도 보세요. 주인님이 나가는 모임의 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던데요.”
“무슨 글? 아 그 글.”
문협 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60년 전의 따라지 고교가 학력의 전부인 자는 대구의 지성인의 표상으로------’이란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 내 글이다. 나는 말해주었다.
“그야 뻔하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0년 동안 공부를 않고 놀았으면 지성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지, 그러나 따라지 고등하교를 나왔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사정은 다르지. 내 친구는 60여 년 전에 구한 따라지 고등학교의 졸업장으로도 대령까지 하였어.”
“주인님, 대령까지 되려면 사회에 나와서 공부를 엄청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말이다. 이런 글도 있더라. ’일부 문인이 문인의 품격을 파괴하고 있다. 일용작업자도, 건설 노동자 자격증 교육을 통해서 신분이 증명된다. 허위 학력, 가짜 나이 등으로 40년 이상 활동하고 계신 분, 그 이하 2-30년 대구문단에서 활동하면서 상금이나 사례금을 독식하시는 분들도 최종 학력 졸업 증명서와 주민증 사본 제출을 기본으로 하고, 신입 회원에게도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여야 한다.‘ 라는 글을 올렸더라. 한문이 섞인 것도 아닌 우리 글인데도 나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 내가 따라지 학교를 다녀서 일까. 방망이씨는 읽을 수 있어.”
“나, 기똥 찬 방망이도 무슨 말인지 읽어내지 못하였습니다.”
“못 읽어. 방망이씨도 가짜 학력은 아니지.”
“가짜 학력은 아니지만, 한글로 쓴 글도 읽지 못하니 내 앞의 수식어 ’기똥 찬‘은 반납하겠습니다.”
이 문장은 나의 지식으로도, 욕망으로도 해석이 안 된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노후의 나날을 보낸다. 그래서 문인이라는 자격증은 꼭 가지고 싶다. 자격증을 따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내 국어 실력으로는 길 잃은 숲 속에서 헤메기만 할 뿐이다. 아르켜 줄 사람 ’거기 누구 없소.‘ 나의 초등학교 친구 A에게 도움을 청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