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死)의 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 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의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로 시작하는 <사의 찬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대중가요 음반(1926년)의 취입곡입니다. 이 곡은 당시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때때로 연극무대에 서기도 했던 윤심덕(尹心悳, 1897-1926)이 작사하고 동생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 레코드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가수였던 윤심덕이 이 곡을 취입한 뒤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金祐鎭, 1897-1926)과 현해탄에서 동반자살을 하는 바람에 이 곡은 무척이나 유명해졌습니다. 이 곡 <사의 찬미> 가사는 가수였던 윤심덕 본인이 직접 썼지만, 노래 자체는 외국곡이었습니다. 원제는 <도나우 강의 잔물결(Little Waves of Donau)>로 루마니아 군악대장이었던 작곡가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 1845-1902)도나우 강의 잔물결의 작품입니다. 1925년 우리말로 된 가요를 레코드에 취입하였고 1926년 '사의 찬미'를 불러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가요곡으로는 최초의 히트곡으로 기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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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의 1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난 윤심덕은 경성여고 사범과를 나와 강원도 원주의 보통학교 음악선생으로 재직하던 중 성악가의 소질을 인정받아 일본 동경음악학교에 관비유학생으로 다녀온 엘리트였다. 윤심덕의 일생은 화려하고도 비참했고 행운과 수난이 엇갈린 삶이었다.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였던 윤심덕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 더군다나 여성의 사회참여가 막혀있던 시기에 그 명성을 남긴 인물입니다. 또한 그녀는 연극배우로도 이름을 떨친 다재다능한 여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녀가 택한 죽음이었다. 윤심덕은 일본에 다녀오던 길에 애인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져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음으로 끝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재능보다 이러한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1926년 8월 5일,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는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 탔던 남녀 한 쌍이 대마도 앞 바다에 돌연하게 몸을 던져 정사한 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장식하여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하였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현해탄에서 발생할 정사 사건만으로도 충격적인 뉴스가 되었겠지만, 그보다도 정사의 주인공 이 윤심덕(尹心悳)이었기 때문이다. 윤심덕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뭇 남성들의 가슴을 애태우게 한 짝사랑의 대상 중 한 여성이 아니었던가.
그런 윤심덕이 목포의 갑부이자 유부남인 청년 문사와 사랑놀이를 하다가 끝내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해탄 깊고 시린 물 속으로 도피해 버렸다니 신문으로서는 당연히 사회면 톱 뉴스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그때의 신문 스크랩 몇 장을 뒤적거려 보기로 하자. -미성(美聲)의 주인공 윤심덕 양 청년문사와 투신정사-
그리고 다음과 같은 본문 기사를 실어 세상 사람들을 충격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관부연락선이 사일 오전 네시경에 대마도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는데…… 남자는 김우진(金祐鎭)이요, 여자는 윤심덕(尹心悳)이었으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 동아일보
<사일 오전 네시경에 관부연락선에서 김수산이라는 남자와 윤수선이라는 여자가 정사를 하였다함은 보도와 같거니와 그후 김수산은 목포 부호 김모의 아들 김우진으로 판명되었고, 그 여자는 조선 악단의 총아 윤심덕으로 판명되었는 바…… 그는 칠월 십 육일 오오사카에 있는 일동축음기회사의 촉탁을 받아 가지고 그곳에서 축음기 레코오드에 소리를 넣기로 되어 있었는데……>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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