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安貧樂道)란 공자(孔子)의 '논어' 중에서 제자 안회에게 한말이 유래된 것으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지낸다'는 의미이다. 안빈낙도에 대비되는 말 중에 무위도식 (無爲徒食)이 있는데, 나로서는 정해진 일거리가 없으니, 안빈낙도이건 무위도식 중 어느 것을 가져다 붙여도 피해가질 못한다.
아직도 여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엔 사람들이 한산했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면도 있겠으나, 코로나로 승객이 뚝 떨어졌단다. 몇일동안 지겹게 느껴지던 파업 출정가(?)가 임금체불에 있음을 알았다. 주범은 코로나인데, 그를 쟁송의 피고로하여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시외버스를 타고 친구를 만나려 나서기로 하였다. 홀가분한 이른 가을여행겸, 지난번 친구들과 추석전에 술이나 한잔 하자며 전화 약속을 하였던데 대한 실천인 셈이다.
버스에 오르고 보니, 어디보자! 그런데 버스 승객이란 고작 5명뿐이다. 7,500원 × 5명 = 합이 37,500원이네.
1시간을 넘게 가는 찻길인데 이 정도라면 말그대로 기름값도 안나온다. 이럴땐 괜스레 승객인척 명함내기도, 기사에게 말붙이기도 미안하다. 언제쯤 정상적인 삶이 이루어질까?
버스에서 내려 전화를 하니 금새 친구가 차를 몰고 왔다. 처음부터 만남의 장소를 정한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친구가 볼일이 있어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공백이 생겼다. 이동하는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지나는 농촌은 가을의 푸름에서 노랑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지독한 무더위에 이은 긴장마로 작물들의 생육에 지장이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역시 언제 보아도 마음이 툭 터인다. 몇번 차를 몰고 지나쳤던 낮읶은 바다이다. 사람들이 찾지 않은 바다는 깨끗했고, 작은 항구는 고기잡이 철이 아니어서 조용하다. 그래도 차를 멈추고 자리에 앉아 한동안 바다를 바라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리두기며 모진 인심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습들에서 안정감을 없애버렸다.
시내로 돌아오다 물좋은 곳에서 지난 우리들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겨했던 돼지두루치기에 소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친구의 농장에서 잠시 머무르다 시내로 돌아왔다. 시간 미룬 친구에게서의 연락이 없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발길을 붙잡는 전화가 왔다. 둘이서 안주시켜 맥주잔 나누는데, 달려온 친구는 먹던걸 싸가지고 당장 자신의 집으로 가잔다.
허허! 그 성화를 어찌 이길꼬?
차를 타고 한적한 친구의 전원주택으로 들어섰다. 시내로 돌아갈 택시까지 미리 예약을 해두었으니 마음 내려놓고 잔을 나누잔다. 야외 파라솔아래 세 중늙은이가 앉았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면 얼마나 마시겠는가? 늙어가며 그냥 지나치는 세월에 뭔가의 흔적을 내고 싶은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술맛 떨어지고 혐오감 드는 정치꾼들 얘기는 삼가하고, 이런저런 세상이야기 꽃을 피웠다. 의견 대립도 있었고, 마지막엔 내가 "그래도 우리 셋은 이제는 종교인보다 더 죄안짓고 사는 것 같다"고 하였더니, 친구가 "옛날에 별짓 다했잖아?" 하고 깃대를 꺾었다. 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건 그때고 지금은 안 그렇다는 거다." 집주인 친구는 내 전화기를 받아들고 우리 애 엄마에게 나를 재우고 다음날 보낼 것이라고 해버린다.
혼자있는 친구는 자신을 두고 떠나가 버리는 우리들을 보며, 마음속 외로움이 깊었었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가족이라는 굴레가 있으니, 삼국지의 유비처럼 도원결의 형제 관우, 장비의 죽음이 근원되어 홧병으로 죽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아쉽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며 말했던 가족과의 약속도 또한 지켜야함이 있었으니...
버스 탈시간이 촉박하게 택시가 달려왔다. 아쉬운 손짓으로 작별인사를 마치고 차는 서둘렀다. 지난 어느때처럼 터미널 시간은 늦었고, 다음의 간이 매표소로 향했다. 다행이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다. 시골집 깊은 항아리속 묵은지처럼, 약간의 군내가 날지언정 다음에 오는 오묘한 깊은 맛을 알고 있기 그렇다. 그러나 가까운 시절의 친구란, 그 깊이를 다 못헤아리기에 자로 재고도 거울에 비춘다. 그렇다고 뒷면까지 보여지지 않기에 마음에 흑점을 남기기 마련이다. 가까운 친구가 덜 좋다는 말이 아니라, 숨겨진 제맛을 제대로 알기까지엔 시간이란 양념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안빈낙도와 비슷한 단어로는 안분지족(安分知足), 청빈낙도(淸貧樂道), 소욕지족(少慾知足), 유유자적(悠悠自適)이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공자의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 '飯蔬食飮水, 曲肱而沈之 樂亦在其中(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고서 잠을 자는 궁핍한 생활일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으니...참 오랫동안 귓전을 맴도는 말이었다.
공자의 말은 이어진다.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부(富)와 귀(貴)는 나에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라고... 도대체 공자의 즐거움이란 어떤 즐거움일까? 그것은 천지자연의 이치와 한 몸이 되어 도(道) 속에서 사는 즐거움이라 했다. 이미 도를 즐기고 있는데 다시 무엇이 필요하며, 궁핍한들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부귀영화자체가 본래 뜬구름 같이 부질없는 것인데, 하물며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부귀에 있어서야...
돌아오는 버스, 나이먹은 기사는 그나마 학생들이 제법 타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한켠에는 파업 중이니, 회사에 돌려주는 티켓 회수분의 숫자에 오늘 하루는 조금의 안도감이 들 것같다.
나더러는 춥지 않느냐? 물었고, 나이를 묻더니 자신의 큰형님과 같단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의 어깨에 걸린 멍에가 무거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빈낙도도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이 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가난을 가난이라고 마음놓고 내려놓지도 못하는 불편한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가난한 그들에게 안빈낙도라도 좋으니 곡절(曲折)없이 그들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