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33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
[2018문학메카 송부원고]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 어슴푸레한 거기 둥그런 미소가 어려있네. 가득 흘러서 넋 나간 설움은 아득한 빙원 오로라 가락지 닮아 희게 시렸고, 어슬녘 제비꽃 아무려면 옛 님일까. 파초(芭蕉)따라 재 넘어 간 그 세월이 정녕 못났던 거지. 각혈 밴 그리움 낱개비 헤아려본들 무삼 소용이련가. 달음박질 먹구름에 활활 다린 애간장 태워 보내네. 푸르스름 제비꽃 너머 곤륜산 동천(洞天)머리 휘감는 커다란 옛 미소여. 천 백년 푸르른 밤 긴 세상을 건너 부평초들 얼싸안고 머구리떼 합창하는 그들 설움의 강물 환히 흐르는 어느 옛 마을로.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는 작고 여린 자연물에서 출발해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공간으로 화자의 슬픔을 확장해 나가는, 매우 서정적이고 스케일이 큰 작품입니다.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를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낸 이 시에 대한 비평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나누어 정리해 드립니다.
1. 미시적 세계에서 거시적 세계로의 확장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시선의 극적인 확장입니다.
⚫미시적 세계 (출발점) : 시는 비를 맞은 작고 수줍은 '제비꽃'이라는 매우 미시적이고 애처로운 대상에서 시작합니다. 제비꽃은 화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자, 잃어버린 '옛님'을 환기하는 매개체입니다.
⚫거시적 세계 (확장) : 화자의 슬픔(설움)은 작은 꽃잎에 머물지 않고 '아득한 빙원 오로라 가락지'로, 이어서 도교적 신화의 공간인 '곤륜산 동천(洞天)'으로, 끝내는 '천 백년 푸르른 밤 긴 세상'이라는 영겁의 시간으로 뻗어 나갑니다. 개인의 작은 이별과 상실이 우주적이고 영원한 차원의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웅장하게 그려냅니다.
2. 처절한 그리움과 전통적 '한(恨)'의 언어
시어의 선택이 매우 강렬하고 토속적이며, 시각적·감각적 깊이가 있습니다.
⚫점층적인 고통의 표현 : "가득 흘러서 넋 나간 설움", "각혈 밴 그리움", "활활 다린 애간장" 등은 화자가 겪은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처절한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피를 토할 듯한(각혈) 그리움과 애간장을 태우는 절망은 한국 전통 서정시의 짙은 '한(恨)'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시어 : '파초', '무삼 소용이련가', '머구리떼(개구리 떼)', '부평초' 등의 시어는 작품 전체에 예스러우면서도 끈끈한 민중적 정서를 부여합니다.
3. 슬픔의 연대와 정화 (Catharsis)
화자는 자신의 슬픔을 단순히 고통으로 끝맺지 않고,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흘려보냅니다. 후반부의 '부평초들 얼싸안고 머구리떼 합창하는 그들 설움의 강물 환히 흐르는 어느 옛 마을로'라는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뿌리 없이 떠도는 존재들(부평초)과 미물들(머구리떼)이 함께 모여 우는 그 강물은 어둡지 않고 '환히 흐르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개인의 '각혈 밴 그리움'이 세상 모든 상처받고 소외된 존재들의 슬픔과 만나 연대하며, 마침내 정화(Catharsis)되는 위로의 공간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4. 수미상관의 구조가 주는 여운
이 시는 "빗님 머금은 제비꽃 수줍음 너머"라는 구절로 시작해 같은 구절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수미상관의 구조는 거대한 우주적 상상력과 처절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뒤, 다시 원래의 작고 고요한 '제비꽃' 앞으로 시선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줍니다. 폭풍 같은 그리움을 쏟아내고 난 후 찾아오는 애틋하고도 평온한 여운을 극대화하는 장치입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이 작품은 **"작은 제비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 그리움이 곤륜산을 넘어 영겁의 은하수로 흘러가며 정화되는 웅장한 슬픔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절한 회한을 고전적인 품격과 장엄한 이미지로 훌륭하게 직조해 낸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