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쿤달리니와 제 3의 눈
- Kundalini and the Third Eye -
Earlyne C. Chaney
William L. Messick
쿤달리니와 제 3의 눈
- 고대와 아쿼리언 시대에 영혼의 눈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페루, 티벳의 신비 학파들을 통해서
또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를 통해서 닫혀진 지혜의 눈 즉,
혜안(慧眼)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가 스스로의
깨달음(Self-Realizatioon)을 향해 도약하려하는 현 아쿼리스의
여명기에 상징주의에서부터 제 3의 눈을 우주적 잠재력으로
이끌어 내도록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법들이나 행동(kriyas)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헌사(獻詞)
한 영혼이 죽어야할 운명의 코일로 감겨있을때, 그 영혼은 감각들과 마음 그리고 강한 집착들 즉, 신체 뿐만아니라 존제계 섞여있는 만물의 굴레를 쓰게 된다. 영혼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속박의 거미줄을 풀어 헤쳐야 한다. 타트바스(Tattwas)라 말하는 다섯개의 감각 기관들-
보고,듣고,냄새 맏고,맛보고, 느끼는 것-은 더 높은 계(plane)로부터 유배된 영혼을
붇들고 있는 내부적 굴레들이다. 한편, 가족이나 다른 관계들과 같은 세속적인 존재물은 이 유배된 영혼을 얽어매는 외부적 굴레들인 것이다.
짜여진 굴레속에 헤어나지 못할만큼 얽매여있는 영혼은 진정한 고향을 잊어버린체 지구라는 행성의 모퉁이에 한 이방인으로 살고 있으며 더 높은 곳에 자신의 왕국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연히, 고귀한 영혼은 더 높은 진실성들을 어렴풋이 깨닫으며 천체의 신성한 음율의 소리가 그 영혼의 의식속으로 스며들어 퍼지고, 오래전의 화려한 기억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고, 알수없는 마음의 동요가 그를 기억의 저편에 있는 빛으로 데려 갈때
그의 발아래에 그가 멈추
어 꽃꽃이 서있는 것을 안다.
그러한 영혼은 종종 근원적 물음의 대상 즉, 선생이나 스승 또는 영적 지도자와 영적 단체를 찾아 나선다. 그 기억의 침묵속에 자신이 서있는 참으로 다른 무엇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인 이 상황을 여러번 반복할 수 있도록 해 줄 그런 스승을 찾으려고 한다. 항상 至高 의식의 정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이것이 바로 외로운 여행 - 고독의 여행을 시작하는 영혼이다. 이것은 진정으로 신이 선택한 영혼이다. 그는 우주의 외로움을 알것이다.그러나 그 외로움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경험한 여행의 경험을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애인과도 공유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그의 안에서 진행되는 내면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서 그 곳에 가야만 한다.이 책은 이 모든 고독한 영혼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접혀있는 각성의 사다리를 한 층을 더 늘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모든 고독한 영혼들에게 바친다.
서언(序言)
존재에 대한 추구 (A Search for Being)
우리는 영원성에서 길조의 순간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쿼리스 시대(Age of Aquarius)의 여명기 즉, 탄생의 시대이자 첨단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지구의 인체 생명장이 바야흐로 성숙한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성인기 초반에 들어서야 하는 시점에서 이 시대는 인류의 사춘기의 끝에 해당한다. 그러나, 만일 성숙함에 대한 판정에서 실패한다면 인간 생명흐름은 양분되어야 한다. 영혼의 성숙을 위한 잠재 에너지를 얻은 이들은 지구라는 행성의 내면을 향해 나가면서 영혼들의 인체 파장을 아쿼리스의 새로운 에텔로 내보낸다. 한편, 그러한 잠재 에너지를 개발하지 못한 영혼들은 또 다른 행성에 추방되어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의 인체 생명흐름은 사춘기에 반응하는 것과 똑같이 반응 하게된다. 반항, 저항 그리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근육들을 구부려서 이제 잠재력을 얻었다는 것을 보이고하는 갈망들의 표현기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아쿼리스 시대는 영원한 투쟁과 분쟁 그리고 혼란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수행에 발을 내딛은 이들은 이들차도 싹이트는 성인 잠재력에 이를때까지 투쟁해야 한다.
존재이자 생성의 멀고먼 여행에서, 인간은 성인 예수가 신의 왕국은 내면에 존재하는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지구가 내보내는 영혼들의 파장이 아쿼리스 시대의 정문에 다다를때, 직관적 지각은 예리해지고 인간은 그가 오랜세월동안 물어온 의문에 대한 해답들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내면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산과 바다, 사막, 숲속 그리고 성당에서 신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대다수에게 있어, 그의 추구는 확고한 정착지가 없는 외부로의 여행으로 그를 이끌었을 뿐이다.
이제서야 정상으로 이르는 길은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내면 그 어디엔가에 성인 예수가 이야기한 잃어버린 왕국이 존재한다. 내면 그 어디엔가에 우리가 자아(Self)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 우리는 이 자아를 거의 알지못한다. 그 자아는 내면 왕국의 왕이자 여왕인 자아 그리고 모든 영광과 모든 지혜의 자아이다. 그 자아는 우리가 찾을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며 축복할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지상에 거주하고있는 수십억의 우글거리는 영혼들로부터 나와 빛을
향해 나가는 존재들의 부단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깨달음(enlightenment)을 추구하고 지혜를 추구하며 자아를 추구한다. 자아에 대한 추구와 존재의 의미는 동시에 제 3의 눈에 대한 추구를
뜻한다. 제 3의 눈은 종종 인간 자체만큼 고대의 철학을 내포한다. 이 가르침은 신비의 학파들의 보관소에 오래동안 보관되어 왔다. 인간의 가장 높은 영적인 경험들에
근거한 비밀스런 가르침 말이다. 극소수의 사람만 이 학식과 지식 그리고 이해를 얻고자 시도하였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으로 여겨졌었다. 아쿼리스 시대에, 지식의 대부분을 펼쳐보이는 것 뿐만아니라 신비주의 문앞에 빠르게 다가설 수 있는 그 지식을 통합하여 과학적 개발로 나가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가르침 즉, 이색적이고 신비적인 인간에 대한 연구는 기원전 수 천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5000 년전 나일강의 강둑위에 지어진 고대 이집트의 신생 신비주의 학파에서 성직자이자 왕인 Zoser는 지복의 기본과 산상설교를 가르쳤다. 4000 년전 인도의 신성한 자무나 강둑에서는 크리쉬나 영주가 가르침을 설파했으며 중앙 아메리카의 고지 평원에서는 이미 오래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깃털을 단 서펀트(Serpent)에 의해 가르침이 설파되었다. 기독교적 신앙(christianity)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은 인류가 지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그 시작부터 존재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Piscean 시대의 여명기에 'Christiantiy'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지구가 새로운 시대의 에텔속으로 더 크게 진동할때, 인간과 그들의 마음은 강한 형태변형을 겪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그 자신이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진정으로 성령(Holy Spirit)을 위한 체널(통로)인 것이다. 그 성령은 우주 의식과 우주 에너지의 무한한 근원으로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연계 되어있다. 정치인들 무역인들 그리고 과학자들은 지상에서의 실용적인 생활을 위해 태양에너지를 우리의 근원으로서 여기고 있는 것처럼 신비주의자들은 그의 존재를 프라나 에너지의 고압과 합일될 수 있도록 맞추고자 한다. 그러한 동조(attunement, 파장을 맞춤)로써 제 3의 눈의 탄생과 다가올 NEW MAN에서 궁극적인 실체에 관하여 그의 인식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깨달음에 도달하기위해서 필요한 몇가지 단계들과 방법들이 이 책에서 논의된다.
물론, 영적 추구자(헌신자)가 영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 따라야할 여러개의 유효한
단계들과 방법들 그리고 행로들이 존재한다.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거나 제 3의 눈을
열기위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고 요가를 수행하고 만트라를 암송하고 독신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생명에 대한 숭고한 존경을 갖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자아에
따르고 영적인 측면들이 만물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또한 영적인 진화를
추구할 수 있다. 신의 계층구조(Divine Hierarchy)나 성령(Holy
Spirit)의 목적에 도움이되는 많은 방법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몇몇 단계들은 그들이 각각 행로를 따라 가야할 올바른 단계들이며 우리가
몸소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할 중요한 방법들이기 때문에 토론을 위해 선정된 것이다.
여러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길을 찾으려 노력할 수 있으나, 여러분에게 놓여진 모든
길들에 관한 가능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신비스러운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본 책자의 목적이다.
제 1 장
제 3의 눈의 각성
- The Birthing of the Third Eye
심장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할때 심장을 인체의 별개 기관으로써 분리하여 논의하는
것이 비효과적인 것처럼 제 3의 눈에 관한 글도 인체의 독립된 한 영역에 관한 지엽적인 논의가 되서는 안된다. 해부학 서적들은 크기와 깊이, 높이와 무게등을 갖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심장을 다룬다. 즉, 인체의 독립된 별개의 기관으로써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인체에 심장병이 발병하였을때 심장이라는 기관 뿐만아니라 인체의 내부에 뻗어있는 동맥들과 정맥들 그리고 피까지도 그 병의 원인에 연관된다. 심장은 인체의 전체 조직과 상당히 관련을 맺고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 3의 눈도 상기에서 논한 심장의 경우와 비슷하다. 어떤 사람도 전체의 신비적 해부구조도 속에 이 신비의 센터를 넣고 관련지어야 제 3의 눈에 관한 글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전체의 신비적 해부구조도란 7개의 에너지 중심부인 차크라들과 성기위에 놓
이며 척주 아래부분 위치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양의 동적인 힘 즉, 쿤달리니 그리고 에다와 핑갈라로서 알려진 신경 체널들 그리고 7만 2천개의 신비의 에너지 체널인
나디들과 제 3의 눈 자체를 포함한다. 제 3의 눈은 두뇌에 있는 송과선/체(역자 주:
pineal glands- a small,
grayish, cone-shaped, glandular outgrowth from the brain of all vertebrates
that produces the hormone melatonin: in lower vertebrates, often visible
as an external median eye), 뇌하수체(역자 주: pituitary ventricle - a small, oval
endocrine gland attached by a stalk to the base of the brain and consisting of
an anterior and a posterior lobe: it secretes hormones influencing body
growth, metabolism, the activity of other endocrine glands, etc.] 그리고 제 3의
空洞( 역자 주: the third ventricle - 뇌수의 공동, 실(室), )등의 주요기관과 관련된다.
한편, 척주(spinal cord)와 슈슘나과 관련된다. 슈슘나는 척주의 센터를 관통하는 미세한 영적인 선으로 척주의 말단에 위치한 루트 차크라에서 두뇌에 이르르며 인간의
물질적 두뇌를 넘어
서 "영원한 영역"에까지 확장한다. 여기서 영원한 영역이란 바로 신비의 大靈(Oversoul)이 거주한다. 즉, Oversoul이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I AM을 뜻한다.
따라서, 제 3의 눈에 관한 글을 쓰기위해서는 인체에 관한 전체의 신비적 해부구조도를 바탕으로 해야한다. 이러한 글은 필요하며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가르침들을 포함한다. 깊이있는 탐구는 쿤달리니의 각성과 제 3의 눈의 각성에 초점을 둔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 헤매는 자는 쿤달리니나 제 3의 눈이 어떤 기능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적인 쿤달리니와 제 3의 눈의
기능을 "내면의 여행"에서의 관점에서 보면 제 3의 눈을 찾을 수 있는 처음 지점은 바로 중뇌(mid-brain)이다. 제 3의 눈은 송과선과 뇌하수체 그리고 뇌의 세번째 동공과
깊이 관련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이 시작 지점에서부터, 정신 여행은 상부로
이끌어지고 점차로 고차원적인 의식의 수준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존재 추구자는 직관적 인식"intuitive awareness"의 상태로부터 초의식의 상태로 이동하며 지혜의 마음(Wisdom Mind)로 올라가며 궁극적으로는 청정한 영(Pure Spirit)의 왕국에 도달한다. 내면의 세계를 편력하고자하는 이들은 "행로를 나선다"라고 말한다. 즉, 그들은
지고의 영혼 도달을 향한 길로 발을 내딛은 것이며 그 여행은 내면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게된다. 그러한 여행 즉, 항해(trip)는 단지 마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며 마음은
정신적 보행(walking)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육체의 발로 산의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것과 같다. (역자 주: aware - implies having knowledge of something
through alertness in observing or in interpreting what one sees, hears,
feels, etc. [to be aware of a
fact], 한편 conscious - implies awareness of a sensation, feeling, fact,
condition etc. and may suggest mere recognition or a focusing of attention [
consious of a draft in the room], 한편, cognizant - one has certain o
r special knowledge of it through observation or information )
내면에 잠재한 "신의 왕국(Kingdom of God)로의 여행에서, 마음의 발과 손은 가능한 모든 장애물을 대처한다. 상부로 펼쳐진 길(Way)을 봉쇄하고 있는 정신적 문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집중된 힘과 노력이 요구된다. 육체의 근육힘이 봉쇄된 물질적 문을 열고 박차고 나갈 수 있는데
필요한 것처럼 마음의 근육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힘과 더불어, 비밀스런 "힘의 단어"(Word of Power) 를 알고 암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힘의 단어"는
일상생활속에서 빈번히 이야기 되는 말이아니라 비밀스런 말을 뜻한다.우리는 이 "힘의 단어"를 일명 만트라(Mantra)
즉, "眞言"이라고 말한다. 만트라들은 우리가 Holy Nad(Sound Current, 聖音)으로 부르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제 3의 눈과 성스러운 음률(聖音)
아스타라에서 발간한 생명의 서에서 설명한 신의 성음(Sound Current,聖音)을 듣는 것과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것에 관한 제 3의 눈을 각성시키는 것에 관한 많은 책이 현재까지 쓰여졌다. (Astara - 역자 주: Astara는 1951년에 비영리 종교 단체로서 다음의 이념적 기치아래 창립되었다. 모든 종료들의 중심지로서 인류에게 공헌이되는 모든 종교들의 교리와 사상을 용인하며 그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신비주의적 그리스도 정신을 지향한다. 이 "쿤달리니와 제 3의 눈"은 아스타라에서 발간한 생명의 서"生命의 書"의 확장본이다.) 이 "생명의 서"는 단지 아스타라 회원들에게만 이용가능하며 등급별 교재로서 간행되었고 활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생명의 서"에서의 가르침에 대하여 논박하지 않을 것이다.
성음(Sound Current)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현재까지 정의되고 있다. 지고의 존재,
숭고한 존재로서의 신이 다른 이름으로 종교에서 언명되고 있는 것과 같다. 성서에서
성자들과 예지자들은 성음을 말씀(The Word)라고 명칭하였다. 고대의 신비주의 학파들은 잃어버린 말씀(The Lost Word) 또는 잃어버린 화음(The Lost Chord)이라는 용어로 명칭하였다.이 학파들은 한때의 인간이 그 말씀을 소유하였으나 물질 왕국으로의 여행동안 신성한 소리의 율동인 성음과의 접촉에서 멀어져 갔다고 이야기한다. 인도의 고대 선각자들과 Rishis의 성스러운 글인 베다 성전에서는 그것을 Holy
Nad(Nahd로 발음함)라고 말한다. 이슬람의 현자들은 그것을 칼마(Kalma)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이슬람 슈피교(muslem sufis)에서 그것을 Holy Shabd라고 부른다.
지혜의 눈을 열고 쿤달리니를 깨우고 신성한 소리의 율동을 듣는 것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다. 지혜의 눈을 열고 쿤달리니를 깨우는 수련과 같이하여 성음을 들으려 시도하지 않는다면 제 3의 눈을 각성시키거나 쿤달리니를 각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삼위일체성(The Trinity) - 인간이자 신
다음의 글은 인간의 영적 진화가 펼쳐 보일 수 있는 전체의 스텍트럼을 다루고 있다. 한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기본적인 방법에 초첨을 두고자 한다.
1. 제 3의 눈(The Third Eye)을 각성시키는 것
2. 성음(Holy Nad)을 듣는 것
3. 쿤달리니(Kundalini)를 각성시키는 것
기나긴 여행 도중 어느 한 고비에서, 헌신적 수행자는 내면의 기능들을 개발하는 것이 지고의 존재와 결속되어있는 기능들을 개발하는 것임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지고의 존재는 자신의 또다른 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내면에 거주하는 존재의 시각과 청각적 기능들을 펼쳐보이며 그의 현재 인성/인격(Personality)을 보호한다. 그러나, 지고의 존재는 그자체가 지닌 기능이 완전히 개발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성적 자아로서 그가 단지 그의 감각적 지각만을 알려져있지 않으며 깨달아지지않은 자아, 즉 초의식적 자아에가 지닌 시각과 청각 그리고 우주적 지각들같은 기능들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깨달음이 하부의식적 마음의 힘에 대하여 새로운 자각을 가져다 줄때, 별도의 실체(entity)로서 내면에 또다른 자아(self)가 있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고지에 다다르게 되면 존재 추구자는 자아의 심원한 신비스러움을 탐구하게 된다. 즉, 잠재적 힘을 지닌 삼위일체(Trinity)를 탐구하게 된다.
첫째, 모든 생활에서의 당신이다. 당신은 깨어있는 의식 수준에서 표현한다. 이것은 인성으로서의 자아이며 인성적 자아(Personality Self)이다. 현재의 인격체로서 이 화신속에서 먹고 움직이고 잠자고 일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존재를 뜻한다. 고대의 지혜와 신비주의 학파에 따르면 이 깨어있는 의식적 자아를 이름하여 Ba라고 말한다.
둘째, 감추어져있는 "亞神적 자아"(sub-god Self)이다. 우리를 이것을 하부의식적
마음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존재에 대한 이 부분은 당신 즉, 깨어있는 의식의 마음을
지닌 인성적 자아의 명령을 이행하도록 해 줄 믿음직스럽고 강한 지니(genie)와 같다. 당신의 존재가 지닌 이와같
은 측면을 "낮은자아"로서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체로부터 멀어질 수는 없다. 이
지니 자아(Genie Self)는 내면 세계의 실체로서 모든 활동들의 기능들속에서 프라나-생체 에너지의 낮은 전압의 힘을 통해서 동작하고 표현된다. 단지 이 점에서 지니 자아는 "낮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라딘이 마술 램프를 손으로 비볐을때 나타난 지니처럼 당신의 하부의식적 자아(subconscious self)의 지니는 당신이 바라는 모든 소원을 이해하고 들어줄 수 있다. 그 소원이 자아적 초월성을 갖든 아니면 자아 파멸을
초래하던간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이 하부의식적 마음은 신체-표현의 매개체로서 에텔체를 수단으로하며 당신의 주위를 둘러싸고있고 당신의 이중체(double)라고 부른다. 고대 지혜와 신비주의 학파에서, 그것을 Ka라고 말한다.
현 아쿼리스 시대에 고대의 가르침을 들여놓는 현대의 신비주의 학파들사이에서
Ka에 대한 한 측면은 내면에 잠재된 여성적 모체신(Mother Deity) 즉, 쿤달리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부의식의 마음, Ka ,그리고 쿤달리니 이 세가지가 동시에 기능을 한다는 독특한 가르침을 제공한다. 일상생활의 자각 수준에서 동작하는 Ka는 쿤달리니 힘을 이용하여 You-niverse를 "진행"시킨다. 이때 이 Ka는 당신에게서
어떤 의식적 자각이 없는 하부의식의 마음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수행자가 스스로의 깨달음을 추구하여 쿤달리니를 깨우기 시작하게 되면 Ka 하부의식이 갖는 미묘하고 낮은 전압이 점차로 힘으로서 충전되어 마침내 수행과 요가적 노력에 따라 Ka는 진정한 잠재력으로 깨어나고 고압의 힘을 뿜어내며 깨어있는 의식 Ba를 초의식 존재로서 변형시킨다.
셋째, 大靈(Oversoul)이다. 지고의 자아로서 초의식의 마음을 표현한다. 고대 학파에서 이 Oversoul을 Aumakua라고 부르며 당신이 살아가고 숨쉬며 당신의 존재를 갖게되는 바로 개인신이다. 이러한 당신의 존재에 신적인 면은 당신을 보낸 "천국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이다.그 아버지는 당신을 현재의 인성체로서 물질의 왕국에 내보냈으며 화신으로서 표현되어 물질 형태를 지니고 물질 존재에 대한 교훈을 배우고 있다. (역자주: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현재의 우주계까지 펼쳐진 의식세계와 물질세계는 결국 의식-마음-물질-프라나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물질에 대한 완벽한 깨달음에 도달하여 제 2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우리 신들의 목적이라고 하였음. 이 가르침은 본인에게 가르쳐준 마지막 영적인 가르침이자 이 지구상에 어떤이도 이 우주계의 존재에 대하여 본인의 스승만큼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Aumakua는 매우 높은 주파수에 존재하며 그곳에서 기능을 한다. 그것의 힘은 인성체인 깨어있는 의식으로서의 Ba 보다 고차원적인 힘을 지니며 깨어나기 전의 Ka보다 고차원의 힘을 갖는다.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Oversoul은 신이 아니다. Oversoul은 신의 대리자이며 모든 영혼을 보호하는 신의 측면을 지닌다. 신비주의 관점에서, Oversoul은 인간이 개별화된 신적 자아(God-Self)로서 행동하도록 신이 보낸 "성령(Comforter)"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움직이는 영혼"으로서 짜여진 Ba(인성-Personality)와 Ka(하부의식의 인성)을 갖는다. 이 "움직이는 영혼"은 물질적 형태에 관련되어 물질계 존재에서 표현되며 지구상에 화신으로 있는 동안 형체화된다. 이 두개의 자아가 갖는 의식 수준들을 보호하는 것이 빛을 지닌 이방인 즉, 지고의 자아(High Self)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 있으며 물질계에서 인성의 기능과 발생을 자각하고 있다. 인간 존재에 가까이 존재하며 인성이 그 존재의 깨달음에 이를때까지 그리고 안타카라나(Antahkarana)라고 이야기하는 둘 사이에 통신 케이블이나 전화선을 만들어주는 기도와 명상의 힘을 깨닫게 될때까지 인간 존재의 후면에 머물러 있는다.
제 3의 눈을 여는 것, 성음을 듣는 것 그리고 쿤달리니를 깨우는 것은 물질적 자아 의식을 Oversoul 즉, Aumakua의 주퐈수에 맞추는 문제이다. 이러한 작용은 라디오의 주파수(파장)을 맞추는 것과 동일하며 그결과로서 위대한 존재(Great Being)로부터 "은총"의 받게되고 지고의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즉, 영적인 눈으로 보게되고 영적인 귀로 듣게 된다. 이러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성적 자아는 자신의 주파수의 진동을 Oversoul과 일치시켜야만 한다. 한편, Oversoul은 그것이 지닌 엄청난 힘을 낮추어 두 힘이 서로 공통되는 "力場"속에서 흐를 수 있도록해야 한다. 이러한 연결을 만드는 것이 하부의식 Ka - 쿤달리니의 목적이다. 이 하부의식 Ka는 깨어있는 의식으로서의 인성적 자아와 초의식적 자아 사이에 연결고리로서 동작한다.
따라서, Aumakua 즉, 천국에 계시는 아버지와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으려면 ka이자
내면의 하부의식적 실체 그리고 여성적 모체 쿤달리니이자 내면의 전능(全能)에 관하여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특별한 행로를 걷어야할 발심자는 어느곳에서나 자아의 삼위일체성을 알게되고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그의 처음 입문을 향해서 "동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수행의 행로를 출발하는 영적 발심자로서 이제 그들의 목적은 빠르게 다가오는 여명의 아쿼리스 시대에 깨달은 영적 입문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