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휴가 지나고 첫 출근들 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부산한 차량의 흐름과는 달리 도로는 밀리는 편이라 관악산을 걸어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커피 두잔에 또한 보온병엔 맹물을 1리터 넣고, 컵라면도 하나 배낭에 넣었다. 날씨가 더웁다는 보도를 접했기에 가을 복장으로 천천히 걸어 관악산 입구에 도달을 하였다. 평일 임에도 많은 인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 시간은 11시가 다 되었는데 가을과는 달리 늦은 시간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부터도 좀 게으름을 피었지만 겨울산행은 일찍 올라갔다 일찍 내려오는 것이 상책이다.
그간의 산행에 힘쓰지 못해서 인지 오래만에 올라서 인지 다리에 뻐근함이 올라온다.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런 느낌이기에 어느 면에 서는 자중하는 그런 시간도 갖을 수 있어 너무 좋은 산행이기도 했다. 싱그런 산 내음이 이렇게 좋게 느껴진 때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름엔 공학관 코스를 많이 갔었는데 겨울엔 돌산코스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서서히 오르는 재미도 있지만 아무 곳으로나 하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더욱 즐겨하는 것 같다. 삼성산 앞 거북바위에서 라면을 먹고 바로 하산길로 들어섰다.
한시간쯤 걸려 내려온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은 두시를 가리키고 있다. 다시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35분 걸린 것 같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항상 버스를 타고 다닌 시절이 우습기만 하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걸어간 적도 많다. 집에 도착하니 카메라 없는 산행이 즐겁긴 했지만 못내 아쉬움은 남는다. 다시 배낭을 벗어던지고 카메라를 챙겨 앞산인 국사봉을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왜냐하면 가끔 500번 버스를 타고 국사봉 터널로 집에 올 때 터널입구에 약수암이라 쓰여진 이정표를 보아온지라 약수암에 가 보고픈 충동이 늦은 시간에 발동이 걸린 것이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
[산허리 오르는 길목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마른 고추가...]
[국사봉 오름길에 봉천동 쪽엔 용주사가...]
[용주사 마당에 소각로가 특이하게...]
[소각로 잠금장치...]
[귀엽게 생긴 쌍석등...]
[석등의 모양이 간단하면서도 예쁘게...]
[맷돌이 금방이라도 쓰던 것 같이...]
[산신단에 오르는 계단...]
[용주사 산신단에 호랑이와 산신...]
[약수암 석판...]
[윗층엔 범종각이라 쓰인 현판이...]
[약수암 범종을 매단 용뉴...]
[약수암 경내...]
[약수암 대웅전...]
[약수암 삼성각...]
[대웅전 뒤편...]
[대웅전뒤편엔 삼성각이 자리하고...]
[약수암 장독대...]
[약수암 대웅전 안은 너무도 컴컴...]
[좌측에 자리한 문수보살...]
[대웅전 중앙의 부처님...]
[우측에 자리한 보현보살...]
[대웅전 용머리상...]
[범종각의 편안한 모습...]
[좋무소 앞에 커다란 석등이...]
[석등엔 평화로운 모습으로...]
[석등밑에 놓여진 작은...]
[석등밑에 자리한 작은 부처...]
[대웅전을 옆에서 보면...]
[대웅전 주춧돌...]
[약수암 석등의 아름다움...]
금강금강역사는 인도의 약사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처음에는 갑옷을 입은 신장형(神將形)으로 표현되었지만 차츰 반라(半裸)의 몸에 천의를 두르고 팔을 들어 왕성한 힘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보통 사찰의 좌우에 두 신을 마주보도록 배치했는데 이는 사악한 것이 성스러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입을 벌리고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상은 아금강상(阿金剛像)이라고 하며, 입을 꽉 다문 채 주먹으로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은 음금강상음金剛像)이라고 한다.
인왕은 금강역사와 밀적역사(密跡力士)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는 같은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수호신으로 사찰이나 불전佛殿)의 입구와 석탑의 문 등에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많이 남아 있는데 얼굴은 분노형이며 상반신은 옷을 입지 않은 나형으로 신체의 근육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