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 되다가 1915년경 사리원으로 옮겨 전승 된 탈춤으로 1967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연희가 중단 되었다가 1945년 8.15 광복 후 복원의 노력이 있었으나 1950년 6.25 한국 전쟁 때 연희자들이 남한에서 월남을 하자 지금은 서울 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중요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전승과 보존에 노력 하고 있다 전 7과장이며 4상좌춤·8목중춤·사당춤·노장춤·사자춤·양반춤·미얄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풍물을 울리면서 공연 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와 제사를 지낸다. 등장인물은 상좌 4명 목중 8명 거사·사당·노장·신장수·원숭이·취발이·샌님·서방님·종가집 도련님·말뚝이·영감·미얄·남강노인·무당·사자 등 모두 36명이며, 탈은 27개가 사용된다.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일부다처제로 인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준다. 피리·젓대·해금·북·장구 등으로 구성된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염불과 타령·굿거리에 맞추어 추는 춤이 주가 되며, 재담도 다양 하다 다른 가면극에 비해 중국 한시구절의 인용과 모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봉산탈춤은 황해도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온 해서탈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탈춤으로, 다른 탈춤에 비해 춤사위가 활발하며 경쾌하게 휘뿌리는 장삼 소매와 한삼의 움직임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황해도 해서 지방에서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탈꾼들을 초빙하여 1년에 한 번씩 탈춤을 추며 놀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황해도 봉산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며 또 소도시로서 탈춤 공연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탈춤 공연이 성행하였다. 약 200여년 전 봉산의 이속(吏屬) 안초목(安草木)이 나무탈을 종이탈로 바꾸는 등 많은 개혁을 한 뒤로 이속들이 주로 이 놀이를 담당하게 되었고, 「봉산탈춤」이 해서지방의 대표적인 탈춤으로 알려지게 되었다.「양주 별산대놀이」에는 없고 「봉산탈춤」에는 들어 있는 사자춤 과장도 약 100여년 전에 새로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주로 5월 단옷날 놀았지만, 원님의 생일·부임날 같은 관아의 경사, 중국 사신 또는 외국 사신 영접 등의 행사에 특별히 연희 되었다고 한다. 이 탈춤은 원래 봉산 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기게 되고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자 이 놀이도 사리원으로 옮겨져 경암산 아래에서 놀게 되었다. 이 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다. 이 결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으며 봉산탈춤의 고증자는 첫목중·노장역의 김진옥(金辰玉)과 놀량창·사자 마부역의 민천식(閔千植) 등이다. 이 놀이는 5월 단오에 벽사(辟邪)와 기년(祈年)의 행사로서, 또 하지의 축제로서 행하여지는데, 놀이준비는 군민에게서 비용을 거두어들이고 의상을 무당에게 징발하여 단오절에 앞서 약 1개월간 읍내에서 떨어진 절에 가서 합숙하며 연습을 한다. 사리원으로 옮겨오기 전에 봉산탈춤을 놀았던 봉산 구읍의 경수대는 나지막한 축대를 쌓아 그 위에서 놀았으나, 사리원에서는 경암루 앞 광장에 28개의 구획을 가진 반원형의 다락을 매고, 그 안마당에 멍석을 깔아 탈판을 마련하였다. 이 28개 다락 중 탈판 오른편 제3의 구획이 탈막[改服廳]으로 쓰였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경암루 뒤를 탈막으로 썼으며, 이 반원형 2층 관람석 다락의 사용권은 공연 비용을 내는 상인들에게 맡겨졌다. 탈판은 낮에는 단오놀이의 씨름과 여자들의 그네뛰기에 사용되었고, 밤에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탈놀이를 하였다. 놀이내용은 길놀이·고사·무동춤으로 이루어진 전편과 탈놀이로 이루어진 후편으로 구별된다. 길놀이는 탈놀이에 출연하는 일부가 악공의 주악을 선두로 사자·말뚝이·취발이·포도부장·소무·양반·영감·상좌·노장·남강노인의 순서로 열을 지어 읍내를 일주한다. 이 때 원숭이는 앞뒤로 뛰어다니며 장난한다. 일주하는 도중 광장에 이르면 행렬자는 모두 어울려서 한참 춤을 추고, 다시 열을 지어 지정된 놀이터로 가서 본격적인 탈춤을 시작한다. 원숭이와 사자는 놀이판이 좁아지면 관객을 정리하여 이를 넓히는 일도 한다. 근래에는 길놀이가 없었고, 나무판이나 공지판에 광고문을 적어 사방에 붙였을 뿐이라고 한다. 북한에 속한 황해도 봉산군의 탈춤이긴 하나 참고로 옛 봉산군의 중심지는 지금은 봉산에서 분리 독립한 사리원시이다. 하지만 사리원 탈춤은 절대로 아니다. 이미 일제 시대부터 이 지역 중심지인 사리원에서 주로 공연되었으나 그 시절에도 그냥 봉산탈춤이라고 불렀다 황해도 기린, 서흥, 봉산, 황주, 재령, 신천 및 안악 등지의 탈춤을 대표하는 황해도 탈춤으로 고려 이래의 연등행사(燃燈行事)의 전통을 이어서 전에는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놀았으며 조선조 말부터 세시 풍속의 하나로 5월 단오절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연희되면 새벽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중부지방이나 황해도의 해주 탈춤에 비해서 훨씬 활발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춤사위나 각 과장의 분류는 그다지 자세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7과장으로 나뉘어 있다 봉산탈춤은 국내에 전해지는 연희중에서도 예능화가 상당히 진행되어있는 연희인데 연주자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여타 연희들과 달리 여성이 마당에 출연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북한에서도 최근 봉산탈춤이 복원 되어 있긴 하나, 현대적으로 변형되어 전통 스럽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몸짓(mime)과 동작(科:action)과 재담(才談:白, dialogue)과 노래가 따르는 가면무극으로, 크게 보아 가무적 부분과 연극(희곡)적 부분으로 구성된다. 봉산 탈춤은 전문적인 탈꾼들이나 신명이 좋은 마을 사람들이 장터나 광장에서 연희하는데 길놀이부터 뒤풀이에 이르기까지 전 과장을 서른여섯 가지 배역으로 연기한다. 그 내용으로 보아 크게 일곱 과장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과장의 구분은 그리 엄격하지 않다. 그리고 각 과장도 주제별로 된 몇 개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한 테두리 속에 들어 있다 사용된 가면은 상좌(上佐) 4개, 목중(墨僧, 目僧) 8개, 거사(居士) 6개, 사당(社堂) 1개, 소무(小巫) 1개, 노장(승)(老長<僧>) 1개, 신장수(鞋商) 1개, 원숭이 1개, 취발(醉發) 1개, 맏양반(兩班) 1개, 둘째 양반 1개, 셋째 양반 1개, 말뚝이 1개, 영감 1개, 미얄 1개, 덜머리집 1개이며 예전에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진흙과 종이로 만든다 주요 가락은 염불·타령·굿거리 장단이다. 춤사위는 깨끼춤이 기본을 이룬다. 역대 예능보유자는 민천식(놀량창·사자마부)·김진옥(첫목중·노장)·이근성(李根成:목중·취발이·사자)·김용익(金龍益:목중·사자마부)·오명옥(吳明玉:피리·해금 악사)·최경명(崔景明:말뚝이·취발이)·김선봉(金先峰:상좌·목중) 등이 있으며, 2020년 현재 예능보유자로는 양소운(梁蘇云:사당·미얄·무당)·윤옥(尹玉:상좌·목중·소무)··김애선(金愛仙:소무·상좌·목중) 등이 지정되어 있다. 채록본으로는 송석하채록본(宋錫夏採錄本, 1946)·임석재채록본(任晳宰採錄本, 1957)·이두현채록본(李杜鉉採錄本, 1966)·최상수채록본(崔常壽採錄本, 1967) 등이 있다.
출처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봉산탈춤(鳳山─)
사진 : Google & 한국민속예술사전
봉산탈춤의 탈들 (진흙과 종이(창호지,초배지,곽종이)로 만듬)
먹중 (8개)
취발이
신장수
원숭이
노장
무당
소무
용산 삼개 덜머리집(봉산 탈춤의 덜머리집은 제7과장 미얄춤에 등장한다. 영감과 할미는 난리가 나서 헤어져 서로 찾아 다니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대목에 등장한다. 이때 영감의 첩이 등장하면서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영감과 할미의 싸움은 할미와 첩의 싸움으로 발전한다)
상좌 (4개 원래는 남자 탈꾼들이 치마 저고리에 장삼과 고깔을 쓰고 가사를 두르고 춤을 추었으나 1920 ~ 1930년때 춤을 잘추는 기생들이 상좌 역할을 잘 해서 지금도 여자 연희자들이 상좌 역할을 많이 한다 대사는 없다)
남강노인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봉산 탈춤과 강령 탈춤에서 영감의 구박을 받고 죽은 미얄할미의 넋을 위로해 주는 인물 남강노인南江老人을 뜻하는 수노인壽老人은 남극 가까이에 있는 노인성老人星이 인간 수명을 지배한다고 하여 신격화된 것이다.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은 고대 중국의 신화에서는 복성福星, 녹성祿星과 함께 장수와 복록을 상징하는 삼성三星 중 하나로 숭배되었다)
사자 (대바구니와 한지로 만들며 옷과 몸통은 하얀 털실로 만든다 사람이 무려 2명이 들어가서 사자춤을 춘다)
미얄영감
말뚝이
사당
취발이 아기 (솜으로 만든 인형에 옷을 입히고 얼굴에 탈을 씌어서 만든다)
미얄할미
첫째양반
둘째양반
도령
사진 : 김수남 기념 사업회
첫댓글 다음 시간에는 강령탈춤을 소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