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KBS 제7기 장애인 앵커 허우령 씨
- “다양성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앵커가 되겠습니다”
KBS는 차별과 편견 없는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장애인 앵커를 선발하고 있다. 올해 제7기 장애인 앵커로 시각장애인 허우령 씨가 선발됐다. 그는 지난 4월부터 ‘KBS 뉴스 12’에서 생활뉴스를 진행 중이다. 안내견 하얀이와 매일 출퇴근길을 함께하고 있는 허우령 씨를 만나보았다.
Q.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앵커를 꿈꿔왔기에 매일이 기쁩니다. 그래서 KBS로 출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요. 이 기분은 원고를 받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내용을 파악하고 카메라 앞에 설 때까지는 긴장감이 감돌고 뉴스가 끝나면 “오늘도 해냈다” 안도감이 찾아오지요. 생활뉴스는 날마다 새로운 소식을 알리고 전하는 코너입니다. 설레고 긴장하고 안도하는 나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아요.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뉴스를 잘 전달하고 싶습니다.
Q. 뉴스 준비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전달받은 뉴스 파일을 읽기 쉽게 고친 뒤, 이를 점자와 음성 해설로 변환합니다. 이후 음성을 들으며 대본을 최대한 외우지요. 나머지는 여느 앵커와 같습니다. 발음 연습과 모니터링을 빼놓지 않고 하지요. 입사 후 처음에는 애를 많이 먹었어요. 전문 용어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솜방망이’ 같은 말이 입에 잘 붙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한쪽 귀에 착용한 인이어로 PD님의 지시를 들으면서 점자정보단말기로 원고를 읽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올바른 보도에 대한 고민도 커졌어요. 해당 뉴스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원고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Q. 갑작스레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A. 그렇습니다. 열네 살 때였어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시야가 흐릿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확실한 병명을 듣지 못한 채 스테로이드제 치료와 혈장 교환술 시술을 받았고, 이후 시신경염으로 병명이 바뀌었어요. 오른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왼쪽 눈이 시력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데, 사물 형체나 색깔을 약간 유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중심 부분만 시력이 있는 터널 시야라서 글씨를 본다거나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시각장애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어요. 그러나 시각장애로 인해 좌절하고 무서워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듬해 광주에 있는 맹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처음 아나운서라는 꿈을 갖게 됐어요. 또한 그때 만난 친구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지요.
Q. 좋은 영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A.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께서 방송부 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어요. 처음에는 “제가 어떻게 해요?”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점자에 능숙하지 않았던 데다 그냥 대본을 읽기에는 시력이 좋지 않았거든요. 시각장애가 있으니 당연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시각장애가 있으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어요. 장애가 저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무척 활발하고 적극적이었어요. 체육 활동, 독서 모임, 요리 실습 등 다소 위험할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을 듯한 활동을 망설이지 않고 참여하더라고요. 그 순간 ‘에이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아침방송을 했을 때 “발음이 또박또박해서 듣기 좋았다” “방송으로 들으니까 목소리가 새롭더라”와 같은 칭찬과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시각장애라는 이유로 할 수 없다고만 여겼던 인식과 태도를 깨뜨린 날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와 소통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과 소식, 사회적인 문제를 알리고 전하는 앵커에 도전하기로 했죠. 건국대학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Q. 시험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A. 방송 전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어요. 혼자 뉴스 원고를 구하거나 자세, 발음 등을 교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강사님들께서 복식 호흡 및 발성을 공부할 때 직접 자신의 배를 만져보게 해주시기도 했고, 점자정보단말기로 원고를 볼 수 있도록 변환해주셨어요. 가장 크게 배운 건 이미지 트레이닝입니다. 카메라를 통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직업이다 보니 저에게 맞는 퍼스널컬러나 의상을 함께 고민해주셨지요. 말이 아닌 의상이나 손짓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기술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KBS 장애인 앵커 모집 공고는 방송국 누리집을 통해 접했습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짧은 원고를 읽는 영상을 제출하는 1차 시험과 스튜디오에서 당일 받은 원고로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 2차 시험, 면접을 거쳤어요. 지금 떠올려도 긴장되는 순간들이에요.
Q. 유튜브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A.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이 앵커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우령의 유디오’라는 채널을 개설해 라디오 진행자처럼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고,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그를 제작하고, 호소력과 문장력까지 요하는 내레이션도 했어요. 주로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다루는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요즘에는 장애인 앵커로서의 일상을 주제로 영상을 올립니다. 시각장애 앵커가 출퇴근하는 방법, 뉴스 원고를 보는 법 등을 말이죠. 장애인이 마냥 어둡기만 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여느 젊은이처럼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고 일상과 어우러지며 소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지난 2021년 장애인식개선 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했는데, 강단에 서서 인식개선 교육을 하는 것도 좋지만, 유튜브로 자연스럽게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인식개선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Q. 안내견과 함께 출퇴근한다고 들었습니다.
A. 삼성안내견학교를 통해 하얀이를 만났습니다. 흰지팡이로 보행을 하듯이 안내견 또한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있어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는 친구들입니다. 제가 외우고 있는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가령 직선으로 걸어야 하는데, 흰지팡이를 이용하다 보면 방향이 어긋날 때가 있거든요. 안내견과 함께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요. 건물 출입구 찾을 때도 편하지요. 무엇보다 제 소중한 친구로서 일상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요즘은 안내견 에티켓도 많이 확산되었어요. 함부로 쓰다듬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일이 사라졌지요. 식당이나 매장에서 출입 제한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점차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안내견과 관련된 법적인 절차와 내용을 인지하고 또 안내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이 또한 장애인 앵커로서 꾸준히 소통하면서 풀어나가고 싶은 부분입니다.
Q.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A.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앵커는 여러 뉴스를 종합해 읽고 해설하거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보도의 다양성을 더하는 사람이에요. 앵커는 영어로 닻을 의미합니다. 배를 정박시킬 때 닻을 내리듯 뉴스의 중심을 잡고 마무리한다는 뜻에서 붙은 명칭이죠. 그 의미에 걸맞게 다양한 정보와 소식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부분을 알리고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앵커로서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해 애쓰고, 정확한 정보가 전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89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