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믿음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만남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의 죄와 질병에서 구원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과 만남을 게을리하거나 피하는 사람이 있다. 바쁨의 핑계, 게으름의 성격, 질병으로 나약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만남이 없는 사람을 축복하지 않는다. 그 삶이 막다른 길, 잘못된 낭떠러지의 길, 고통의 길을 갈지라도 그냥 둘 수밖에 없으시다. 하나님과 만남이 없으면 은혜가 없다. 불평과 변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이룬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어느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기적과 축복받았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부러워하고 ‘하나님! 나에게도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그 사람의 축복을 보고 부러워하기보다 축복받기까지 하나님을 만나고 헌신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다. 이 사실을 확신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따라’ o[pivsw (3694 오피소 PG ojpivsw) 뒤로, 후에.
‘따라오려’의 뜻은 ‘뒤로(o[pivsw)’ ‘나타나다(e[rcomai)’ ‘바라다 좋아하다 기뻐하다(qevlw)’의 의미이다. 구원받은 후 하나님과 만남의 은혜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하나님 말씀하는 자리, 찬양으로 예배하는 시간, 기도하는 장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따름’은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뒤에서 기쁨으로 동행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만남의 은혜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 보다 앞에 위치하여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사고와 결정을 앞세운다. 우리를 돕는 성령은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위치와 모습, 생각이 어떠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십자가를 지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본 모습이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것은 자기 생각과 고집으로 하나님보다 앞에 서서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으로 하나님의 뜻은 뒷전에 있게 한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무시하고 사탄이 기뻐하는 죄의 성품이 강한 탓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 뜻을 따르는 합당한 믿음이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동물을 훈련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시급한 훈련이 개와 산책할 때 개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자칫 큰 사고를 유발하거나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난의 훈련은 개의 관점에서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의 생각을 좇아 행동할 것인지를 알게 한다. 주인의 생각과 행동을 좇을 때 거기에 알맞은 상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갖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은 단순한 사건과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죄 된 생각과 욕심을 씻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성장하여 복을 누리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복을 바라는가? 자기 생각과 성품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부인하고’ ajrnevomai (720 아르네오마이 VMADZS ajrnhsavsqw)
거절하다. 버리다.
자기 성품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좇아 사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풍속, 공중 권세 잡을 자, 육체의 욕심을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애가 타고 답답함)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음에도 세상 풍속과 욕심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변명과 생각을 앞세우고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리 오라’ 하면 그곳으로 쉽게 발걸음을 돌리고, 육신의 편리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과 만남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이다. 이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식어져 믿음의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스러운 생각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기에 하나님과 만남이 멀어지고 있다.
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피하게 한다. 하나님을 만나 함께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았다. 죄의 습성이 있으면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피한다. 이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기도, 말씀으로,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거절하고 버리신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 중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여인은 자주 장사로 각종 천에 자색 염료를 입혀 판매하는 사업가였다(행 16:14). 루디아는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다. 지금까지 자기 사업 성공과 확장을 위하여 살았으나, 복음을 들은 후 자신의 가정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게 한다. 사도바울이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는 첫 교회가 된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좇을’ ajkolouqevw (190 아콜루데오 VMPAZS ajkolouqeivtw)
뒤따르다. 복종하다.
기회가 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좇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좇음’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 삶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자기 생각이 먼저 앞서며 행동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세상 움직임에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며 복종할 것을 명령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다. 의무이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그 삶은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을 뒤따르며 복종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든, 판단이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어둠에 갇힌 자로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 십자가의 은혜는 자기중심의 어두운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며 복종하게 한다. 영원한 생명의 밝은 길로 가게 한다. 하나님은 그 삶을 축복하신다.
눅 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만남은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얻어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으로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사는 믿음이기를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