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발산과 그리심산의 축복
신27:11-15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압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나올 때 시내산 아래서 맺은 언약을 다시 확인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네가 성읍에도, 들에도, 떡반죽 그릇에도, 소생에도, 토지에도, 우양의 새끼에도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늘은 비를 그치고, 토지는 각종 자연 재해와 병충해를 당하고, 몸은 각종 질병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나고, 모든 소산물들을 원수에게 약탈과 노략을 당하고,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끌려가 그 곳에서 다른 신을 섬기게 되고, 모든 민족에게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7:15-68, 28:15-68).
그러나 율법을 지켜 행하면 복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많은 복을 내린다고 했습니다."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원수가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내리고, 창고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창성하고,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게 하고, 민족에게 부러움과 두려운 존재가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28:1-14).
1. 말씀 선포에 '아멘'하게 했습니다.
저주의 말씀이 선포되면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고,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리심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게 했습니다.
같은 율법을 한 번은 저주에 대한 경고로, 한 번은 축복의 약속으로 선포했을 것입니다 (Matthew henry).
한 번은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저주를 받으리라' 했다면 한 번은 '너희가 하나님만을 섬기면 복을 받으리라'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 율법마다 저주를 선포할 때는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했고, 축복을 선포할 때는 그리심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요구에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아멘'(히.아만)은 '확실하다' '신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요구에 '아멘' 한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의 요구에 합당하게 행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고 그대로 행하지 않을 때는 저주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만일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그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결단의 의지입니다.
이 말씀은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축복을 바라보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이 다 끝나갈 무렵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요단강 건너편 모압 땅에 머물 때에 여호와 하나님게서 모세에게 신11:29절과 27:11-28장까지 두 번이나 명하시기를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요단강을 건너 길갈을 지나면,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나오는데 그기서 6지파는 그리심 산에 6지파는 에발 산에 세우고 축복과 저주의 율법의 말씀을 선포하면 아멘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후계자 여호수아가 모세가 명한대로 그대로 실행하여 준수를 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에발산과 그리심산의 종교의식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의미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설명하고자 합입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서 있는 세겜 땅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율법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즉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리는 비결이 그 중심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제 경우 여리고 나아가 아이성 정도 정복을 하고 앞으로 정복해야 할 땅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말은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하는데 지금 팔자 좋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을 때가 믿음 없는 교인 같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백성의 삶에는 예배보다 바쁘고 더 중요한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삶의 핵심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 중심적인 삶이 바로 복된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를 통해 말씀에 은혜 받아야만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 단을 쌓아라 하지 않고, 저주의 산 에발산에 단을 쌓아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신11:29절에 보면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받은 산입니다. 그런데 왜 저주의 산 에발산에 단을 쌓아라고 합니까? 저주의 산 에발산은 바로 죄악 세상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죄악의 세상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세상 속에서 이뤄집니다. 교회는 본래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시 살게 된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이 구속의 감격 위에 드려져야만 참 예배요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주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그리심산에 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다 세겜성 근처에 있는너비가 200미터 정도 되는 골짜기 하나를 두고 남북 방향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리심산은 855m 정도의 높이가 되고, 에발산은 920m의 높이입니다.
이 두 산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두산이 인근에 골짜기 하나로 붙어 있지만,
그리심산은 산림이 무성하며 생명의 기운이 왕성한 산이요, 에발산은 거의 황폐하다시피 한 산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리심산은 일조시간이 길어 항상 밝은 곳이고, 에발산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 그늘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리심산을 축복의 산, 에발산을 저주의 산으로 지정하였을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교훈 하시는데 그리심산은 항상 햇빛을 바라보는 산이요 에발산은 항상 햇빛을 등지고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 나는 지금 어느 산에 서 있습니까? 그리심산입니까? 에발산입니까?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섰다면 그리심산에 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무관심하다면 나는 지금 에발산에 서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심산에 서서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으로 기가 솟아나서 신앙의 삶을 회복하는 예배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 >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의식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 ]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오염된 우리의 영혼을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거룩하게 소성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하고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즉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생수의 근원되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기가 열려 삶이 회복되어 지고 신앙의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변화에로의 초대입니다.
2011년 우리 모두가 그리심산에 선 축복의 지파가 되어 늘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축복을 바라보며
드려지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