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노래[제2편]
나보다 낮은 곳에, 언제나 나보다 낮은 곳에 물이 있다. 늘 눈을 내리깔고 나는 물을 바라본다. 마치 땅처럼, 땅의 일부처럼, 땅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빛나고, 무정형이고 시원하고, 수동적이나 중력이라는 그 유일한 악에는 철저하고, 이 악을 만족시키기 위해 특별한 방법들을 동원한다-에두르고, 뚫고, 녹이고, 스며들면서.
그 내부에서도 이 악은 작용한다. 물은 늘 가라앉고, 매순간 어떤 형태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려고만 하고, 어떤 교단의 숭려들처럼 마치 시체와 같이 배를 깔고 땅에 눕는다. 언제나 더욱 낮게 그것이 물의 신조인 것 같다 한층 높게의 반대이다
- 프랑시스 퐁주, 「물」 부분
물은 “에두르고, 뚫고, 녹이고, 스며들면서” 나아간다. 항상 더 낮게! 아울러 물은 일정한 모양이 없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형태를 깨트리기 때문이다. 물은 흩어지고 형태들을 파괴한다. 물의 도덕적 품성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물은 하향하고, 불은 상향한다. 물은 다른 것들이 애써 기피하는 가장 낮은 바닥에 엎드리지만, 성난 불은 바람을 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기어오르며 기세를 올린다. 물이 수동적이라면 불은 능동적이다. 물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바닥으로 나아간다. 물은 비굴하지는 않지만 비천한 곳에 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은 무정형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물이 아상(我相)에 집착하지 않고, 규범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항상 자유로움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물은 규율에 복종하는 철저함에서 수도승이고, 가장 낮은 바닥에 엎드린다는 점에서는 시체일 것이다.
물은 노자나 공자 같은 동양 철학자들이 자주 쓰는 ‘뿌리 은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서정시의 원류이기도 하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의 노래로 알려진 이 고대가요의 원가(原歌)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문으로 적은 「공후인」이 진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설화와 함께 채록되어 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 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 將奈公何
남편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아내의 노래가 널리 퍼진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다. ‘공후인’을 지은 것은 조선의 진졸(津卒)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다. 자고가 새벽에 집을 나와 배를 저어 가는데, 한 미친 사람이 흰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을 건너고 있었다. 아내가 뒤쫓아와서 막았으나, 그는 기어코 물에 빠져 사라진다. 아내가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의 노래를 부르니, 그 곡조가구슬퍼서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여자는 죽은 남편 뒤를 따라 제 몸을 물에 던졌다. 자고가 돌아와서 아내에게 새벽 강가에서 보고 들은 바를 전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아내 여옥이 슬퍼했다. 여옥이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연주하고, 이웃 여자 여용에게 전하니 이 노래를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한 사람이 죽고 난 뒤 남은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비극적 사태의 규모가 더 커지지만 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흐른다. 이 모든 사태를 목격한 곽리자고는 두 죽음을 품고 시치미를 떼는 강의 무정함에 몸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아내에게 전하며 다시 한 번 이 비극적 사태가 미친 마음의 충격을 진정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임’은 건너지 말라는 강을 왜 기어코 건넜을까. 그건 ‘임’이 술에 만취된 상태이거나 미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깊어 살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임’은 미쳐서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건너다가 죽고 만다. 이 비극적 사태는 뒤집을 수 없다. 죽은 ‘임’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임’의 강 건너기를 한사코 말렸던 남은 자 [아내]의 슬픔은 클 것이다. 남은 자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임’의 뒤를 따라 강에 제 몸을 던진다.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강을 건너는 ‘임’과 그 죽음을 막아보고자 소리쳐 만류하던 그의 아내는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비극은 ‘기어코’의 비극이다. 두 사람의 죽음은 '기어코' 벌어진 사태이다. 이 '기어코'야말로 시가 발원하는 지점이 아닐까.
장석주 「은유의 힘」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