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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들
본문: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찬송가에는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찬송가가 나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찬송을 부르면 훨씬 더 은혜롭습니다.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찬송가 94장 (통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조지 베벌리 쉬아는 1928년 미국의 대 공황이 불어닥치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턴 대학을 중퇴해야만 했습니다. 그에게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 있었고,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매주 성가를 불렀는데, 때 마침 시키고 방송국에서 모집하는 전속가수에 선발되었습니다. 1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에 그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방송국에 출연하게 된 것은 경제적 문제 해결은 물론 명예와 인기가 따르는 매우 좋은 기회였으나, 이 모든 것보다 신앙을 귀중히 여긴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신앙간증이며 세상을 사는 지침이 되었던 밀러부인의 이 시를 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죠지는 교회에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다 이 시를 생각하고 순식간에 떠 오르는 영감을 따라 피아노를 치며 이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94장 (통102장)은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다음 날, 예배에서 죠지는 이 찬송을 불렀고 많은 교인들이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시카고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높은 경쟁율을 뚫고 가수로 선발된 죠지의 구체적인 일정을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죠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음악의 재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부귀가 보장된 가수의 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는 기꺼이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의 일원이 되어 가는 곳마다 이 찬송을 부르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고, 1973년 한국에서 빌리그레함 전도집호가 열렸을 때도 죠지는 함께 내한하여 이 찬송을 불러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자신을 벌레 같다 여긴 왓츠 목사
아이작 왓츠(Isaac Watts, 1674-1748)는 자신을 벌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키는 5피트(약 150센티미터)에 불과했고, 코는 얼굴의 다른 부위보다 두 배 이상이나 크고 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눈은 매우 작고, 피부도 병이 든 것처럼 창백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크고, 눈은 작고 날카로우며, 매부리코 역시 호감을 주지 않는다』며 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다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통곡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벌레 같은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은혜였습니다. 그 왓츠 목사가 주님을 향해 가진 헌신의 마음을 시로 옮긴 찬송이 바로 『웬말인가 날 위하여』(143장)입니다. 원 제목은 『Godly Sorrow Arising from the Sufferings of Christ』(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한 신성한 슬픔) 입니다.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
4세 때 그는 아버지에게 라틴어를 배웠고, 나중에 히브리어, 헬라어, 프랑스어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7세가 되었을 때는 첫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지능을 지녔지만, 영국 국교회에서 요구하는 충성을 거절했기에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으로 후원하는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왓츠 목사는 신학을 비롯, 논리학과 문법, 교육학, 윤리학, 천문학, 지리학에 이르는 다방면에 걸쳐 70여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총 750여 편의 찬송시를 썼는데, 아직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사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시들을 읽고 그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낭만적인 관계가 이뤄졌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자 편지를 주고받던 여인의 마음이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왓츠는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찬송가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왓츠 시대까지 영국에서의 예배용 노래는 종교개혁가 칼빈으로부터 이어오는 시편가였습니다. 예배 중의 노래는 그 가사가 성경 안에 있는 것만 허용되어서 특히 시편의 가사가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 가사만 사용하는 것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배를 위한 노래 가사를 성경뿐 아니라 창작된 것까지 수용하게 되었다는 부분에 있어 왓츠 목사의 공로는 큽니다. 이제 예배용 노래는 시편가(Psalmody)만 사용한 것에서 찬송가(Hymnody)라는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이 찬송 듣고 회개해
이 찬송가의 원곡은 스코틀랜드 민요입니다. 1800년경에 스코틀랜드의 음악교사였던 윌슨(Hugh Willson, 1766-1824)이 시편가를 교육할 목적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화성과 4분의 3박자 형태의 찬송곡은 1825년에 스미스(R. A. Smith, 1780-1829)가 ‘Old Scottish Melody’라는 이름으로 편곡하여 발표한 것입니다.
이 찬송가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1만여 편 이상의 찬송시를 작사한 찬송가의 여왕 『패니 크로스비』가 이 찬송가를 듣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패니는 이 찬송의 마지막 소절,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를 듣는 순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존 뉴턴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영국 성공회 사제인 존 뉴턴 신부는 그의 나이 54세 되던 1779년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주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역대상 17:16〜17)의 말씀을 바탕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작사했습니다.
이 찬송은 자신의 죄, 즉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미국 남부 농장에 팔던 일, 노예선 선장으로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발과 손에 착고를 채워 배의 갑판에 생선을 잡아 말리듯, 노예들을 죽인 죄를 회개하는 마음에서 고백했던 기도를 적은 것입니다.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모든 죄를 사하여 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존 뉴턴은 1725년 영국 런던에서 상선을 탔던 가톨릭 교도인 아버지와 독실한 개신교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모친은 그를 성직자로 키우려 했으나, 그가 겨우 6세였을 때 결핵으로 사망합니다. 그 후 아버지가 바다에 가 있는 몇 년 동안은 사이가 좋지 못한 계모의 손에 자랐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선원 학교에 한동안 다니게 됩니다. 11살 때부터 존 뉴턴은 상선의 선원인 아버지를 따라 도제로 배를 탔으며,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특히 그는 흑인노예를 수송하는 소위 노예무역에 종사했습니다. 당시 노예로 납치된 흑인은 가축 이하의 대우를 받았고, 수송선의 위생상태가 열악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간염, 탈수증, 영양실조 등으로 부지기수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존 뉴턴도 노예에 대한 이러한 대우를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1748년 5월 10일 그가 22세일 때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선장이 된 그가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 좌초될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모친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어도, 이전까지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는 이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배는 기적적으로 폭풍우를 벗어났으며 무사히 귀선합니다.
1755년 존 뉴턴은 병을 이유로 하선하였고, 면학에 매진해 성공회 사제가 됩니다. 뉴턴 신부의 설교와 저술의 주제는 언제나 『주의 놀라우신 은혜』였습니다.
백인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기독교를 일부 수용함으로써 『문명화된 다섯 인디언 부족』이라고 평가받은 부족 중의 하나인 체로키 부족도 이 노래를 애송했습니다. 1838년에 시행된 미국의 강제적인 인디언 이주는 이후 오클라호마 주가 되는 지역에 강제로 체로키 부족을 이동시키는 정책으로 『눈물의 길』로 불렸습니다. 1만5천명 체로키 부족민 중 약 4천명이 사망한 힘든 이주 도중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체로키어로 번역된 이 노래가 불렸고, 이후 체로키의 애국가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땅에 묻으며 살아남은 자의 용기를 북돋우는 노래, 고난과 슬픔을 삭이고 승화시킨 노래가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었습니다. 남북전쟁(1861년~1865년) 기간에도 이 찬송은 남북 양군 모두에 의해 불렸던 아이러니한 일화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흑인시민운동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에도 어김없이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불리었습니다. 찬송가의 여왕 마헬리아 잭슨은 시민운동의 행진가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찬송은 빼앗기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던 그 날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을 때에도 이 찬송은 울려 퍼졌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 2)
딸을 잃은 슬픔
1873년 미국 시카고에 아주 행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래티오 G.스패포드이며 유명한 변호사이자 대학교수였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네 딸을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네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객선 하브호가 영국 배와 충돌해 승객 226명이 익사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네 딸은 모두 익사하고 아내만 겨우 생명을 구했습니다. 스패포드는 사고현장에 도착해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습니다. 이때 아내는 절망적인 슬픔 속에서도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딸들은 지금 천국에 있어요. 우리와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랍니다.』
스패포드는 아내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의 바다에서 시 한편을 지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찬송가 413장)입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혼을 맡긴 자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평안합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죄악입니다.
* 기도: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주님. 저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주님을 항상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흉흉한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평안하게 하시옵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하나님이시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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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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