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롬 12:9-18절
제 목 : 성도의 대인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1
일 시 : 2023. 5. 17.
로마서 12:9-18/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나와 단둘이 밖에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생활하기가 정말 쉬울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바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발라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발라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안 좋은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다면 사람과의 관계도 발라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지 그렇지 않는지를 평가하고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개인적인 삶은 어떻게 살아야 되고 대인관계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분량이 많아서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다음 시간에 나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도로서 개인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거짓이 없다는 말은 위선없이 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성실한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사랑은 꾸밈 없이 진실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진실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라고 했는데 악이란 사악한 이라는 뜻이며, 미워하다란 몹시 미워하다, 혐오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악함이 있는 악은 몹시 미워해야 합니다. 혐오할 정도로 미워해야 합니다.
반면에 선에 속하라고 했는데 속하다란 함께 하다, 연합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정의하면 악은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선한 일에는 연합하라는 명령과 권고입니다.
2)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 사랑은 필라델피아라고 하는데 형제 자매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애하고 라고 했는데 그것은 혈육(血肉)간에 주고 받는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형제 사랑을 말하는 필라델피아라는 단어를 수식하는 아델포스(형제)는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우애란 필로스톨고이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지만 본서가 기록 될 당시의 헬라 문헌에 자주 나오며 특히 가족간의 지극한 애정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이뤄진 한 가족으로 그 공동체 안에서 가족간에 느끼는 지극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은 성도들입니다. 불신가족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 안에서 가족이 되겠지만 그들이 끝까지 믿지 않는다면 사실은 가족이 아니라 원수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사랑이 단순한 이념에 그치지 않고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으로 실천되어져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서로 먼저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입혀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생각할 때 그 형제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떠나서 진실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러러 나게 됩니다. 결국 성도들끼리 존경하기를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하여라고 했는데 사도 바울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나태를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보통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에는 매우 열심이다가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주를 향한 처음사랑을 잃고 영적인 타성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게으르지 말고 라고 했는데 게으르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근심이나 걱정 또는 부끄러움으로 늑장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잠언을 보시면 게으른 자는 핑계를 됩니다. 잠22: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했으며, 잠26: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난 변화된 사람은 게으르거나 나태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어서 열심을 품고 라고 했는데 원어의 뜻은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혹은 열심을 품고 성령으로 인하여 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의 영으로 일을 한다면 열심을 품은 마음으로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열심을 품고 라는 뜻이 더욱더 타당합니다.
주를 섬기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주께 섬김을 다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섬기다란 종 노릇하다, 섬기며 충성하다, 종이 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충성을 다해 주인이신 예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4)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라고 했는데 소망이란 엘피스라고 하는데 일시적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헬라적인 개념보다는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개념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 중에 라는 말은 주님이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이며, 즐거워한다는 말은 설레임을 가지고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형벌 아래 있는 사람들은 참된 소망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망만이 참된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의 근거이며 근본이 되시므로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자이십니다.
환난 중에 라고 했는데 환난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지만 특히 성도들에게는 복음으로 인한 환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며란 휘포메노라고 하는데 참다, 끝까지 견디다, 굽히지 않다는 뜻으로 단순한 인내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망을 바라보고 참는다는 의미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참된 소망을 근거로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항상 힘쓰며 라고 했는데 힘쓰다란 전심 전력하다, 헌신하다, 견디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기도를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함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문장은 현재 분사형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기도에 힘쓰는 것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를 쉬지 말라는 뜻입니다.
5)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먼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라고 했는데 성도들이란 로마에 있거나 예루살렘에 있거나(15:25)를 막론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쓸 것을 공급하며 라고 했는데 쓸 것이란 쓸 것이나 궁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급하다란 주다, 몫을 기부하다, 참예하다, 함께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성도들에게 서로 어려운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입니다. 당시의 로마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간의 곤경(困境)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손 대접하기를 이라는 단어는 합성어입니다. 필은 사랑하는, 좋아하는 이라는 뜻이며 크세노스는 손님, 이방인, 객을 뜻합니다. 따라서 필로넥시아는 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하라는 뜻입니다. 애굽에서 객으로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역사를 생각하면서 손님 대접하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으므로 이 곳 저 곳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여행하는 자들(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핍박으로 도망 다니는 자들, 그리고 돈 때문에 심부름 다니는 자들은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대접을 잘받았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성도들은 한 가족이면서(10절) 모두 나그네이므로(히11:13),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고 합심하여 서로를 돌보았습니다.
힘쓰라는 추구하다, 좋다, 노력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현재분사형으로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입니다.
성도의 개인적인 삶은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며 악은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동시에 성도들을 사랑하되 존경하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또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힘쓰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단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