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을 맞추다
綠雲 김정옥
몇 날 며칠 숙성했다. 거기에 양념 한 꼬집 치고 골고루 버무린 글을 조심스럽게 선보였다. 글맛을 본 문우 평이 첫머리가 장황하고 끝부분에 뭔가 확 끌어당기는 임팩트가 없단다. 거침없는 그의 조언에 간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덜컥 내놓은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밍밍한 글을 앞에 펼쳐 놓았다. 어떡해야 내 글이 독자의 입맛에 맞을까, 얼마나 오래 익어야 마음을 찌르르 울릴까. 한동안 궁싯거려보아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리 엮어보고 저리 엮으며 간을 맞춘다. 양념이 깊게 배인 문장은 한두 개 덜어 내어 슴슴하게 하고 입안에 겉도는 문장은 과감하게 잘라버린다. 얼추 간이 맞는 듯하니 다른 욕심이 생긴다. 늘 먹던 맛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은 또 구미가 당기는 법이 아닌가. 고추냉이처럼 톡 쏘는 나만의 새로운 제조법을 창안하고 첨가한다. 맛이 색다르다. 쌉싸래하고 새콤달콤하고 알싸한 맛이 어우러져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제야 글을 다시 본 문우가 훨씬 맛깔스럽단다.
며칠 전 작은딸이 어버이날이라고 친정에 와서 사흘간 묵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애 생일과 한날이 겹쳤다. 딸이 좋아하는 잡채를 하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시금치를 데치고 느타리버섯, 돼지고기, 양파, 당근을 채 썰어 식용유와 소금을 넣어가며 달달 볶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재료를 한데 섞어 고소한 참기름 두어 숟가락 넣고 통깨 솔솔 뿌리고 후추, 간장, 설탕을 넣어 골고루 버무리니 맛이 제대로 났다. 이름씨, 그림씨, 꾸밈씨, 역할이 제각각인 언어도 잘 어우러지면 가슴 저릿저릿하고 뭉클한 맛이 나오지 않던가. 잡채를 한가득 입에 문 딸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운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았다. 2시간 넘게 펼쳐진 공연이다. 주연인 도나와 그의 딸 소피가 메기고 받는 대사는 떡메로 친 인절미처럼 차졌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쫄깃쫄깃했다. ‘댄싱 퀸~~, 맘마 미아, 허니 허니. ♫’ 관객의 마음을 들썩이는 노래에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손뼉치고 목청껏 따라 불렀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물렁물렁한 엉덩이를 연신 흔들었다. 전편에 걸쳐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노래와 역동적인 춤과 신들린 듯한 연기가 조화롭다. 대사 한마디 없는 앙상블 배우들의 코러스와 군무를 보며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커튼콜에 모든 출연자가 나와 축제 한판을 벌인다.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 모던한 무대, 빛나는 조명이 잡채의 맛처럼 어우러졌다.
간이 맞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미는 것이다. 균형이 맞음이고, 한군데 어우러짐이다.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상대에게 맞추며,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알맞게 밴 간은 전율이 인다. 한 편의 뮤지컬처럼.
어느 시인은 ‘잘 산다는 것은 서로 간을 맞추는 것, 당기고 늘이면서 간격을 섬긴 후에 시간이 엉겨서 내는 그 너머의 맛이 된다.’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나는 다른 사람과 간을 맞추는 것에 서툴렀다. 그래서 소소하게 부딪히는 일이 자주 생겼다. 그 생채기가 쓰라리고 따끔거려서 계속 안으로 숨어들었다. 여러 사람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날이 많았다.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겉돌았다. 당기고 밀면서 생기는 간격을 어찌할지 몰라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서로 엉겨 두부가 되듯이 쌓아온 시간 속에 나와 네가 서로 어우러져서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지구도 서로 간이 맞지 않아서일까. 세계 곳곳에서 강풍으로 사망자가 생기고 큰 산불로 인명 피해는 물론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이변이 생긴다. 생각 없이 쓰는 일회용품과 헤프게 쓰는 세제를 줄이고, 나 혼자 편하자고 굴리는 승용차도 삼가서 생태계 간을 맞추는 일에 적으나마 보탬이 되어야겠다.
엘리뇨 현상으로 4월 들머리에 홧홧한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더니 하얀 조팝나무, 이팝나무, 때죽나무꽃이 한꺼번에 우르르 피어난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산간엔 5월 중순에 눈이 펑펑 쏟아져 설국이 펼쳐졌다. 삶에 간을 맞추는 일도 우주의 섭리를 거슬리지 말고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흘러가면 되지 않을까.
나 원 참, 잡채의 간은 그냥저냥 잘 맞추는데 글은 쓸 때마다 제대로 딱 맞추질 못한다. 정말, 그때그때 다르다. 지난번 글이 좀 맛깔스럽다고 ‘매번 잘 되겠지’ 하는 헛된 기대는 금물이다. 자꾸 또 서두가 늘어진다. 쓸데없는 얘기가 끼어들어 곁가지로 뻗어나가려고 한다.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러운 글맛을 낼 수는 없을까.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이렇게 하면 맹숭맹숭하고, 저렇게 하면 짭짤하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어절을 찾아 한 숟가락 꼭 치고 싶은데 영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제 글, 간 좀 봐주시지 않을래요.” 무심한 벽에 대고 중얼거렸다.
첫댓글 맛깔스러운 글을 공감하며 감상했습니다.
다양한 양념으로 버무린 작품에서 색다른 글맛을 느낍니다.
'맘마미아'를 감상하시는 장면 묘사, 재밌어요~^^
사무국장님,
읽어주고 답글 달아주고.감사해요
덧붙여 색다른 글맛을 느끼셨다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오, 글과 잡채,뮤지컬에 확장한 기후까지 간이 스민 작품 한 편에 눈썹이 올라가고 엄지가 척, 올라갑니다.
민은숙 샘 답글이 엄지 척입니다.
제 기분도 올라갔어요. 고마워요~~^^
수필 쓰기의 방법을 수필로 쓰신 것 같습니다.
수필쓰기 간맞추기- 잡채 간맞추기- 삶의 간뭊추기로 확산해나가는 상상의 체계 있고 설리에 맞아 모든에에게 감동을 줄 것 같습니다.
슴슴하면서도 시원하고 톡 쏘는 느낌이 있는 겨울 동치미 같은 글입니다.
수필쓰기 간 맞추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웠어요.
'슴승하면서도 시원하고 톡쏘는 겨울 동치미 같은 글' 이라는 선생님의 평에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