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건국과 오얏나무 / 김남철
흔히들 조선왕조를 이씨조선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식자층에서도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씨조선 혹은 이조(李朝)라면 이씨의 나라라는 의미인데,
그러면 고려를 왕씨의 고려라 하는가? 신라를 김씨나 박씨의 신라라 하는가?
일제 강점기 그들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여 이씨 개인의 나라라는 의미를 붙여 이씨조선 혹은 이조라 기록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해방된 후 상당기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배워 왔다.
고려 말 이씨가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풍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삼각산하가 이씨의 도읍이 된다는 예언이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이씨의 “李”는 오얏나무를 뜻하니 한양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고, 좀 자랐을 때 칼이며 도끼로 모조리 베었다.
그리고 나서 이곳의 지명도 오얏나무를 베어낸 곳이라 하여 벌이(伐李)라 하였다. 그 뒤 벌리(伐里)가 되었고, 조선왕조 건국 후 이씨가 번성한다는 뜻의 번리(繁里)로 개명했다.
그리고 왕이 이씨의 대궐이 될 만한 터를 찾아 이것을 없애고 국운의 쇠퇴를 막아보려고 국지사(國地師)를 동원하여 그곳을 찾게 하였다.
국지사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그 장소를 찾고 보니 정혈판(正血盤)이 20길이나 땅속에 꺼져 있는 함지(陷地)였다.
국지사들이 이것을 보고 안심하여 왕에게 “烏頭白에 馬上角”이 되지 않는 한 이곳이 도읍은 안 된다고 보고하였다.
그 후 송도 시내에 “烏頭白에 馬上角”이라는 새로운 말이 유행하였고 민심이 들끓었다.
그러나 34대 마지막 왕 공양왕 4년 임신년 7월에 송도에 머리가 흰 까마귀가 나왔고 송도 뒷산에 뿔이 난 말이 나왔다.
이성계가 등극하던 그 시간에 20길이나 꺼져 있던 땅이 스르르 솟아올랐다.
그곳이 지금의 경복궁 근처라는데, 이것을 본 개국공신 3인이 “天下第一福地”란 글을 바위에 써서 남겼다고 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기운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얏나무를 베어내면서까지 고려 왕실은 그 운명을 거역해 보려 했으나 흥망성쇠의 사이클은 어떻게 바꿀 수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드리며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