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꽁치의 맛> 오즈 야스지로 감독, 112분, 1962년
<꽁치의 맛>엔 꽁치가 안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생선이라고는 반창회 때 쪽박선생을 모시고 회식을 하며 붕장어라는 생선을 쪽박선생이 참 맛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그걸로 봐서는 붕장어를 꽁치라고 번역한 것 같은데, 일본의 식문화에 정통하면 쉽게 풀릴 문제지만 일천한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우리식으로 일식을 한다면 나오는 꽁치구이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민적인 음식 꽁치를 기대하고, 소시민의 안주로서의 위안을 예상했다가는 약간 빗나간 전개를 만나게 된다. 영화로 보면 정통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이다.
오즈 야스지로 특유의 숙명론. 인생의 계절을 어찌할 수 없이 맞아야 하는 늙은 홀아비의 내면을 오즈는 왜 자신의 페르소나로 즐겨 사용할까?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현대 도시 속에 전통적 가족관계의 변화를 쓸쓸히 지켜보는 오즈 야스지로의 시선에서 변화와 혁명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영화는 정적이고 깔끔하다. 화면의 구성, 인물들 간의 대화와 행동, 집과 거리의 풍경 등 어디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무슨 결벽증이나 편집증처럼 화면은 겹친 직선들을 전통과 현대를 묘사하며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것이 일본의 정치경제 그리고 문화의 풍경임은 두말할 것 없다. 개인들은 격자의 방에 남아 서로 예의를 지키며 순종적으로 살아간다. 오즈가 느끼는 숙명론과 연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화이트칼라의 중직을 맡은, 비교적 삶이 안정된 중산층을 모델로 삼아 현대사회를 포착하는 오즈의 일관된 관심은 뭘까? 보다 더 외롭고 쓸쓸해지는 개인들을 조명하면서 오즈는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 외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평면을 달리는 레일처럼 성실하지만 그래서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 오즈의 영화들을 보며 나는 오즈의 변함없는 숙명론이 때론 마취적일 수 있음에 놀란다. 그것은 오즈식의 특유한 미학으로 불릴 수 있지만 다른 칼라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을 듯한 격자들이 오늘은 의문으로 자꾸 떠올랐다.
= 시놉시스 =
딸 미치코와 함께 살고 있는 초로의 신사 히라야마. 히라야마는 친한 친구로부터 딸을 결혼시키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딸은 어리게만 보인다. 이후 술에 취한 중학교 은사를 집까지 배웅했다가, 그 옛날 아름다웠던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걱정하며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을 보고 딸 미치코를 떠올린다.
일본영화계 전체가 하향세를 그릴 즈음 오즈와 노다 콤비가 만든 마지막 작품이자 오즈의 유작. 실제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던 오즈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애정은 남달랐고, 이 작품의 시나리오 집필 중에 어머니를 잃은 오즈가 바라보는 노년의 고독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가혹하고 엄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밝고 유머러스한 화면의 저변에 흐르는 적막감이 선명하게 그려져 가슴을 에이는 이 영화는 이제까지의 작품 중 최고의 원숙미를 자랑하는 영화다. 부드러운 유머와 함께 이제까지 즐겨 다루어왔던 이전 테마로 다시 돌아간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