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시편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찬송가 570장(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사랑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의 양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생각합니다. 다윗은 선한 목자 하나님을 통하여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평안하고 안심이 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고 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이 풍부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2절 이하에서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양인 자기를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푸른 풀밭 가운데 평안히 누워 있는 양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만 해도 보기가 참 좋습니다.
그런데 양이 그렇게 자리에 편히 눕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양은 모든 것이 편안해야 자리에 눕는답니다. ‘필립 켈러’라는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아들로서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랐던 분이 계십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양을 치는 목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작가로서 훌륭한 책을 여러 권 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켈러가 쓴 책들 중에 ‘목자가 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양들은 다음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눕는다고 말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글이기 때문에 매우 신뢰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양들에게 놀랄 일이 없고 두려운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양들은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양들이 200마리가 넘게 풀밭에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더라도 푸들 같은 지극히 작은 개 한 마리가 풀밭에 뛰어들어도 양들은 깜짝 놀라서 눈이 똥그랗게 변하여 우르르 다 도망칩니다. 토끼가 갑자기 나타나도 양들이 놀라 도망칠 정도로 양들은 겁이 많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겁이 많고 놀라는 것이 심한지 늑대 한 마리가 우리에 들어오면 양들이 늑대에 물리지 않아도 거의 다 폐사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겁이 많은 양들은 놀라거나 두려우면 절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자기 양들을 놀라게 만드는 늑대나 여우 같은 짐승이 우리나 목초지에 나타나 양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늘 곁에 있어줍니다. 그렇게 목자만 곁에 있으면 양들은 겁 먹지 않고 평안히 자리에 눕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버리면서도 양들을 지켜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아무리 놀랄 만한 일들이 생길지라도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사야 41:10 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심을 믿고 마음에 밀려드는 각종 두려움과 놀라움을 물리치고 평안히 주님 곁에 눕는 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양들에게 서로 간에 알력과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양들도 서열 싸움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최고의 서열이 정해져도 그 다음 서열을 정하기 위하여 뿔로서 서로 머리로 치고 받는 일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약한 양이 만약 좋은 꼴을 먹고 있으면 서열이 높은 심술궂은 양이 가까이 다가와서 약한 양을 쫓아내버리고 맙니다. 심술궂은 양들은 약한 양들을 머리로 받고 물어 뜯기도 하고 고통을 줍니다. 만약 양들 사이에 이런 알력과 갈등이 계속 되면 양들은 안정을 얻지 못하고 눕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목자가 그 자리에 나타나면 양들은 서열 싸움을 그치고 얌전해진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목자는 심술궂고 거친 양들을 나무라고 책망하며 연약하고 평안한 양들을 붙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목자가 함께 하면 양들이 안정을 얻고 자리에 눕는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교회 안에 서열 싸움이 있고 불화와 갈등과 다툼이 있으면 서열싸움에 휘말린 양들처럼 성도들도 안정을 얻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 불안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우왕좌왕합니다. 이처럼 불화와 다툼이 있는 교회는 불화의 영인 마귀가 서로 헐뜯고 다투게 만들어서 양들이 우리를 떠나 산과 들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주님이 함께하시면 그 양들이 안정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늘 서로 다투고 서열 싸움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십자가에 죽으러 올라가시는데, 제자들은 뒤에 쳐져서 자기들끼리 누가 더 크냐고 다툽니다. 급기야는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와 요한은 그 어머니까지 합세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의 좌우편에 자기 아들들이 앉기를 원한다고 구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모아 이르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가복음 10:45)
고 가르쳐주면서 으뜸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때서야 제자들이 부끄러워 잠잠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한 목자 예수님이 우리 교회 가운데에 늘 함께 하시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양들끼리 다툼과 분쟁과 갈등이 있다면 다른 것 필요 없이 주님의 영께서 함께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렇게 자기를 높이고 자기 서열을 챙기려는 자가 교회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그렇게 주님의 성령이 충만함으로써 교회와 가정에 항상 주님께서 함께함으로써 양들인 우리가 평안히 쉼을 얻고 눕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양들은 괴롭히는 벌레나 진드기가 없어야 합니다.
양들에게 진드기가 붙어 있으면 양이 괴로워서 편히 눕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쇠파리, 발뒤꿈치 파리, 코파리 등 많은 파리들이 양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코파리가 제일 위협적인 존재라고 한다. 코파리가 양의 코에 붙어 알을 까면 그 양은 너무 괴로워서 머리를 바위 틈에 틀어박고 비벼서 상처가 나곤 한답니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양들은 그렇게 괴롭히는 해충들을 인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눕지 못하고 살이 쭉쭉 빠진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목자들은 양의 코에다가 기름을 바르거나 쇠파리들을 쫓아주거나 진드기를 잡아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 일들 때문에 성도들도 마음이 괴롭고 산란하면 잠도 잘 못자고 힘들어서 편히 눕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28~30)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이런 저런 근심거리와 염려 거리를 다 맡아주시기를 누구보다 원하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에서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것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도 마음에 평안함과 자유함 속에서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그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부자유한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1~13)
이렇듯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진정한 평안함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기에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근심거리와 괴롭히는 걱정꺼리들을 일일이 다 잡아 주시고 해결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괴롭히며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하게 방해하는 여러 사소한 문제들까지 다 선한 목자 에수님께 다 기도로써 아뢰어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시고 평안히 눕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배고픔이 없어야 양이 눕는다고 합니다.
양들이 배가 불러야 편히 눕습니다. 기름진 꼴을 먹고 신선한 물을 마셔야 편히 눕습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예수님도 우리가 배가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35 말씀에서 이르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0:9,10 말씀에 이르기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에스겔 34:14,15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이렇게 살진 것들을 먹고 마시는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라심을 믿읍시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자기 양들에게 기름진 꼴을 풍성히 먹게 하시고자 좋은 목초지를 만들고 그곳으로 인도하여 실컷 풀을 먹고 살을 찌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푸른 풀이요 성령은 신선한 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가 충만해지면 우리 영혼이 기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영혼만 기름진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도 육신적으로 필요한 것들까지도 넉넉히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고 풍성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해주시는 은혜도 더해주십니다. 그래서 근심없이 평안히 눕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배고픔이 없고 목마름이 없고 기름지고 살찌게 하시기를 원하심을 믿고 늘 선한 목자 예수님께 가까이 동행하며 그를 기쁘게 섬기십시오. 그리할진대 주님께서 자기의 양떼인 우리를 푸른 풀밭에 배불러서 평안히 눕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3편의 한 구절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2)
푸른 풀밭에 누워 있는 양의 행복감, 그것은 철저하게 선한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한평생 선한 목자 예수님 가까이 그 곁에 항상 머물러 삽시다. 그리하여 그 곁에 누워서 영혼이 잘되고 모든 일들도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행복한 양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