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三食) 놈 면하려고 요리를 배웠는데
류 근 만
올해 추석(秋夕)은 오죽했으면 하석(夏夕)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불볕더위와 열대야에 시달린 생각을 하면 꿈만 같다. 추분(秋分) 지나고서야 밤새 내린 폭우에 기세가 꺾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산천초목이 싱그럽다. 코스모스가 살랑거리고 하늘은 높고 푸르다. 무심코 찾아온 계절의 변화에, 문득 지난 시절 이맘때의 일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2009년도이었던가, 그렇다. 벌써 십오 년 전의 일이다. 사십 년을 지켜온 천직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던 때다. 가을 어느 날 퇴근길에 ‘아빠 요리 교실’ 수강생 모집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백수가 되면 ‘일식 님이니, 삼식 놈이니’ 하는 유행어가 아내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시절이다.
요리해본 경험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나에겐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경험이라곤 고작 학교 다닐 때 자취하면서 보리쌀을 학덕(절구통)에 갈아 밥을 하고, 덜 퍼진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비벼 먹은 것, 남의 밭에서 배추 서리해다가 생배추에 왕소금 뿌려서 먹었던 그 맛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평생학습센터에 가서 수강 신청을 했다. 첫 강의는 시월 첫 주 월요일, 학습 진행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날은 왜 그리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 앞치마를 두른 폼이 영락없는 주부였다. 속담에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 이 떨어진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첫 요리는 ‘돼지 갈비찜’이다. 말만 들어도 입안 가득히 군침이 고였다. 재료는 강사가 미리 준비했다. 돼지갈비 표고버섯 밤 대추 당근 은행 잣 마늘 마른고추 달걀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만드는 방법도 예사롭지 않았다. 갈비 핏물 뺏기, 칼집 내기, 데치기를 한 후에, 준비된 양념에 술과 설탕을 혼합하여 삼십 분 정도 재운다. 갈비를 익힌 후 육수를 거른다. 물엿 감초 소금 후추 표고버섯에 육수를 적당히 넣고 익힌다. 국물을 끼얹어 가면서 윤기 나게 졸여서 마무리했다.
‘후~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강생 중에는 반복해서 등록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강사 옆에 바짝 붙어서 조교처럼 군다. 질문하면 강사를 제치고 잘난 척하는 밉상도 눈에 거슬렸다.
나는 재료 혼합과 요리법을 노트하느라 정신이 혼미했다. 첫 강이라 시범을 보인다지만, 내 이마엔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혔다. 시식하면서 평가도 하고 의견도 나눴다. 뱃속에서는 꼬르륵거렸지만 늦은 저녁을 먹는 시간은 즐거웠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반찬 수가 돼지고기 수육, 호박잎 된장국, 콩비지 찌개, 코다리찜, 버섯전골 등등 다양하다. 모두 익힐 수가 없어 기록하는데 충실했다.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레시피만 남았다.
내가 사도삼촌(四都三村) 생활을 할 때였다. 배운 것을 연습하고 싶어도 재료준비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점심때가 되면 손쉬운 라면을 끓여먹었다. 끓는 물에 쪽파 쑥갓, 시금치 아욱 뽕잎 등등 닥치는 대로 뜯어다 종합세트 나물죽이다 어쩌다 사전 약속이 있는 날은 달랐다. 가마솥에 옻나무를 삶고 발가벗은 토종닭은 배를 갈랐다. 가슴을 젖히고 밤 대추 마늘을 넣고 끈으로 동여맨다. 펄펄 끓이면 됐다. 삼베 주머니에 찹쌀을 넣어 닭 품속에 안겨주면 옻 찰밥이다. 반찬이 별로 없을 때 해 먹는 식사로는 제격이었다. 배운 것이 힘이 되었나?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집에서 실습을 해봤다. 먹다 남은 김칫국물로 돼지고기 수육을 만드는 것이다. 목살은 적당히 도막을 냈고, 된장도 약간 넣었다. 재료는 양파 마늘 대파 생강을 준비했다. 냄비에 준비된 재료를 넣고, 고기가 잠기도록 물을 부었다. 처음엔 강한 불로 끓이다가 보글보글 끓을 때 중간 불로 익혔다. 익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사 오십 분이다. 고기가 다 익었을 때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접시에 담았다. 정성을 다했다. 맛이 어떨까?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옆에선 보는 사람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치전도 만들었다. 묵은지의 양념을 털어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게 썰었다. 청양고추도 총총 썰고 고추장도 약간 넣었다. 부침용 가루에 찬물을 부어가면서 반죽한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반죽한 재료를 부었다. 살살 펴서 전의 모양을 낸다. 기름이 튀면서 찌지직거린다. 식용유를 보충하면서 빙빙 돌리다가 뒤집었다. 표면이 누릇누릇할 때 묘기를 부리듯 공중에서 회전시켰다. 두어 번 반복하여 완성됐다. 접시에 담아 시식했다. 역시 반응은? 잘했다는 칭찬의 말을 기다려도 무반응이다.
“음식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옆에서 보다가 한마디 한다. 눈치를 보니 낙제점이다. 내심 백 점은 아니어도 수고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좀 섭섭했다. 내가 맛을 보아도 아내의 그 맛이 아니다. 수육은 잡내가 났고, 전은 밋밋하다. 레시피를 찾아봤더니 재료가 빠졌다. ‘아빠 요리’를 배웠다는 것이 무색해졌다.
내가 왜 요리 교실 수강 신청을 했는지 아리송하다. 단지 백수가 되더라도 ‘삼식이는 면하겠다’라는 것뿐이었다. 농장엘 가거나 혹은 홀로 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사십 평생을 뒷바라지해준 아내를 도울 생각을 했거나, 요리를 배워서 아내를 도와주려 했더라면 고마워했을 텐데 말이다.
요즘도 집에서 식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하는 일도 없는데 바쁜 척이랄까, 아내는 ‘얼굴 보기 어렵다’라고 투덜대면서도 삼식 님이 되어주길 바란다. 혼자서 집에 있으니 귀찮아도 같이 있어. 주길 원하는 것 같다. 부부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더욱 챙기는 것 같다. 나도 계절 따라 변함이 감지된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농장에 가서 고구마 구워 먹을 화덕을 손질했다. 옻나무 껍질도 말렸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에 빛바랜 레시피는 아직도 잠자고 있다. 언제쯤 나를 부를까? 기다리는 것만 같다. 나도 더 녹슬기 전에 배운 것 잊어버릴까 봐 조바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