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11월 8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ㅡㅡㅡㅡㅡ 나무는 강한 햇볕과 거센 비바람을 견디고 피워 올린 잎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자꾸 내려앉는다. 내려앉은 잎들은 겨울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거름이 되고, 흙이 되고, 다시 새로운 잎을 피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 높은 곳일수록 더 빨리 노출되고, 더 많이 시달린다. 온갖 힘을 기울여 올라간 곳에서 내려오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따뜻한 사랑은 자연의 순리와 순환을 알아차려야만 기능한 일이다. 올라갈 때처럼 내려올 줄도 알아, 서로 나누는 따뜻한 사랑은 낮은 곳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국민들을 위하고 민심을 살핀다는 명목을 앞세우고,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은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나 할까. 가을마다 잎을 내려놓는 나무의 자세를 기억하기나 할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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