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0월 29일 일요일 맑음
몸이 무겁다. 그래도 엄마보다 먼저 일어났다.
“엄마 밥 줘요. 오늘 오전 중에 끝내고, 엄마가 교회 가셨을 때 쯤 대전으로 떠날 거야” “얘 어려워서 어떡한다니” “이젠 두 고랑만 더 하면 돼요, 걱정 마세요” 밥맛이 썼지만 우겨 넣고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두웠지만 밭에 당도하니 모든 것이 훤하게 보인다.
남은 두 고랑, 빨리 끝내고 가야지. 집 식구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여보, 잘 잤어. 너무 힘들어서 어떡해 ?” “이젠 다 끝났어. 걱정 마”
돌격 앞으로. 이슬에 젖은 메밀이 생기가 나 보인다. 이미 희망은 끝났지만....
두 시간 후에 모두 끝내고, 단으로 묶어 트럭에 실었다. 열 다섯 다발.
모두를 싣고 나니 저절로 두 손이 올라가고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온다.
밭 저 끝에서 떨어진 메밀을 쪼아 아침을 해결하던 멧세들이 놀라 달아난다.
기분이 완전 개운하다. 어려운 일을 끝낼 때 마다 느끼는 똑 같은 기분이다.
집 텃밭에 내려 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교회에 가시고 아무도 없다.
몸을 씻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뭘 사갈까 ? 마땅치 않다’
천안 고속도로 입구 쪽 길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호두과자 간판들이 요란하게 들어서 있다. 과연 호두과자의 본 고장다웠다.
‘지난 번엔 명신당 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집 것을 사가자. 천안 명물 호두과자의 진수를 보여줘야지’ 원조 호두과자라 해서 드렀더니 호원당이라네.
내가 고등학교 땐 역전 앞에 학화라는 호두과자집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집이 원조일 텐데, 모든 집에서 자기가 원조라고 걸어 놓았으니....
영 헷갈린다. “학화라는 집은 어디 있어요 ? 없어졌나요 ?” “예, 저쪽에 있어요” 어디라고는 가르쳐 주질 않네. 할 수 없이 그냥 사갖고 나왔지.
나도 옛날 그 맛을 보고 싶었는데....
고속도로를 들어서서 씽씽 달렸지. 트럭도 내 맘을 알아주는지 잘 달려주었다.
“얘들아 아빠 왔다. 여보, 나 왔어” “여보” “아빠” 우르르 달려 나온다.
내가 이 맛에 살지.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냥 두고 말지” 안사람이 팔을 벌리고 다가선다. 피로가 확 풀리네.
“얘들아 호두과자 사왔지.” “또, 호두과자, 아빠는 그것밖에 몰라 ?”
이거 기대가 확 깨졌지. “애들아 호두과지 집마다 맛이 다 달라. 원조 호두과자야” “그래도 당신 너무했어. 맨날 호두과자니” “뭐 할 수 없지. 먹어나 봐”
“어, 침대가 왜 이리 높어 ?” 새로 들어온 침대가 전에 것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여보, 침대가 편해 ?” “그럼, 얼마 짜린데....” “그럼 됐어. 나도 밥 먹고 자봐야겠다” 안사람이 좋다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고기를 굽고 볶아서 한 상 차려 주네. 이것도 고맙고....
만 이틀을 밭에서 기었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개운한 마음과 욱신거리는
몸은 따로 놀고 있다. 한 잠을 자 제켰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더니 새 침대가 좋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