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자 윤종문에게 보내는 글 중에서 선비는 어떻게 농업을 경영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 당부하는 글입니다. 옛 사람은 농업에 대한 생각이 어땠는지 보시겠어요?*^^*(제가 뽑은 제목은 주제와는 관계없는데 그 온정에 각별히 공감되어서 뽑아 보았습니다.)
(1) 사람과 짐승의 차이
가난한 선비가 생업을 꾸려나가려고 생각하는 것은 사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작은 너무 힘들고 장사는 명예가 손상되니, 손수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가꾸고 희귀한 과일과 맛좋은 채소를 심는다면 왕융(王戎)처럼 오얏씨의 구멍을 뚫고 운경(雲卿)처럼 참외(瓜)를 팔더라도 해될 게 없으며, 좋은 꽃과 기이한 대나무로 군색함을 가리는 것도 지혜로운 생각이다.
봄에 비가 갓 개일 적마다 조그만 가래와 큰 보습을 들고 메마른 자갈밭을 파고 거친 잡초를 매며, 도랑과 두둑을 정돈하여 종류별로 종자를 뿌리기도 하고 모종도 하고는 돌아와 짧은 시 수십 편을 지어 석호(石湖)의 유운(遺韻)을 모방도 하고, 또 형상(荊桑)·노상(魯桑) 등의 뽕나무 수천 주를 심고 별도로 3간 잠실을 지어 7층 잠상을 설치해 놓고 아내에게 부지런히 누에를 기르도록 하라. 이렇게 몇 해만 하면 식량·소금·육장(肉醬) 등의 여러 살림살이로 결코 남편을 번거롭게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육경(六經)이나 여러 성현의 글을 모두 읽어야 하나 『논어』만은 종신토록 읽어야 한다. 삼례(三禮)에 대해서는 잡복(雜服)의 제도만 알면 이름난 집안의 훌륭한 후손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주역』을 읽어 추이(推移)·왕래(往來)의 자취를 살피고 소장(消長)·존망(存亡)의 이치를 증험한다면 천지를 이해하고 우주를 망라(網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여력이 있으면 산경(山經)·수지(水志)도 읽어 문견(聞見)을 넓히며 혹 아내가 손수 빚은 찹쌀술을 권하거든 맛있게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여 「이소경(離騷經)」「구가(九歌)」의 글을 읽어 울적한 회포를 푼다면 명사(名士)라 칭할 만한 것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좋은 의복을 입고 겨울에는 갖옷에 여름에는 발 고운 갈포옷으로 종신토록 넉넉하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비취나 공작, 여우나 너구리, 담비나 오소리 등속도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향기 풍기는 진수성찬을 조석마다 먹으며 풍부한 쇠고기·양고기로 종신토록 궁하지 않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호랑이나 표범, 여우나 늑대, 매나 독수리 등속도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지분을 바르고 푸른 물감으로 눈썹을 그린 미인과 함께 고대광실 굽이굽이 돌아들어가는 방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세상을 마친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모장(毛장)·여희(麗姬)와 같은 미인이라도 물고기는 그를 보고서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린다. 돼지의 즐거움이라 하여 금곡(金谷)이나 소제(蘇提)의 호화스러운 놀이보다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 한 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인 것이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大人)이 되지만 소체(小體)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小人)이 되어 금수에 가까워진다." 하였으니,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고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은 벌써 없어지는 자가 될 것이니, 이는 금수일 뿐이다. 금수와 같은데도 원할 것인가.
(2) 선비다운 농업을 경영하라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을 사(士)라 이르고, 들에서 밭가는 사람을 농(農)이라 이른다. 귀족의 후예들로 서울에서 먼 지방에 유락(流落)되어 몇 대 이후까지 벼슬이 끊기면, 오직 농사짓는 일만으로 노인을 봉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농사란 이익이 박한 것이다. 겸하여 근세에는 전역(田役)이 날로 무거워져 농사를 많이 지을수록 더욱 쇠잔해지니, 반드시 원포(園圃)를 가꾸어 보충을 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 진귀한 과일나무를 심은 곳을 원(園)이라 이르고, 맛좋은 채소를 심은 곳을 포(圃)라 이른다. 다만 집에서 먹으려고 하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사방으로 길이 통한 읍(邑)과 큰 도회지 곁에 진귀한 과일나무 10주를 가꾸면 한 해에 엽전 50꿰미를 더 얻을 수 있고, 맛있는 채소 몇 두둑을 심으면 1년에 엽전 20꿰미를 더 얻을 수 있으며, 뽕나무 40~50주를 심어 5, 6칸의 누에를 길러내면 또 30꿰미의 엽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해마다 1백 꿰미의 엽전을 얻는다면 굶주림과 추위를 구제하기에 충분할 것이니 이 점은 가난한 선비들도 의당 알아야 할 일이다.
(3) 선비가 농업을 경영하는 방법
태사공이 "늘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仁義)를 말하기 좋아한다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하였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재리(財利)에 대한 이야기는 부끄럽게 여겼으나 자공은 재산을 늘리었다. 지금 소보나 허유의 절개도 없으면서 몸을 누추한 오막살이에 감추고 명아주나 비름으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식을 얼고 헐벗고 굶주리게 하고 벗이 찾아와도 술 한잔 권할 수 없으며, 명절 무렵에도 처마 끝에 걸려있는 고기는 보이지 않고 유독 공사의 빚 독촉하는 사람들만 대문을 두드리며 꾸짖고 있으니, 이는 천하에 가장 졸렬한 것으로 지혜로운 선비는 하지 않을 일인 것이다.
그러나 종아리를 드러내고 흙탕물 속에 들어가 8개의 발이 있는 써레를 잡고 소를 꾸짖으며 멍에를 밀고 거머리가 온몸을 빨아 상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면, 이것은 남자의 곤경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열 손가락이 파잎처럼 부드러운 사람이야 아무리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한들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돈 궤짝을 들고 포구(浦口)에 나가 앉아 먼 곳의 섬에서 오는 배를 기다려 무지한 어민들과 입이 닳도록 싸우며 몇 푼의 이익을 남기려고 하고 남의 것을 깎아 자기의 이익을 더하려고 근거 없는 소리로 속이고 눈을 부라리며 억울함이 쌓여 성이 난 것처럼 하는 것도 또한 세상에서 지극히 졸렬한 것이다. 아니면 이잣돈을 놓아 사방 이웃들의 고혈을 빠는 짓을 하면서 어쩌다가 기한 날짜를 어기면 약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놓고는 수염도 뽑고 종아리도 두들기게 되면, 온 고을에서 범과 이리라고 호칭하며 가까운 일가들도 원수처럼 미워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산처럼 얻는다 해도, 한 세대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자손들에게 미치광이의 광증이 있거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그 재산을 뒤엎기 때문인 것이다. 하늘의 법망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여도 빠뜨리지 않으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의 수단으로는 원포와 목축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연못이나 못을 파서 물고기도 길러야 한다. 문전의 가장 비옥한 밭을 10여 두둑으로 구획하여 사방을 반듯하고 똑고르게 만들고 네 계절에 채소를 심어 집에서 먹을 분량을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집 뒤꼍의 공한지에는 진귀하고 맛좋은 과일나무를 많이 심고, 그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정자(亭子)를 세워 맑은 운치가 풍기게 하고 겸하여 도둑을 지키는 데 이용도 한다. 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서 저자에 내다 팔고 혹 월등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 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 후한 뜻이리라. 또 흙을 잘 손질하여 여러 가지 약초를 심는데, 제니(薺니)·자초(紫草)·산서여(山薯여) 등속과 같은 것을 토질에 맞추어 구별하여 심고, 인삼만은 유독 쓰이는 방도가 많으니 법에 따라 재배하면 여러 이랑에 많이 심더라도 탈잡히지 않는다.(중략)
뽕나무 4,5백 주를 심어 2년마다 곁가지를 쳐주고 얽힌 가지를 풀어주며 잘 자라지 못한 가지를 깍아 주면 몇 해가 안 가서 담장의 키를 넘게 된다. 그 다음 별도로 잠실 4, 5칸을 지어서 칸마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내고 잠상을 7층으로 만들어 누에를 기르되 항상 우분(牛糞)으로 불을 피워 병을 퇴치하고 서북쪽의 문은 완전히 봉하고 동남쪽만 볕이 들게 해야 한다.
목화는 많이 갈 필요가 없이 오직 하루갈이 정도에서 그치고 별도로 삼과 모시를 심어, 아내에게 봄과 여름에는 명주를 짜고 가을과 겨울에는 베를 짜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하게 하면 명주와 베가 궤에 가득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일하는 재미를 갖게 되어 게으른 사람도 저절로 부지런해질 것이다.
첫댓글금강송님 요즘 다산의 서간문을 읽고 계시나보네요^^ 그러고 보니 가난에 대한 다산의 생각이 얼마전에 읽었던 매슬로우의 욕망의 5단계와 닮았군요^^ 조금 옮겨볼까요? "자기 실현의 욕구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먼저 ‘결핍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뭔가가 결핍돼 있
첫댓글 금강송님 요즘 다산의 서간문을 읽고 계시나보네요^^ 그러고 보니 가난에 대한 다산의 생각이 얼마전에 읽었던 매슬로우의 욕망의 5단계와 닮았군요^^ 조금 옮겨볼까요? "자기 실현의 욕구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먼저 ‘결핍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뭔가가 결핍돼 있
상태라면 자기 실현에 대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암튼 빈곤과 가난의 차이는 스스로 느끼는 만족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 "굶주린 사람들이라도 더 높은 삶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