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여자애의 내 집 짓기 - 두번째 이야기
나는 집짓기를 설명하는 글보다는 재밌는 글을 쓰고 싶다. 집짓기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써보고 싶다. 그런데 집 짓는 과정을 싹 무시할 수가 없어서 집짓는 흐름을 쫓아서 쓰게 됐다. 웃으면서 읽어주세요~~ *^-^*
-훼방꾼들
귀틀 벽을 올리고 있었다. 오비끼를 놓고, 못을 박고, 굄목을 놓고, 또 못을 박고, 오비끼를 놓고....... 하면서 귀틀을 올렸다. 벽체가 허리위로 높아졌다.
사다리를 놓고 두 칸쯤 올라가서 못을 박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날파리가 앵앵거렸다. 이놈은 무조건 눈으로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정말 싫다. 날파리에 공격(?)에 (심신이 흐트러져;;)망치를 헛쳤다. 박던 못이 구부러졌다. 열 받아서 망치를 내려놓고 장갑까지 벗고, 날파리를 잡으려고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잘만 피했다. 포기하고 다시 못을 박으려고 폼을 잡는 순간 또 날아온다. 결국 다 팽개치고 이놈이 다시 날아오기만을 박수 준비자세를 하고(;;) 기다렸다. 짝! 드디어 이놈을 잡고는, 덥다는 핑계로 집으로 들어왔다.
초저녁이 되어서 날도 선선해지고 일하기 좋을 것 같아 다시 집터로 갔다. 역시나 사다리 위에 올라가 못을 박는데, 이번에는 다리 있는 곳에서 앵~ 하는 소리와 수상한(?) 느낌이 든다. 모긴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또다시 못 박는데 집중이 안 된다. 신경이 온통 다리로 쏠린다. 다리가 따끔해서 후다닥 사다리 위에서 내려왔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살펴보니 정말 모기가 앵앵거린다. 끝까지 쫓아가서 결국 잡아 죽이고(! 나 점점 잔인해지는 듯;;) 돌아왔다.
그런데 저 위에 벌레들은 선발대(?)였다. 며칠 뒤, 저녁에 다리가 이상하게 가려웠다. 다리를 보니 수도 없이 많은 빨간 볼록 들이 솟아있었다. 모기가 이렇게 했을 리는 없는데.......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 하니까 아주 조그만 벌레들이 있고, 걔네들이 피를 빨아먹는다고 하셨다. 헉! 다리에 붙어있던 쪼그만 벌레들을 봤을 때, 그냥 ‘작은 벌레들이네’ 했더니 얘네들이!! 결국 나는 긴 바지에 싫어하는 양말까지 신고(;) 일을 해야 했다.
이 조그만 벌레들에게 물린 자국은 모기보다 훨씬 가렵고 오래갔다. 모기는 물려도 하루 이상 안가고, 덩치(?)도 커서 쉽게 잡을 수 있는데....... 내가 어쩌다가 모기 예찬론자가 됐을까. ㅠ.ㅜ
-못 박는 이야기
오비끼는 8cm다. 그래서 오비끼를 박는다고, 15cm짜리 못을 동원(?)했다. 못을 본 첫 느낌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와~ 이게 못이야? 싶었다. 드릴로 못을 박을 곳에 구멍을 뚫고 못을 박았다. 오비끼는 단단히 말라있고, 못은 겁나 길고....... 못을 박는데, 옹이가 없어도 못이 들어가다가 휘어질 때가 있다. 결국 쇠톱으로 말끔하게 잘라내고 새로 못을 가져다가 박았다. 또 휘어진다. 이 벽들을 다 올린다고 못들이 들어갈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데, 내가 못쓰는 못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쓰렸다. ‘우리나라는 지금 철이 부족하다던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아빠가 보시고는 펜치로 잡고 박으라고 알려주셨다. 정말 안 휘어지고 잘 박혔다! 심지어 살짝 휘어진 못도 그냥 쑥쑥 잘 들어갔다. 펜치로 그냥 살짝 잡기만 해도 이렇게 잘 박힌다는 게 신기했다. 누군가가 잡아주면 휘어지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심오한(?) 생각을 했다.
-내방에 비리 ㅋ
벽이 올라가면서 드러난 비리(?)가 있다. 쪼그만 집 지으면서 비리까지;; 방 기초를 할 때 있었던 일로 처음에는 표시나지 않는 작은 일이었다. 그런데 집이 올라가면서 그 비리(;;)가 점점 크게 느껴진다.
방 기초다짐을 할 곳을 표시할 때였다. 설계한대로 마루방은 11자 내방은 9자로 말뚝을 박았다. 표시를 해 놓고 보니까,(정현이가 저지는 비리는 작은 삽화로 ^-^;) 마루방은 무지 크게 느껴지고, 내 방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서 살 건데, 사람이 살지도 않을 마루방만 크고 내방은 좁네.’ 그래서 경계선 안쪽으로 벽을 쌓아야 하는데 바깥쪽으로 기초를 시작해버렸다.
부모님도 나중에 보고 그냥 픽 웃고 마셨는데, 벽이 올라가니까 옆으로 벽돌 한 장만큼 살짝 민 것에 차이가, 확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방이 필요이상으로 크게 느껴졌다. -_-;;그래서 방과 방 사이 벽에 띠장받이는 내방 쪽에서만 하기로 했다.
-쪽창과 찔레꽃
내방은 남쪽으로 창이 하나 있고, 문은 동쪽으로 나 있다. 서쪽으로는 마루방과의 벽이 있고, 북쪽으로는 바깥에 달아낼 벽장문이 들어간다.
설계대로 문틀을 다 짰는데, 막판에 엄마가, “창이 하나밖에 없으니 답답하지 않을까? 쪽창 하나만 더 넣지?”하셨다. 조금 귀찮아하면서 쪽창 틀을 만들었다. 쪽창은 동쪽으로 냈다. 만들 땐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았지만, 막상 쪽창을 넣으니까 트인 기분도 들고, 창만으로도 예뻤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도 새로워 보였다. 아침엔 이리로 햇빛이 들어올까? 쪽창을 넣길 잘했다 ^-^v
일을 하는데, 어디서 찔레 향기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쪽창 쪽으로 찔레꽃이 피었다. 찔레 가시에 다리를 많이 다쳐서 평소에는 찔레를 미워했다. 그런데 쪽창을 통해서 보니까 찔레가 푸른 덩굴에 하얗고 향기 좋은 꽃을 달고 있는 예쁜 덩굴나무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쪽창을 여닫이로 하지 않고, 그냥 유리를 넣고 실리콘으로 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민된다. 창이 열리게 하면 찔레 향기도 들어올 수 있을 텐데.......
-집을 포장하다
언제까지고 계속 쌓아올릴 것 같았던 벽 일이 끝나간다. 여태까지는 아빠랑 나랑 작업을 따로 하다시피 했지만, 마지막 공정이라 열심히 디모도를(조수?)했다. 다시 한번 벽체에 수평을 잡고, 지붕을 올릴 준비를 하고....... 끝이 보이니까 더운 줄 모르고 일을 했다.
근데 내일 비가 온단다. 오비끼들이 바짝 마른 거라 비를 맞히면 틀어져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집을 포장하러 나섰다. 갑바와 비닐을 들고.......
그냥 위에 갑바를 씌우면 밑으로 축 쳐져버릴 듯해서, 가로대를 턱턱 얹었다. 갑바를 씌우고, 졸대와 못으로 고정했다. 그 위에 비닐을 씌웠다.
이전엔 안이나 바깥이나 차이가 없었지만, 갑바를 씌우니까 집 안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갑바라도 씌우니까 보호받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라 하면서 집안에 들어가서 ‘집 안 느낌’을 즐겼다.
밖에 나와서 포장된(?) 집을 보니까 조그만 선물 같았다. 열심히 씌웠으니까 비 많이 왔으면 좋겠다. 비 오면 집 안에서 놀아야지~
-지네발 천장
벽을 하는 동안 군기(?)가 좀 빠졌다. 오비끼 하나 박고는 들어와서 군것질 하고, 모기 있으면 일손을 놓아버리고....... 그런데 하루 만에 지네발 천장을 얹자고 하신다. 고미받이(중간천장을 만들기 위해 보를 가로질러 천장복판에 놓는 나무)를 만들고, 지네‘발’부분인 고미서까래도 만들어야한다. 정신 집중을 빠릿하게 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오랜만에 끌질을 하면서 끌망치에 손도 찧었다. 빨리해야지 하고 마음만 빨리 가다가 손을 찧고 오히려 일이 느려졌다.
고미받이를 보위에 얹고 고정했다. 지네발들을 고미받이에 하나씩 얹었다. 지네발을 다 얹고, 집 안에 들어가 위를 올려다봤다. 예전엔 그냥 하늘이었던 곳이 ‘천장’에 가득 차서 빛나고 있었다. 하늘이 이렇게 빛나는구나. 하늘이 지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지붕 안 씌우고 살면 멋지겠다. ^^; 그렇지만 지붕을 안 씌우고 살 수는 없지....... 합판을 얹고, 압축스티로폼을 얹고, 합판을 얹고. 천장을 씌우고 나니까 이번에는 천장 위가 좋았다. 하늘 위에 앉아 탁 트인 아래 세상 경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식구들이 전부 올라와서 이 지붕을 씌우기 전, 잠깐에 순간을(?) 즐겼다.
천장위에 턱하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낭만을 즐기는 건 좋았는데, 나중에 바지에 스티로폼 조각들이 묻어서 때어낸다고 고생했다는^^;
-대망의 상량
상량을 한 후에 모내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붕이 생각처럼 안 된다. 상량날짜가 하루하루 미뤄져 모내기 시작하는 날과 겹쳐버렸다. 일이 한꺼번에 몰리니 엄마가 이웃에 귀농한 언니들에게 부탁을 하셨다. 우리 집 모내기를 하루만 도와달라고.
열시쯤 언니 네 분이 와주셨다. 와~ 슈퍼맨이다.(해결사?) 상량과 모내기에 쫓기는 우리를 도와주러 짠~하고 나타나 주시다니 ^^*
오전에 모내기를 하고, 점심을 먹고 상량식을 했다. 상량을 위해 엄마는 작은 잔치를 하셨다. 떡 찌고 막걸리 빚고. 아래채 상량식은 같이 일한 사람들끼리 조그맣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막걸리에 위력이었을까? 상량을 하려고 아래채에 가니 사람들이 어디서 하나 둘 왔다. 정수네 식구, 나람아저씨, 하빈이네 식구, 심지어 모르는 분들까지.
대들보 앞에 먹과 붓을 가져다 놓고, 사람들마다 하나씩 적었다. 아버지, 엄마, 나, 동생 그리고 오신 손님들....... 언니들은 그림도 그려주었다.
그리고 마룻대를 올리고 지붕 일을 했다. 남자 장정들이 있으니까 일이 팍팍 진행됐다. 나는 놀 수 있어서 좋긴 했다. 그렇지만 뭐랄까, 내 자리가 없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른들은 내가 낑낑대면서 간신히 들어올리는 나무도 번쩍 번쩍 들어 나르고, 못을 박는 것도 한번에 쑥쑥 들어간다. 그러니까 내가 일을 못하고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느렸지만 내방 벽은 여태껏 내가 쌓아올렸다. 앞으로 벽에 흙 치는 것도 내가 할 거고. 남자어른들이 하면 일이 확실히 빠르게 잘 되지만, 여유 있게 느리게 지으면 나도 집을 지을 수 있다. 내 처음 모토는 ‘한량 집짓기’니까!
-내가 전기 배선을?
전기배선을 우리가 직접 하게 됐다. 아빠가 내 방 전기는 나보고 해보라고 하신다. 저녁에 아빠한테 전기를 놓는 것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들었다.
‘내가 전기 일을 어떻게 하지?’ 싶었다. 그런데 아빠 강의를 듣고 보니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다. 살면서 써먹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덕분에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실전! 아빠한테 물어봐 가면서 전기선들을 연결했다. 전기 배선을 다 마치고 살림채에서 전기를 끌어와 연결했다. 아빠가 마루방에 불을 켜봤다. 불이 짠! 하고 들어왔다. 아빠는 ‘와~ 됐다. 음하하하’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럼 내방도 되겠지, 하고 믿으면서 내방으로 와서 불을 켜봤다. 안 켜진다. 헉, 내가 뭘 잘못했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고치려고 천장에 올라갔다. 지붕을 씌운 뒤라 빈공간이 무지 좁았다. 한낮이여서 해는 뜨겁게 패널강판을 달궜고, 덕분에 나는 찜질 방에서 전기 일을 하는 기분으로 땀 뻘뻘 흘리면서 어정쩡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전기 연결한곳을 풀어서 속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그냥 구리선들을 단단히 죄어주었다. 다시 불을 켜 봤다. 물론 안 켜졌다. 이번엔 아빠가 올라가 보셨다. 아빠도 문제를 못 찾으셨단다. ‘그럼 전기 없이 살아야 하는 걸까? 밤에는 촛불 켜면서.’하는 생각과, ‘아빠도 문제를 못 찾았으면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건 내 잘못은 아닌 거야! 나는 제대로 했어!’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빠가 마루방 전기와 내방 전기를 이어주는 부분을 살펴보러 올라가셨고, 전선이 한군데 빠져있다는 간단한 실수를 발견했다. 결국 이렇게 내방에도 불이 들어왔다.
-해보고 팠던 지붕에 흙 올리기
집 짓는 일들 중에서, 흙을 던지고 받는 걸 제일 해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서 리듬감 있게 흙덩이를 지붕위로 올리는 모습이 멋지고 재밌어 보인다.
아빠가 나람아저씨에게 지붕 씌우는 일을 도와 달라 하셨다. 그래서 지붕은 두 분이 씌우게 됐다. 나랑 동생은 지붕에 흙 올리기를 했다. 엄마는 뭉쳐주고, 규현이는 던지고, 나는 받아서 지붕에 깔고....... 흙덩어리를 잘 던지고 받으면 환호성을 질러가면서, 논다는 느낌이 들만큼 재미있게 했다. 무척 해보고 싶었지만 한번도 해볼수 없던 일인데, 이번에 ‘내집’을 지으면서 실컷 할 수 있었다. 흙 까는 일이 끝나고, 아빠랑 아저씨가 판넬강판을 지붕에 씌웠다(?). 식구 모두 멀찍이 떨어져서 감탄을 했다. “와~ 드디어 지붕 씌웠다~”
지붕을 씌운 후에 비가 왔다. 너무 좋았다. 방에 불을 켜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창 밖을 바라봤다. 집 다 지어놓은 기분이었다.
-삶에 여유는 지붕을 씌운 뒤에 온다?
지붕을 씌운다고 며칠 빡세게 일을 했다. 보통 때는, 느즈막히 일어나서 밥 먹고, 공부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기타도 치고, 밭에도 가면서 사이사이에 집짓기를 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장마가 오기 전에 지붕을 씌운다고 집짓기에만 달라붙었다. 아빠는 무섭게 집을 지었다. 나도 따라서 ‘열심히’했다. 이제 지붕 딱! 씌워놓았으니 다시 여유 있는 한량 집짓기로 돌아갈 수 있겠지....... 지붕 씌우고 나니까 어디 놀러가고 싶다. ^^;
-내가 이렇게 태평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이유?
일을 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쩜 이렇게(?) 집 짓는 일을 태평하게 놀면서 할 수 있을까? 하고.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옆에 살림채가 있으니까! 아래채에서 살다가 춥거나 서글퍼지면, 살림채로 쏙 들어와 버리면 되니까 ^^;
엄마는 “너 땔감 어떻게 할 거냐?”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기 안방 아궁이 옆에 나무 많잖아요? 한두 개 슬쩍하면 되죠. :P” 앗! 이건 우리 아빠가 알면 안 되는데.......
(귀농통문 가을호)
첫댓글 나무지기님 덕에 걱정이 태산같이 앞서던 집짓기에 서광이 비추고 있음! 추석연휴에 마지공방 찾아가 조언도 구하고 도와주시겠단 말씀을 듣고오니 기운이 펄펄. 집 다지을때까진 이 약발이 따라가줘얄텐데...'집을 짓는다'는 것은..거 뭐시냐, 참말로 찌릿찌릿하지않은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좋은 인연을 만들구 오셨구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