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천도교 일월산 용화성지
동학은 인간을 한울님처럼 존귀하게 여기며 자기 수행을 통해 한울님의 뜻과 일치함으로써 스스로 역사를 창조해 가는
주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또 동학은 현세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이를 위해서는 '보국안민'을 주장한다.
동학은 '천도교'로 종교단체가 되어 발전하고 있다.
동학(천도교)의 첫번째 성지는 교조인 수운 최재우 대신사(1824~1864)가 나고 자랐으며 묻혀 있는 경북 경주시 가정리
용담(龍潭)성지다.구미산(해발594미터)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1864년 동학농민혁명운동으로 최재우 대신사가 경주관아에 체포되어 그해3월10일 좌도난정(左道亂正:이단사상으로
사회를 어지럽힘)이라는 죄목으로 대구 장대에서 처형되었다.
최재우 대신사가 체포될 때 그의 가족과 제자들도 함께 처형되거나 중형을 받았고 남은 제자들도 경주 일원에서는
활동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경상도 북부 지역을 관장하던 최시형은 일월산아래 현재는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벌매마을에 포교활동을 하던중이고, 이곳이 첩산오지인 관계로 체포되지 아니하여 탄압을 피할 수 있었고,1870년
그를 중심으로 다시 교단이 재건됐다.
동학의 기본교리는 최재우 대신사가 집필한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로서,초고본은 최재우 대신사
처형 당시 모두 불태워져 없어졌다.
동학(천도교)2세 교주가된 최시형은 1864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벌매마을 일월산속에 피신하였다. 이곳은 열열한
신도가 많았고,험준한 지형 지세 등 자연여건이 피신겸 포교에 적합한 곳이었다.
최시형은 1871년 까지7년간 용화동 벌매마을에 정착하여 없어진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에 대하여,
기억을 더듬어 집필,재현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원고를 1880년 강원도 인제군 진부령 산속에서 출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마을 이름인 용화리는 한때 동학의 총본부 역활을 했다는데 연유하여 '용담성지'사상을 이어받는다는 뜻
에서 '용화동'이라 이름 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학의 2세 교주 최시형 선생도 1894년 전봉준이 주도한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하여 1898년에 관군에게 체포되어 6월2일
광화문 밖 형장(刑場)에서 순도하였다
제3세 교주 손병희는 1905년 12월1일 '동학'을 '천도교'로 바꾼 이후 4계명과 5관을 규정하여 교도의 자격을 규정하고
교리의 현대화,의식의 현대화를 추진하였다. 이렇게 동학이 종교단체로 변화한 탓으로 일제하에 모든 단체가 해산된
경우에도 예외로 인정되어 1919년3월1일 다른 종교단체들과 같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일월산에는 민족종교의 성지가 있어서 더욱더 영산이라는 호칭을 받는다. 일월산 정기를 많이 받으면 자연과
인간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 된다.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end
- edited by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식량 대용,일월산 칡
일월산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