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는 공동묘지를 지나 개울을 건너 산허리에 있었다.
그곳에는 스님 한 분과
겁이 많은 동자와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저잣거리에 나간 스님이 바랑을 지고
무거운 물건을 두 손에 들고 올라올 때는
꼭 산 아래에서 '동자야, 동자야' 하고 불렀다.
그때마다 동자는 스님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는데,
공동묘지를 지나칠 무렵이면 등골이 오싹했다.
낮에는 그래도 나무꾼이 뒤를 봐주어 무서움이 덜하지만
밤에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귀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다고 해서
‘정승바우’라 불리던 바위도 동자의 등뒤에서는 해골로 변했다.
산새의 울음소리조차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걸음을 빨리 하고 노래를 크게 불러보지만
한번 귀신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나가지를 않았다.
마음속에 꼭 달라붙어 동자를 괴롭혔다.
귀신은 동자가 혼자 있을 때 더 잘 나타났다.
스님과 함께 오르내릴 때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동자는 스님에게는 귀신도 무서워하는
무엇이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어떤 날 동자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귀신이 꿈속에서까지 나타나 동자를 쫓아 다녔다.
동자가 암자 법당의 부처님 엉덩이 밑으로 숨지만
귀신은 여지없이 그곳까지 찾아내어 동자의 다리를 끌어당겼다.
그런 날 밤은 동자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동자가 가위 눌려 땀을 흠뻑 흘린 다음 날 아침이었다.
스님이 먼저 물었다.
“동자야,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느냐.”
“스님,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어젯밤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자더구나.”
“스님, 사실은 밤새 꿈만 꾸었습니다.”
“난 그런 줄도 몰랐구나.”
“무서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섭더냐.”
“저만 쫓아다니는 귀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더냐.”
“하도 무서워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고 헛소리를 질렀구나.”
동자는 부처님 엉덩이 밑으로 숨어도 귀신은
거기까지 손을 뻗쳐온다고 말했다.
부처님 엉덩이 밑은 불단이었다.
동자는 제아무리 힘센 귀신이라 하더라도
부처님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불단 밑으로 숨고는 했던 것이다.
“동자야, 그런 귀신이라면 염려 마라.
내가 물리쳐 줄 테니까.”
동자는 스님이 내미는 봉투를 보고 눈이 반짝였다.
“글씨를 몇자 적어 두었으니 봉투를 열어보지 말고
몸에 지니고만 다녀라.”
스님은 귀신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한 가지를 적어 두었으니
이제부터는 얼씬거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 밤에도 스님이 또 늦어져 동자를 산아래서
불렀던 것인데,동자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정승바우'도 더 이상 등뒤에서 해골로 보이지 않았고,
산새 울음소리도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동자는 스님과 돌아올 때는 콧노래를 불렀다.
암자에 도착해서는 봉투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호주머니에서 나온 봉투는 분명 스님이 준 것이었다.
밤에 꿈을 꾸었지만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동자는 모처럼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무엇을 하던지 간에 꼭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봉투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었다.
손을 넣어 봉투를 만지지 않고는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봉투를 넣고 다니지 않았을 때보다 더 불안했다.
‘봉투를 잃어버리게 되면 귀신이 그때보다
더 무섭게 달려들 것이다.’
암자에서 일하는 나무꾼이 물었다.
“동자님, 그 봉투가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신주 모시듯 넣고 다닙니까.”
“이이고, 처사님 말도 마십시오.
이 봉투를 잃어버리게 되면
저는 또 귀신에게 쫓기게 됩니다.”
동자는 나무꾼에게 고백을 하고는 후회했다.
공연히 말했다고 조바심을 냈다.
‘이 봉투를 처사님이 훔쳐 가면 어떡하나.
귀신들은 나에게 보복하러 올 것이다.’
어느새 동자는 밥 먹을 때도
한 손으로 봉투를 만지며 먹어야 했다.
변소를 가 오줌을 눌 때도
한 손으로는 봉투를 만지고 있어야 했다.
‘이 봉투를 잃어버리게 되면
귀신들이 몰려와 나를 죽일지도 몰라.’
늘 울상을 짓고 다니는 동자를 보고는 스님이 말했다.
“동자야, 어디 아픈 데가 있느냐.”
“예전과 같이 또 두렵습니다.”
“귀신이 또 나타났느냐.”
“아닙니다. 봉투를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또 있지.”
“스님, 봉투를 잃어버려도 두렵지 않게 해주세요.”
“알았다.”
스님은 뒤짐을 지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한 참 후에 동자에게 봉투를 달라고 했다.
“이제는 이 봉투가 문제구나.”
“맞습니다. 봉투가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느냐.”
스님은 동자가 보는 앞에서 성냥불을 켰다.
그리고는 봉투를 태워버렸다.
“자, 이제 봉투가 사라졌다.
넌 이제부터 봉투를 잃어버릴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네 눈으로 봉투가 타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또 기적이 일어났다.
그 순간부터 동자는 봉투가 없는데도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더구나 귀신도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을 마중하러 공동묘지를 지날 때도 두렵지 않았다.
봉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홀가분했다.
어느 날 동자를 앞에 두고 스님이 말했다.
“귀신이 정말 있다면 그까짓 봉투를 무서워하겠느냐.
봉투 속에다 나는 아무 글씨도 쓰지 않았다.
네가 마음으로 만든 귀신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환각이라 하지.
이제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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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귀가 우리 엄마를 괴롭하면 수호천사 내가 가만두지 않을테야~~얍~~물러가라~!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 갈께요()
재미 있게 잘 봤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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