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 관점은 상당히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이사야 11:6~9을 창세기 1~2장의 타락 이전 창조질서와 연결해서 읽는 것은 성경 전체의 큰 흐름을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성경 본문이 "에덴동산에서는 모든 동물이 실제로 서로 이런 관계였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본문이 명시하는 사실이라기보다 창조-타락-회복이라는 성경신학적 연결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1. 창세기 1장의 창조 → 평화로운 창조질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시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세계의 질서에는 동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30에서는 동물들에게도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폭력과 죽음이 지배하는 자연계의 모습과 다른 질서를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2. 타락 → 인간과 자연세계의 관계가 함께 깨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만 깨뜨린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창세기 3:17)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성경의 타락 이야기는 단순히 "사람이 죄를 지었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 인간과 인간의 관계 →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전체가 깨집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이 곧바로 등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인간에게서 형제간의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인간관계의 파괴가 나타납니다.
3. 이사야 11장은 다시 "창조의 평화"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사야 11장의 모습이 매우 의미 있습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마치 창조세계가 타락 이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그림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11장의 메시아는 단순히 인간의 죄만 처리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깨어진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메시아로 묘사됩니다.
4. 그리고 이것이 계시록에서 완성됩니다
여기서 성경 전체가 하나의 큰 원을 이룹니다.
창세기
창조
→ 에덴
→ 인간의 타락
→ 죄와 죽음
→ 관계의 파괴
↓
이사야 11장
메시아의 등장
→ 공의로운 통치
→ 약육강식의 적대관계가 사라짐
→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음"
↓
요한계시록 21~22장
새 하늘과 새 땅
→ 사망이 다시 없음
→ 눈물이 없음
→ 저주가 없음
→ 생명수의 강
→ 생명나무
특히 계시록 22:3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저주가 계시록에서 제거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구원은 단순히 "죄인이 천국에 간다"는 것보다 훨씬 큰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으로 망가진 창조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사야 11장의 동물들 사이의 평화는 인류 타락 이전의 창조질서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재림 이후의 새 창조를 예표하는 이중적인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의 큰 흐름은 창조 → 타락 → 구속 → 새 창조이고, 이사야 11장은 그 가운데 메시아를 통한 창조질서 회복을 매우 아름답게 보여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