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회복 시킨다!(계3:7-13)
2023.4.2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기독교인 연예인들 중에 가수 노사연 권사(온누리교회)가 있다. 노사연 권사가 몇 년 전 기독교 CGN TV 개국 10주년 방송에 출연해서 “바램”이라는 곡에 대해서 언급을 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힘들고,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면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느낄 때’, 주님께서 이 곡을 선물로 주셨다고 고백하면서, 이 노래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이 노래 가사 속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는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이 곡의 가사는 이런 내용이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 바램(노사연), CGN TV 개국 10주년 기념 : https://www.youtube.com/watch?v=iiK8ZTu0oJA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이라는 표현에서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곡의 가사에 대해서 공감이 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본 설교자는 노사연 권사의 간증과 노래를 들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물론 어떤 분은 “목사가 무슨 일반노래를 듣고 반성을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째든 그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노사연씨가 권사이기 때문에 그녀의 솔직한 신앙적인 고백과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보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삶의 무게 때문에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기쁜 날 보다 힘들고 고단한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것은 중장년이나 노년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더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진학, 취업, 고물가, 전세사기, 기타 등).
그런데 이처럼 고단한 현실 속에서 진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실제 일의 무게보다 사실의 마음의 무게이다. 아무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알아주지 않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그 심적인 고통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격려 받지 못하면, 쓰나미 같은 삶의 파도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수가 있다.
그런데 오늘 설교본문 말씀 속에서 이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깨달아 진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소망의 말씀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초대교회 당시에 지금의 터키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작은 교회이다.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께 칭찬만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님께 칭찬을 받는 것은 규모나 위치나 세상적인 지식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오직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마음 때문이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라고 확신한다(계3:8-10).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8-10)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은 지금 우리들의 작은 능력과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힘들어하는 마음의 상태까지 다 알고 계신다(8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대적자들 앞에서 주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도 약속해 주셨다(9절,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이 가진 인내의 말씀을 굳게 지켜서 이기는 자가 되라는 당부의 말씀이다(10-12절).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다(계1:3).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는 도미티안 황제(Domitian, A.D81-96)가 로마제국을 통치할 때이다. 그런데 도미티안 황제는 얼마나 악했는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박해를 기독교인들에게 가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때의 박해를 “제2차 기독교 대박해”라고 부른다. 그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한 순간에 순교의 제물이 되고(사자밥, 십자가형, 화형 등), 사회에서는 극심한 불이익을 받고, 유리방황하면서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런 고통 속에 있던 성도들에게 주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주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들을 들었을 때, 순교의 제물로 죽어가던 성도들이 얼마나 큰 위로와 믿음의 회복과 힘을 얻게 되었겠는가?.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시간 우리(나)를 향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나를 회복(치유) 시킨다”는 것이다. 주님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끔~찍히)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를 회복시키고, 치유하고, 위로를 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를 살리는 방법이며, 회복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편 119편 50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This is my comfort in my affliction)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99:50)
“비록 내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을지라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그 말씀이 항상 나를 되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쉬운말 성경)
정말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쳐한다 해도, 주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 주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저절로 감사의 눈물이 나오고, 큰 위안과 용기와 안정감과 치유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교회에서 지난 주 화요일(4.18)에 정읍 두암교회에 국내성지순례를 갔었다(사진). 그때 뉴스에서는 강한 바람과 60밀리 이상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러나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기상청에서 실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바람을 막아주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표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주님은 우리들 한 분 한 분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더 크고 놀랍고 바다같은 은혜를 계속 베푸실 것을 확신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한 주님의 회복의 약속들은 결코 이 땅에서만 적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주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수많은 천군천사들과 먼저 천국에 간 성도들 앞에서, 우리의 머리에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면서, 주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확실하게 증명해 주실 것이다. 세상에서의 위로보다도 사실은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말씀 속에서 이러한 주님의 약속을 확신했던, 화니 제인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는 찬송가 240장(주가 맡긴 모든 역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크로비는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의사의 실수는 실명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깊이 체험하면서 변화되었다. 그래서 일평생 9천편 이상의 찬송 곡들을 지었다. 만약 그녀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는 증오와 좌절 속에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소망의 말씀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나를 맞을 준비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에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찬송가 480장 “천국에서 만나보자”라는 찬송의 원래 제목은 “동쪽 문(the Eastern Gate)”이다. 이 곡의 작시자는 얼마나 천국에 대한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이 가득차 있는지, 훗날 믿음의 성도들이 천국의 동쪽 문 앞에서 만나자고 찬송했다. 이러한 영원한 약속과 확신은 우리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셨다.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참 즐거운 우리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 찬송가 480장, 천국에서 만나보자(영어찬송, 한글자막) : https://www.youtube.com/watch?v=LYLO6Sa1KU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과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주님께서 지금 우리(나)의 삶의 모든 고통과 상처와 어려움들을 다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친히 증명하여 주실 것이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하늘에서까지 말이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온전히 회복시키고, 치유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실한 주님의 성품을 신뢰하면서, 날마다 인내로써 말씀을 굳게 잡자.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을 온전히 회복하자. 주님이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