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는 대장경 천년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해인사는 부처님말씀을 목판에 새겨 모시고 있는 삼보 사찰 중에 법보종찰이다. 세계문화유산이요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경판을 모시는 어찌 보면 보배중의 보배사찰이다.
현재의 경판은 재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되어오다 몽고군의 침입때 불타고 현재 보존되고 있는 대장경은 고려 고종 (1236년)부터 다시 제작하여 해인사에 장경각을 짓고 보존되고 있으며 수없는 전란과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현재까지 보존 되어온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6.25전쟁 때는 폭격 대상이 되어 공군의 폭격명령에도 비행대장 이던 김영환 대령의 목숨을 건 보살의 정신이 해인사와 대장경과 수많은 성보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남대문 방화로 전 국민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고 산불로 낙산사를 잃었을 때 전 불자들이 동참하여 다시 복원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다시 복원해도 옛 문화재는 다시 복원이 불가하다. 문화재는 그 자체로 보존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시 만드는 것은 복원이지 문화재는 아니다. 성보문화재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화재는 그 자체로 보존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시 만드는 것은 문화재는 아니다
해인사대장경은 내용면에 있어서도 경장과 율장, 그리고 논장이 이렇게 온전히 잘 정리 되어 있는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후대에오면 일본의 신수대장경이 있지만, 해인사 대장경은 그 규모면에서도 가히 세계 어느 나라 대장경과 견줄 수가 있을까?
그 수량은 81258매이다. 고려 고종 당시에 이 땅에 총인구가 얼마였을까?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였을까.? 제작과정에 참여했던 스님들은 몇 명이고 불자님들의 시주금은 얼마였을까?
아직도 제작 장소에 논란이 있는데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제작되었을까 엄청난 경전자료들은 다 어떻게 구했는지, 인원은 어떻게 동원되었고 판각과정은 어떻한 절차를 밟아서 이렇게 정교하게 판각되었는지 교정은 몇 명이 보았고 감수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는지 재정은 얼마나 투입되었는지 모금은 어떻게 하였는지 온통 연구대상이다.
장비도 없던 시절에 엄청난 양의 나무의 구입,운반, 절단 그리고 손질과정에서 얼마나 피나는 원력들이 들어갔을까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결정적인 자료가 없으면 당시의 여러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맞추어 간다면 조금은 들어나지 않을까 소득이 2만불이 되는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현전삼보로써 부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2500년 전 인도 땅에서 설하고 계시는 붓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디지털시대 대장경연구소에서는 오랜 세월 연구 정리하여 팔만대장경을 컴퓨터로 만날 수 있다. 한글대장경과 대조 검색도 할 수도 있다. 학문을 하는 분들이나 누구나 쉽게 대장경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바람이 있다면 완전히 프로그램을 개방하여 많은 분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 가치는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서 개발한 신수장경프로그램이 일본에서는 판매가 되었는데 대만에서 판권을 사들여 완전히 개방하여 무료로 나누어 법보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장경을 법보시 하니 이보다 더 큰 보시가 어디 있으랴 해인사판 대장경 프로그램도 세계인 누구에게나 찾는 이에게 무료로 다운받고 활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복전이 어디 있을까 나누면 큰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부처님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좋은 자료라 퍼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