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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무산자와 유산자를 가르는 자괴감
하류층과 상류층을 가르는 모멸감
또 있다, 지하파와 지상파를
가르는 혐오감
그것의 뿌리는 가난이라는 유전자
누구도 쉽사리 털어낼 수 없다
계급의 곰팡이라서
씻어도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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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노인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주차장
0.15평 남짓한 리어카가 집이다
100Kg 폐지를 고물상에 넘기면
쥐는 돈은 5,000원, 국밥은 4,000원
어쩌다 꽁초를 주워 후식처럼 즐긴다
노동에서 퇴근하면 몸도 지친 9시
무허가 집일망정 천국이 따로 없다
팔다리, 아픈 허리는 죽음 속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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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아나벨〉 앞에서
뷔페가 죽고 나서 아나벨은 회고했다
“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빈 곳으로 떠났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말했다, 울어서는 안 된다”
뷔페가 죽고 나서 아내 아나벨은 말했다
“불멸의 존재라 그의 그림이 나를 돌볼 것이다”
세상의, 가장 따뜻한 색이
그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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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등반
어쩌자고 맨손으로
수직을 타는가
까칠한 위험에
죽어라고 달려드나
수없이 떨어지면서
두렵지도 않은가
어쩌면 이 질문은 내용 없는 우문이다
아슬한 줄타기는 인간의 삶이고,
만물이 존재를 하는,
근원적 이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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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박순금 여사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일하다 갈 팔자
이력에 휴가 없다, 눈 뜨면 출근이다
희망을 구겨서 버리며 남의 것이라 생각한다
피하면 다가오고, 무시하면 대들고
가난은 망나니, 염치없이 개입한다
일상이 정말 무섭다, 지긋하고 덧없다
그래도 퇴근길, 꽃이 눈에 들어올 땐
버렸던 희망을 찾아 먼지 터는 나를 본다
인생은 불가사의다
끝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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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까도 까도 모르것다!
속살마다 눈물인디?
팔수록 적자지만 정신 줄을 놓지마소
하기사, 대풍大豐에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속은 꽉 찼는디 값은 자꾸 야위고,
울어도 소용없어야, 억장만 무너지지
올 농사, 이미 종쳤어
손가락 빨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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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나
선글라스 끼고 바둑 두면 안되나
바둑 기사 9단, 이동훈이 말했어
창조는 타성을 벗는 일
관습을 탁! 깨는 일
근엄한 시조를 랩처럼 쓰면 안되나
툭툭 말 던지듯 놓치듯 쓰면 안되나
전통과 형식의 옷고름
풀어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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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참회에 들려고 돌은 납작 엎드린다
바닥에서 솟구치는 냉기의 엄혹함
때마침 모래가 날려 뺨을 세게 후려친다
한때는 좌대에서 수석이란 이름으로
날마다 샤워하며 영화도 누렸었다
그러다 영문도 모른 채 들판에 버려졌다
누군가 내치면 가차 없이 추락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돌은 지금 숙연하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돌은 지금 숙연하다
끝없는 초록 풀밭의 정원석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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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
전업 예술가가
어렵게 취업했다
가족을 위해서
시작한 염殮장이
죽음이 먹여 살린다
시체가 밥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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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나부끼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어머니가 우신다, 서러운 봄날에 어머니가 우신다, 유성기 앞에서 봄날과 유성기 사이에 눈물 고여 넘친다
새파란 풀잎에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던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눈물은 투명한 우주 깨지지 않는 용기容器 발효된 슬픔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흘러간 이팔청춘도 추억처럼 스민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우는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젖은 손수건으로 눈덩이를 훔치는 시간 어머니 가슴은 푸른 한恨의 강이다 유행가 애절한 가락에 숨이 멎는 봄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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