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예수님의 녹색불
제가 지금 사목하고 있는 동춘동 성당은 박문초등학교와 대건고등학교 사이에 위치한 성당입니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이 탄 수많은 버스와 차량이 몰려드는 교차로를 바라보며,
그 많은 인파와 차량을 안내하는 신호등도 함께 바라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신호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 그리고 서행해야만 할 때를 알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평안할까요?
이와 더불어 제자리에서 묵묵히 여러 인파와 차량을 안내하는 신호등이 없다면,
이 거리가 얼마나 혼잡할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마 큰 혼란과 사고가 끊이지 않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호등은 이런 혼란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발명되었습니다.
마차와 차량이 충돌하여 여러 사람이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 ‘가렛 모건’이라는 한 미국인이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명했다고 하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의로운 마음’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발명을 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세종대왕께서는
어려운 중국어를 배우지 못하는 서민들을 가엾이 여겨 ‘한글’을 창제하셨죠.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문맹률 8.7%라는 세계적으로도 경이로운 수치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 니다.
이런 연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은 처음에는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위대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오늘 복음 속에서도 이런 연민의 마음을 지닌
예수님의 사랑이 일으킨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마태 9,36)이 드셔서,
손수 열두 명의 사도를 뽑으시어, 그들을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죠.
오늘 예수님에 의해 뽑힌 사도들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거나 권력과 재산이 많은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세울 것 없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부족한 사도들을 통해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연민과 사랑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활동의 시작은 언제나 우리를 향한 뜨거운 ‘연민과 사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도 알 수 있듯, 주님께서는 ‘아직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참조)
사랑으로 시작된 행동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기쁨을 남깁니다.
그리고 겨자씨와 누룩처럼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한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원문인 그리스어로 “스플랑크니 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라고 해서,
직역하면 ‘내장이 끊기는 듯한 아픔’이라고 합니다.
흔히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 말하자면
장단지애(腸斷之哀)를 경험한다고 하죠.
우리를 향한 이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는 단어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이번 한 주간 우리도 예수님이라는 ‘신호등’을 내 삶의 지표로 삼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닮아가며,
그분의 안내를 받아 우리 교우님들의 ‘삶의 여정’에 평안함이 가득하기를 마음 모아 기도 해 봅니다.
이진원 우달리꼬 신부 동춘동 본당 보좌
연중 제11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