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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초의 복음
최초로 나타난 것은 마가복음이었다.그런데 고래의 신빙성 있는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것은(이것은 초기 기독교 저술가의 한 사람인 파피아스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다) 곧 '마가는 베드로의 해석자'였으며, 그가 들은 베드로의 강설과 설교로부터 "기억하고 있던 것을 모두 정확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이것은 젊은 요한.마가가 위대한 사도의 전도여행에 동반하고 다닌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다. 베드로가 시장에서 무리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시장 한편에 서 있거나 집회가 끝나고 설교 내용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상담하는 베드로를 도와주는 마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드로의 입술에서 나오는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 거듭 거듭 귀를 기울여 마침내 그 이야기를 전부 외우고 그 분위기 속에서 살던 마가를 보게 되며, 마침내 죽음이 그의 위대한 친구요 지도자를 데려가자 마가는 주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복음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전해졌다. 마가복음 배후에는 주님의 가장 내밀한 친구의 하나였던 베드로의 증거가 서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마가복음의 역사상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마가복음 "이란 명칭은 뒤에 첨가된 말이다. 마가 자신은 아무 명칭도 붙이지 않았다. 전도자들은 문필로 명성을 날리려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저들의 열정이 자아의 온갖 생각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누구의 손에서 나왔던가를 세상이 알고 싶어한다는 것에는 그들의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이야기를 매우 정직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결코 제자들의 집단을 호감을 가지고 제시하거나 그들의 실수와 허물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도 하지 않은 사실이 이것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마가의 복음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사실은 베드로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자기의 허물을 가리우려 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예수께서..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8:33).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14:50)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이야기(14:66 이하)등등이 모두 여기에 아무것도 숨김없이,아무 것도 꾸밈없이 그대로 담겨 있다. 땅 위의 명성은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만이 전부였다.
헌데, 비록 마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그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사도행전의 다음 귀절들을 보라. 12장 12절은 마가의 집이 만찬을 가졌던 "다락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흥미 있는 암시를 제공하며 이럴 경우 마가 자신이 예수를 지켜본 증인일 것은 틀림없다.12:25,13:13,15:36 이하와, 서신 중에서 골로새 4:10,디모데후서 4:11,빌레몬 24절, 베드로전서 5:13등이다. 여기서 한가지 특별히 매력 있고 매혹적인 암시,곧 본복음서의 한 곳에 저자에 대한 살짝 감취어진 암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막 14:51-52).겟세마네 동산에 이렇게 수상하게 나타난 "한 청년"은 누구였을까? 네 전도자 중 마가만이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베드로에게 들은 것일 리도 없다. 베드로는 이미 도망가고 난 뒤였으니까(14:50). 이 이야기는 '청년'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만일 이 사람이 그 이후 초대교회의 제법 걸출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미지의 인물은 마가 자신이 아니었을까? 이 문제를 뚜렷이 결정짓는 일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누구인지 모를 것 같지는 않다.
3.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복음
마가의 "예수의 회상록"에서 마태의 회상록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한 가지 차이점이 즉각 눈에 뜨인다. 마가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의 생애의 사건에 있고 마태는 오히려 주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른 초대 기독교 전통은 (역시 파피아스로부터) "마태가 예수의 말씀을 히브리어로 기록했고, 각자가 이것을 할 수 있는 한 잘 해석했다"고 말해준다. 제자 마태는 일기를 썼는데 거기에 가끔 그의 대화와 교훈을 기록했던 것 같고 마가의 기록을 첨가한 이 일기가 마태복음의 토대가 되고 여기에 마태의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마태복음은 특히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복음읻. 이와 관련해서 구약성경이 자주 인용되고 모세 율법을 중요시하고,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대망의 강조와 이 대망이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을 주목하자. 앞서 이미 살펴 본대로 모든 전도자들의 특징이 되는 겸손을 지닌 마태는 자기 자신의 개심의 이야기를 단 한절(9:9)를 말하고 있다. 주께서 그를 깊은 타락의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신 사실을 감추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 그는 "세관에 앉아 있던"세리였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던 부류였다. 왜냐, 그는 자기 나라와 자기 양심을 팔아 먹은 자요, 틀림없이 자기 인격도 팔아 먹은 자였기 때문이다. 이 직업은 모든 충성된 유대인의 눈에는 치욕으로 낙인 찍혀 있던 직업이다. 이 얼마나 있을 법하지 장소에서 주님은 전도자들과 대사(全權大使)들을 찾아내셨던가!
4. 이방 기독교인들을 위한 복음
유대인이 아닌 전도자는 누가 뿐이다. 누가는 마가와 마태복음에 나타난 출처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외의 다른 자료들도 갖고 있었다. 그의 이방인 혈통과 교감은 그의 복음의 가장 인상적인 면모를 설명해 준다. 즉 누가복음은 선교적 복음이요, 본 복음서가 묘사하는 그리스도는 우선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인 것이다. 본서가 데오빌로-로마 정부의 고위 관리였던 것 같으며 아직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에게 증정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누가가 바로 시작부터 순전히 지방적인,팔레스타인의 배경을 둔이야기를 말 했고 이것을 일부러 세계 역사의 구조속에 배열하려 한점을 주목하라.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까지 거슬러 밟아올라갔을 뿐 아니라(이스라엘 국가의 창건자인 아브라함으로 시작하는 마태와 대조해 보라) 예수의 오심을 세계적 사건들(예를 들어 3:1)과 관련시키고 있다. 더구나 누가에게 있어 그가 임으로 사용할 수 있던 수 많은 자료들 중에서 어떤 사건과 비유들을 예수의 회상록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선교의 동기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관계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감사를 표시한 문둥이 이야기(17:16,"그는 사마리아인이었다")기타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13:29)와 ,특히 탕자 비유, 이방인 세계를대표하는 큰 아들 비유등등이 나온다. 누가복음은 특히 세계의 소망의 복음이다.
제 3 복음서와 함께 사도행전을 기록한 (행1:1) 누가는 의사였다 (골4:4).그가 처음에 바울에게 소개된 것은 그가 의사였기 때문일 것 같다. 그후 그는 바울의 전도 여행의 동료가 되었다. 누가의 의술이 위대한 기독교선교사였던 바울에게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의 건강은 미심쩍은 것이었기 때문이다(고후12:27이하).바울은 주님의 일을 하며 자주 매를 맞고 상처와 흉터를 많이 갖고 있었다(고후 11:25 이하,갈6:17,행14:19).누가의 의사수업은 복음서 중에 예수의 병 고치신 이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그 당시 의학용어로 사용되던 어떤 전문용어들을 통해서 그때 있었떤 사건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윌렴.램시경(Sir William Ramsey)은 다음과 같은 매우 매혹적인 암시를 하고 있다. 즉 누가가 그 당시에는 소아시아에 살고 있었지만 바울은 여기서 처음 누가를 만나 그를 기독교에 개종시켰다. 그는 원래 빌립보 출신이었다는 것과 바울이 환상 가운데서 드로아에서 어떤 마게도냐 사람이 그들에게 "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16:9) 고 손짓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 본 것은 그의 친구 바로 누가였다. 누가복음이 저자가 기독교를 서방 세계에 가져 오는 도구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제3복음의 정신과 그 강렬한 선교적 관심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5. 제 4 복음
처음 세복음서(이 세 복음에 공통되는 관점 때문에 자주 공관복음이라 불리운다)에서 제 4복음으로 옮겨갈 때 우리는 즉각 다른 분위기 속에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이 차이는 초대시대부터 느껴졌다. 알렉산들이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가 그 이전의 저자로부터 인용한 말들은 이 점을 잘 서술하고 있다. 곧 "육적 제 사실이 이미 다른 세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요한이 영적 복음서를 썼다"라고 했다. 4복음서 저자가 그의 독자들 편에 다른 세 복음서에 대한 지식이 있음을 전제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다른 세 복음서의 내용을 보충하고, 그 자신의 영적 천재성과 신비성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인물됨과 사역의 보다 깊은 의미를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한 사람의 평생의 명상과 골똘한 생각가 영교가 제 4복음서 기록에 담겨져 있다.
요한복음이 그 앞의 복음서들과 구별되는 많은 점들 중 다음의 특징들을 말할 수 있겠다. 본 복음에는 비유가 하나도 없다. 거의 예수의 유대지방 사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갈릴리 사역은 거의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들과 예수 사이의 사사로운 대담, 특히 나다니엘,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과의 일련의 대담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인간적 면이 강조된 어떤 장면들은 생략하고 있다. 특히 광야의 시험, 겟세마네의 고뇌, 유기되셨을 때의 십자가 위로부터의 외침 등등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인물됨과 사역의 영원한 면들을 강조한다. 요한복음 "나사렛의 목수"가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제 4복음이 다른 세 복음을 보충하는 일을 착수함에 있어 그 목적을 영광스럽게도 성취하였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하였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묘사를 충분하고 완벽하고 완전하게 했다.
우리의 기록으로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우리의 모든 연구는 이 작은 네 책에 의존해야 한다. 이 책들이 우리에게 세 가지를 제공함을 기억하자. 첫째 우리에게 역사를 제공한다. 여기에 우리는 견고하고 확고한 난공 불락의 역사적 기본 사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 이상의 것을 주고 있다. 계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들려오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요,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하지만 역사와 계시 이상의 것을 준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것이다. 각 페이지는 우리에게 이 도전을 새롭게 해준다. 그리고 구구절절이 이 도전을 통감하게 한다. 그 도전이란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결국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전은 우리가 대답하기까지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다.
2. 신약성경(新約正經)의 형성
1) 배경
신약성경의 형성 배경사는 신약개론에서 취급하는 학문이다. 신약 개론에서는 총론으로 정경론, 사본론, 배경론, 고등비평등을 다루고 각론에서는 신약 성경의 각권을 개론으로 다루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형성배경을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다루고자한다.
1) 정경론(正經論)
신약성경을 연구하다보면 그 제목이 정경론, 또는 영감론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같은 말이다. 정경론이란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 27권이 교회의 절대규범이 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할 때 쓰이는 말이다.
정경이란 헬라어 카논(kavan)이란 단어로 규범(norm) 혹은 표준(standard)을 가르키며 교회는 이 단어를 성서와 관련하여 규범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 “정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성경을 정경이라고 부를때에는 완성된 성경 전체를 삶의 유일하고 긍극적인 규범으로 받아 들임의 고백이라 할수 있다.2) 그리고 헬라어의 정경(kavav) 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아다나시우스(AD352년경)이다.
정경론이라고 많이 쓰게된 원인은 초대교회 당시 흩어져 있는 문서들이 각 교회들에게 회람될 때 어떤 성문서가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가 교회마다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왜냐하면 전해지는 성문서들이 교회의 규범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문서들이 부분적으로 읽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인쇄술이 발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들이 전체의 문서들을 갖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단자들은 제자들의 성문서 외에 다른 문서들 즉 가경과 외경들이 정경으로 함께 읽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내의 어떠한 신앙의 규범이 되는것을 정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편집된 신약성경 27권이 그 어떠한 성문서보다 교회의 규범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여지게 된 용어이며 정경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 성경의 정경성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어떠한 관계가 있느냐에 따라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좀더 구체적으로 교리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선포는 그의 화해사역에 초점을 맞춤으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배타적인 공식으로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선행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그 규범에 본질을 두는것이다.
따라서 영감론이란 성경이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어진 책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자들을 필자로 사용하실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기록되었다는 “신적 권위”를 강조할 때 쓰는 용어로서 이를 영감론이라고 한다.
신약의 정경론이란 구약성경에 상응하는 규범이 되고 새로 정리된 신약의 성경 27권은 특수한 책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서 신약성경의 본질을 탐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이 규범적 단위를 승인하고 한계를 설정하게 된 과정을 연구하는 신약의 한 학문의 분야이다.3)
2) 성경의 형성배경
신약의 정경은 2세기 초부터 몇세기에 걸처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 정경의 공식인준은 교회의 실제적 필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사도들이 떠난뒤에 하나님의 말씀은 입에 입을 통하여 많은 구전(口傳)들이 사도들의 이름으로 떠돌아 다녔는데 개중에는 이단들에 의하여 다른 소리들이 나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배때마다 읽혀지는 성경이 완전하게 편집되어진 것이 없고 회람용으로만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 규범이 되는 정경의 기준이 없고 때로는 가경(假經)이나 위경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영계가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시대적 상황이다. 당시 초대교회는 외부의 핍밖으로 인하여 성문서들이 하나 둘씩 불태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온전한 성문서들를 가지지 못하고 부분적인 성문서들만을 겨우 간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회는 흩어져 있는 성문서들을 수집하여 전체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간절한 열망들이 신약성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촉구하게 되었다.
1) 말시온정경
최초로 편집된 성경은 말시온 정경인데 말시온 정경은 AD. 140년경 그노시스파(Gnosis)의 말시온(Marcion)에 의하여 로마에서 만들어 진것이다. 그리고 말시온 정경이란 그의 이름따라 붙여진이름이다.
최초의 성경이 만들어지게된 형성배경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말시온 정경은 당시 교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오게 되었다. 말시온은 바울만이 유일한 사도적 권위를 소유한자라고하여 성경을 바울주의적인 입장에서 신약성경을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학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엄격히 구분을 하고 또한 그들은 구약 성서속의 하나님 안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버려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즉 선한 아버지 하나님 만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여 구약과 신약을 분리했기 때문에 큰 문제로 나타났다.
2). 무라토리 정경
무라토리 정경(Muratorische Fragment L.A. Muratori) 은 로마계의 것으로 2세기경에 편집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무라토리 정경은 1740년 이태리의 고고학자 무라토리가 밀라노에 있는 암부로시우스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처음으로 공개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라 무라토리 정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무라토리 정경은 많은 부분들이 회손되었지만 말시온의 정경과는 달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이 세 번째 복음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이 되어 있었는데 회손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크다.
또한 무라토리의 정경속에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이 교회에 보내는 9편의 서신과 개인에게 보내는 4편의 서신인 빌레몬서, 디도서, 디모데전후서와 유다서, 요한의 두서신 요한계시록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규범이 될수 있는 정경이 되기에는 미흡하였다.
3) 성문서들
성경은 예배때마다 읽혀지게 되었는데 완전한 성경이 편집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가경(假經)이나 위경들도 소개되고 어떤 지역에서는 지금의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문서들이 정경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4)
예컨데 시내산 사본에는 [바나바의 편지]와 AD.110년경의 [헤르마스의목자]등이 정경으로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사본에는 [클레멘트의 제1 제2 서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이문서들이 신약성서의 다른 문서들과 함께 정경의 지위로 받아 들여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하나 둘씩 순교함에 따라 구전을 통하여 전해저 오던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갈래로 흩어저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않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는 성경 전체를 모아 정경을 확정해야만 한다는 열망과 교회들의 필요 요청에 의하여 신약성경의 편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교회들로 하여금 정경을 형성하도록 촉구하게된 요인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말시온파가 만든 나름대로의 정경이주는 자극과 무라토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단편들에대한 도전 그리고 페쉬도가 수리아 교회의 정경으로 읽혀지는것과 노스틱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위경과 외경, 또한 신령한 자들이 주장하는 계시등이 난무하였기에 정경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하였다.
3). 신약 정경론의 기준
초대교회의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기본 여건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고센, 위필드, 하지등과 같은 학자들과 개신교도들은 정경을 결정하는데는 영감성과 사도성과 정경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 이레니우스는 일차적으로 사도성이 아니라 역사적 진정성 관심을 두었다.
정경이란 단순한 사도적 저술만이 아니라 정경성에 대한 우선적인 태도로서 사도적 권위의 실제성과 승인이 있느냐는것과 신적인 권위의 영감성이 있느냐에 중점을 두었다.5) 그러나 영감성이나 사도성이나 정경성이란 같은 종류이다. 다만 세 용어는 성서의 책들을 접하여 편집하는 방법을 타나낼 뿐이다.
정경의 결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판단의 기준은 그 문서들이 사도적인가에 두었다는것은 첫째로 사도들 자신이 직접 쓴 것 이어야 한다는 것에 앞서 신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둘째는 사도들과 함께 동역한 사람들이 쓴것이어야 한다.
마가와 베드로는 사도들의 동역자들이었음으로 포함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3서, 유다서, 계시록등은 정경에 포함된 것이 늣어진 것은 그 문서들이 사도들에 의하여 쓴것인지의 여부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나바 서와 헬마스의 목양자와 클레멘트의 서신과 솔로몬의 지혜등이 제외된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영감성이란 헬라어의 데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 즉 “하나님의 입김으로된” “하나님의 감동의로된”(딤3:16절) 것이라는 의미이다. 책을 저술할 때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에 의하여 쓰여 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전문용어이다.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필자로 사용하셨는데 사도들의 인격과 지식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을 다 동원하게 하시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지만 기록자는 하나님이시며 성령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기록하도록 만들었다는것을 강조하는 뜻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에서는 영감이 일종의 접신이라는 이론이 대중적으로 받아 들여 지기도 하였고6) 필로는 선지자들이 영감을 받을 때 의식을 잃었었다고 하여 부정적인 명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4세기의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선지자들의 글과 사도들의 글에 아무런 착오가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자들은 악을 해하는자라고 하였고 폴리갑은 성경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는자는 누구든지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까지 강조하며 오리겐은 복음서 기자들이 성령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문서에 그릇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