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62-2. 봉수 신덕휴
임신년(개도59년 1932년) 4월 15일에 성사께서 계룡산 신도안에 행차하시니, 이때 72인이 참여하였는데 덕휴도 함께 참여한지라.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어찌 그 수가 72인인고?” 하시니, 대개 그 수가 공자의 제자 72인과 같음을 기이하게 여기심이라.
이때 성사께옵서 뜻에 3일간 머무르고자 하시다가 16일에 녹산 오환수가 별세한 소식을 들으시고 이튿날 곧 환택하시는지라.
덕휴가 먼저 물러감을 고하고 금천에 들어갔다가 성사님 환택하심을 듣고 동리 사람들과 함께 길 곁에서 영접하여 뵈오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아니하였느냐?”
말씀드리기를 “녹산의 초상 때문에 아직 돌아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2-3 봉수 신덕휴
11월 초에 일반 제자들이 조례를 마치고 나가고자 하니, 성사께옵서 가던 길을 멈추게 하시고 대청에 왕래하시며 “매화꽃이 추우 날에 피어남에 선비의 집이 가난하니 아홉 끼니로 한 달에 이름을 누가 알겠는가” 하는 글귀를 읊으시고 하교하시기를 “도라 하고 도라 하나 도가 별다른 게 아니니라.
도가 사람에게 있나니 사람의 도리를 행하면 이것이 도이니라” 하시다.
또 말씀하시기를 “인생의 분수 안의 일은 도요, 분수 밖의 일은 도가 아니니, 너희들이 그런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시고 이어서 “문 난간에 마땅히 비상한 즐거움이 있으니 추운 골짜기에 봄이 돌아와 꽃이 다시 핀다” 라는 한 글귀를 읊으시고 재차 하교하시기를 “어떤 일을 막론하고 사람이 각각 나의 도리만 다하면 천하의 이치를 얻게 되나니,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며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며 형은 형의 도리를 다하고 아우는 아우의 도리를 다할 것이니, 이것은 가정의 육친이 되고, 그 밖에 군신, 장유, 봉우가 다 그러하면 이것이 곧 도이니라” 하시고 물러가라 명하시니, 성사님의 정녕하신 교화가 이제까지 귓가에 남아있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