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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바다
이성숙
프롤로그
활주로를 미끄러지는 비행기 고철음에 눈을 떴다. 인천공항이었다. 성미 급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수선스럽게 끄집어냈다.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바깥 온도를 확인했다. 섭씨 2도. 배낭에서 스웨터를 꺼내 입고, 사람들에 밀리며 긴 복도를 지나 짐 찾는 곳으로 향했다. 가방을 찾으러 가는 동안 나는 줄곧 그를 상상했다. 알아볼 수는 있을까,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할까, 내가 먼저 그를 찾게 될까, 그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내게로 걸어올 수도 있겠다…. 입국장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멀었다.
다시는 한국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아직은 부모님이 서울에 살고 있으니 잠깐씩 다녀가는 일이 불편하지 않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면 서울은 내게 헐거운 옷을 걸친 것처럼 한기만 줄 곳이기 때문이었다.
3년 전 낡은 결혼생활을 청산할 때도 나는 엘에이 영사관을 통해 서류를 보내는 쪽을 택했다. 시비를 가리는 일에 약하고 또 대부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 되는 일들이므로 나는 자존심을 흔들지 않는 한 늘 손해 보는 쪽을 택하며 살아왔다. 실랑이를 위해 뇌의 한쪽 단자를 들어 올리는 일은 무익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때로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나의 그런 태도 때문일 것이었다. 그와의 결별이 내게 유리했는지 불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랑에 투신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는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일이라는 사실만 선명했다.
# 1
코로나로 인천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은데도 출국심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내고, 발열 검사를 받은 후 동선 관리 앱을 각자의 휴대전화기에 다운로드해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라야 입국 수속이 가능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원 도움을 받기 위해 속절없이 줄을 섰다. 비행기 착륙 후 출국 라운지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183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그는 금방 눈에 띌 것이었다. 나는 기다리다 지쳤을 법한 사람들 사이를 스캔하며 느리게 걸었다. 출구 난간에 빼곡히 기대 있어야 할 사람들이 지친 얼굴로 소파나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훑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청바지에 반소매 남방셔츠를 받쳐 입은 남자가 난간 끝에 서서 나를 향해 휴대전화 카메라를 겨누었다. 바다, 그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조리개 안으로 내 얼굴이 터무니없이 크게 줌업되자 드디어 카메라를 내려놨다. 마스크 위로 크게 쌍꺼풀진 두 눈이 웃고 있었다. 영상통화에서 만났던 바로 그 눈. 선한 의지가 담긴 눈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나는 그와 마주 선 채 헤실헤실 웃었다. 그도 전화기를 한 손에 든 채 나를 보고 웃었다. 우리는 피차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었을까. 글쎄…,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질문이었다. 당신 내 스타일이네. 바다가 내 여행 가방을 받아 들면서 건넨 첫인사였다. 바다 스타일은 어떤 여자일까? 이 남자의 어떤 분류에 내가 속했을까. 그도 내 스타일이어야 할 텐데? 피식,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사람들을 헤치며 공항 청사 밖으로 나섰다. 주차장을 가로지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바다는 귀여운 남자다.) 또다시 웃음이 났다.
혼자라는 건 자유와 부자유가 혼재한 상태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한 자유란 혼자보다 둘일 때 온전하다. 그로 인해 나의 부자유가 자유를 얻을까…. 머리 한편으로 생각이 얽히는데 그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잘 왔어, 했다. 당신 내 스타일이야. 바다는 아까보다 크게 웃었다. 그 모습에 천진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내 안에서도 긴장이 빠져나가며 영상 속 익숙했던 그가 되살아났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어깨를 움츠리며 개구지게 웃고 그도 곧 영상 속 달빛을 살려낸 듯 익숙한 웃음을 보였다. 달빛은 나의 닉네임이었다.
그런데, 반말로 해야 하나 존댓말을 써야 하나. 존댓말하지 마, 이상하다. 낯선 사람에게 반말해 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어투를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 아 낯설게 왜 그래. 반말이 친근하게 들리잖아. 바다의 성화였다. 우리는 이내 반말투 대화를 주고받았다. 가벼워진 말투는 둘 사이에 남아 있던 긴장을 밀어냈다. 말투 호칭 따위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지 모른다. 결국, 바다와 반말을 주고받게 되면서 우리는 1미터쯤 더 가까워졌다.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내게서는 불안이 씻겨 나가고 있었다. 바깥 추위에 떨다가 갑자기 실내에 들어섰을 때 얼어붙었던 볼의 얼얼함이 스르륵 녹는 것처럼. 그의 심장에서도 긴장이 해제된 듯 바다는 말이 많아졌다. 그는 얘기하며 자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팬데믹으로 여행객이 줄어든 공항 주차장은 휑했다. 트렁크에 가방을 싣고 나는 바다의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가 인천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에 진입하려던 순간 그의 팔이 내 목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자동차가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자, 인천 앞바다의 새벽 해무가 습기를 안고 덮쳐 왔다. 나는 해무가 차 안으로 빨려들도록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짙은 바다안개보다 바람이 먼저 달려들어 머리칼을 흩뜨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이었다. 나는 연신 바람을 들이켜며 함성을 내질렀다. 한숨이 횡격막을 넘어 올라와 공중으로 사라졌다. 나는 앞 유리를 향해 반듯이 앉아서 양손으로 볼을 괸 채 약간 톤 높인 목소리로 마치 오랫동안 알아 온 연인에게인 듯 떠들어 댔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낯섦을 감추려 할 때 나오는 버릇인 걸 바다가 알 리 없었다. 그는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바다를 알게 된 후, 나는 한국에 있는 바다와 거의 3개월 동안이나 화상으로 만났다. 거의 매일 통화했고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으며 그러다 실물 확인을 위해 인천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좁은 승용차 안에는 익숙함과 모종의 거리감이 적당히 넘실댔다.
강원도까지는 얼마나 걸려?
3시간쯤. 지금은 막히지 않으니 금방 갈 거야.
잠도 못 잤겠다? 나오느라?
운전하며 좀 졸았지.
나 어때? 많이 뚱뚱하지?
아니. 이쁜데.
이쁘긴… 뚱뚱하지. 완전 똥글똥글하지?
나는 그를 보지 않고 조수석 앞 거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거리감을 느끼면서 반말을 하자니 영 불편해서 말꼬리가 자꾸만 뭉개졌다.
아 편하게 말하라니까. 엘에이에서 통화할 때처럼 해. 그때 당신 귀여웠거든. 그게 좋은데.
그러지 뭐. 사실 우리 동갑이기도 하지.
내 말투에도 경직이 풀렸다.
난 뚱뚱한 여자 좋아해.
그럴 리가….
앱의 진화로 사진이나 영상이 실물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내 얼굴도 영상 안에 있을 때가 나아 보일 터였지만, 나는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예쁘다’ ‘좋아한다’를 이렇게 풍성하게 들어 본 일이 있었던가. 늘, 이렇게, 어색한 공간을 웃음으로 채울 수 있다면 삶에 더 바랄 게 무얼까.
# 2
아침에 눈을 뜨자 비가 내렸다. 빗물 위로 미끄러지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는 고요를 증폭시켰다. 낯선 남자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도 경계심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공항에서 만나 이곳 강원도 벼리동까지 오는 동안 바다는 오빠처럼 굴기도 하고, 오래 함께 살아온 남정네처럼 굴기도 했다. 방 2개와 아담한 거실을 가진 통통의 집, 아니 바다의 집이었다. 그는 침대가 놓인, 자기가 쓰던 방을 내게 주고 처방전을 쌓아 둔 건넌방으로 베개를 들고 나갔다.
잘 잔 때문인지 어제의 불편함이나 낯선 감정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입어 해진 옷처럼 바다도 집도 편안했다. 실은 엘에이를 떠나기 전에 모든 건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바다의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때만 해도 바다의 집은 ‘낯선 남자의 집’이었으므로, 거기엔 약간의 기대와 그보다 더한 불안과 무모할지 모르는 모험심이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바람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쳐 나를 갈등하게 했었다. 50이 다 되어 가는 여자의 사려 깊은 결정은 아니었으므로.
서로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이 우리는 섬처럼 만났다.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다른 세상에 들어서는 것처럼 불안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난생처음 용기란 걸 냈다. 인생 주기를 30년 단위로 구분한다면 나는 그때 두 번째 서클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끝자락, 그리고 마지막 한 서클이 남았다는 건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사는 동안 한 번도 발휘하지 못했던 연약한 대범함을 사용할 때라고 믿었다. 우리 집 뒷마당 게스트하우스에 세 들어 사는 진 언니는 데이팅 앱에서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했다. 진의 놀람은 당연했다. 그가 아는 나는 껍질 속에 들어앉은 달팽이처럼 겁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침대가 놓인 비좁은 방 한쪽 벽은 대형 텔레비전이 차지하고 있었다. 바다는 세상 모든 지식을 텔레비전에서 얻는다더니. 큭큭. 텔레비전 옆으로 인공지능 스피커 지니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두 자짜리 장식장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장식장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다. 여행객이 화장품을 올려 두기에는 나쁘지 않은 크기였다. 스피커 옆으로 비스듬히, 나의 산문집과 나란히 기욤 뮈소의 소설 몇 권이 꽂혀 있었다. (전화로 그는 기욤 뮈소의 책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나는 주황색 표지의 『인생은 소설이다』를 집어 들었다. 표지의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시선을 맞추는 듯했다. 그 눈빛은 ‘이제 소설을 쓸 수 있겠어?’라고 물어 왔다. 나는 곧 풀 죽어 책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한국 오기 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서점에 나갔고 거기서 이 책을 만났다. 제목에 이끌려, 나 같은 인생이 들어 있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집어 계산을 치렀다. 나의 무턱 댄 추측은 빗나갔다. 책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아바타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가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전개나 흥미진진함과는 별개로 나는 『인생은 소설이다』를 통해서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인 글쓰기에 대해서 배웠다. 막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나로서는 작가 플로라 콘웨이의 작가로서 고뇌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꼈고, 실제로 그가 언급하는 글쓰기 방법이나 소설가의 자세 등에는 밑줄을 쳐 가며 읽었다.
“나는 매일 아침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글쓰기에 착수했다.”
몰이로 글을 쓰다 지쳐 버리는 나와 대조되었다.
“어느 누구도 세상이 상상에 불과한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고, 꿈과 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 보르헤스의 말”
나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순간이었다. 누구의 권유도 없이 자의로 한 남자를 선택하여 여행을 감행하기로 한 나의 결정은 도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벽에 총이 걸려 있군요.’라는 대사가 등장할 경우 2막 또는 3막에서 반드시 그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게 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강조한 원칙이었다.”
에피소드의 인과성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 쓰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무엇보다 고된 건 소설을 한 편 쓰고, 두 편 쓰고, 계속 쓰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역량이란 확실히 단순한 재능과는 조금 다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내가 소설 쓰기에 또는 글쓰기에 적합한 인재가 아님을 절감했다. 나는 게으르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계속 쓰기에는 역량이 달린다는 자각으로 늘 괴로워하는 족속이었으므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미리 정해 두지 않은 가운데 나 자신을 소설 속으로 던져 넣는 집필 방식… 스티븐 킹이 즐겨 채택한 집필 방식이었다.”
나도 계획적이지 않게 타이핑을 시작하는 편이었다.
“글쓰기는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행위”
나는 그렇게 사명감 높은 작가는 아니므로 깊이 반성했던 대목이었다.
# 3
바다가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내 기척을 느낀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물 묻은 손으로 비어 있는 장식장을 가리키며 경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문을 닫아 주고 나갔다. 뇌신경 회로가 재빠르게 그의 행동에 주해를 가했다. (자상한 남자군.)
나는 내 몸이 빠져나온 침대를 돌아봤다. 이불이 제멋대로 뭉쳐져 있고 베개는 발밑에서 뒹굴었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부엌으로 나갔다. 2인용 탁자에 밥상이 차려졌다. 밥과 소고기두부찌개, 간풍가지. 탄성이 절로 나는 밥상이었다. (바다는 부지런하고 요리도 잘하는구나.)
신경세포들이 또다시 잽싸게 주석 놀이를 했다. 줌 화면 속에 있을 때 그는 내게, 오기만 하면 매일 요리를 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내 얼굴에는 사랑받는 여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을 것이었다. 요리에 젬병인 내가, 설거지는 내가 잘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굳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말하며 얼굴을 복어처럼 부풀렸었다. 영상통화를 하다가 나와 의견이 다를 때도 그는 그런 표정을 지었었다. 설거지하는 그의 등 뒤에서 또다시 신경세포들이 수선스럽게 주석을 달았다. (바다는 귀여운 남자다.)
소설가 누구 좋아해?
기욤 뮈소.
왜?
그 사람 소설은 어쩐지 이해하기 쉬워.
『인생은 소설이다』 저 책은 읽었어?
아니 아직. 먼저 읽을래?
난 오기 전에 읽었어.
역시, 하는 그의 감탄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 책을 많이 읽는 글쟁이는 아니라는 자백이었다.
# 4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가 설거지를 끝내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편초가 무더기로 피었다기에 나설 참이었다.
‘첫 데이트로군.’
마편초 꽃길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가느다란 가지 끝에 보라색 잔 꽃이 오밀조밀 달려 피는 마편초, 먼지 뒤집어쓰고 길가에 필 때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꽃인데 저리 모여 있으니 만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마편초 꽃길 입구에는 ‘꽃길을 걷자’라고 쓴 나무 팻말이 서 있었다. 무심히 읽고 지나치려는 나를 무엇인가가 잡아끌었다. 나는 뒤돌아봤고 ‘꽃길을 걷자’는 팻말과 다시 마주쳤다. 텔레비전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가 히트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어느새 ‘꽃길만 걷자’에 세뇌되어 있었다. 표어처럼 익숙한 문구 ‘꽃길만 걷자’에서 조사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문장은 사뭇 다른 뉘앙스를 냈다.
조사 ‘을’은 앞 명사에 붙어 목적어를 지목하지만 배타성을 띠지는 않는다. ‘만’은 특정한 것을 한정함으로 인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감을 전한다. 꽃길만 걷고 싶은 건 누구나의 소망이지만 그게 그리 쉽던가.
나는 다만 ‘내 생에 한 구간쯤은 꽃길이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꽃길을 걷자’고 중얼거리며 앞서간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오래된 연인처럼 손을 잡고 꽃밭을 흐느적흐느적 누볐다.
꽃밭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젖은 목소리에 서운함이 배었다. 공항에서 ‘남자’에게로 내뺀 내가 못마땅하고 서운한 눈치였다. 엄마는 그것을 걱정이라 했지만 내게 그것은 끈적한 선전포고일 따름. 드디어 나는 엄마에게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젖떼기가 늦어진 강아지마냥 나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갇혀 있었다. 엄마와 나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음기를 띤 분자처럼 언제나 내 몸에 붙어 나를 옥죄었다. 엄마의 목소리로 훈련된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지배되어 살았다. 나는 생각하는 기능이 뒤늦게 탑재된 로봇처럼, 마흔이 넘어서야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새로운 기능에 나는 안도했다. 앞으로 더 이상은 누구도 내 생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부는 꽃길은 내 방식으로 헤쳐 가야 할 나의 길이었다. 살아 있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자각이 나를 엄마에게서 분리시켰는지도 몰랐다.
엄마한테는 언제 올래?
엄마 음성이 여전히 물기를 머금었다. 어쩌면 엄마 역시 내게 갇혀 살아왔다. 엄마는 늘 너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았다고 했으니까.
나물 좀 먹어라. 방금 무쳤거든.
아냐 나 배불러.
감 하나 먹어라, 계란도 먹고.
밥 다 먹었어, 배불러 엄마. 그만 먹을래.
그래도 좀 더 먹어라.
엄마! 안 먹는대두! (마지막 대꾸는 소리가 높다.)
죄책감이 묻어 있지 않은 엄마의 목소리는 그래서 늘 투명했다. 여과 없이 투사되는 햇살처럼 강렬하고도 집요한 엄마 목소리에 주눅 드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그런데 나이 든 탓이었을까, 엄마가 좋아하는 마편초 밭이라서였을까. 나는 엄마의 말에 진저리 치면서도 내부에서 적의가 빠져나감을 느꼈다. 기억조차 흐려져 가는 엄마는 목소리를 낮게 드리우고 있을 뿐 더 이상 내게 싸움을 걸어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항복을 선언한 것도 아니었지만. 걱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엄마를 나는 어느새 달래고 있었다. 엄마도 나로 인해 더 이상 아파서는 안 되었다. 오랜 세월 나는, 나의 상처를 무수히 엄마에게 돌려주었었다.
응. 다음 주에 갈게.
엄마는 내 대답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바람에 마편초 더미가 물결을 만들었다. 보라색 꽃 파도 사이로 바다의 하얀 목폴라가 헤엄치고 있었다. 전화를 받느라 그와 거리가 생긴 나는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었다. 그가 하늘을 향해 비눗방울 같은 미소를 날렸다.
# 5
갑자기 고요해진 세상에서 나는 외로움을 탔다. 팬데믹이라는, 오래된 역학 용어가 일상어로 변용되었다. 만남이 제한되고 모임은 취소되었다. 팬데믹에 침몰당한 세상은 소심해졌다. 시간은 방치되었다.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대신 온라인 미팅이 활성화했지만 세상의 고립을 깨지는 못했다. 팬데믹이 길어지자 내겐 이대로 삶이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까지 일었다. 막 재미가 붙은 왈츠는 스튜디오 폐쇄로 중도 하차했다. 워터포비아가 있는 내가 큰맘 먹고 시작한 수영도 체육관이 문 닫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얼마 후 인원 제한을 두고 체육관 이용이 가능했지만 발을 끊어 버린 체육관에 다시 가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흐물흐물 흐르는 시간을 무엇으로든 채우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나중에 만나자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들은 남편과 아직 분가하지 않은 또는 가까운 곳에 사는 자녀들과 뭔가를 했다. 혼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엌을 서성이는 것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죽을 쑤어 보고, 또 한동안은 막걸리를 담갔다. 왜 하필 죽이고 막걸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독특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 1년 넘게 열중하다 보니 제법 손님 초대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비로소 내게 ‘이 시간이 나를 보다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 6
정원 앞으로 승용차가 들어왔다. 다이앤이었다. 민트색 민소매 셔츠에 검은색 짧은 테니스 스커트.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팔다리는 운동으로 단련되어 건강미를 뽐냈다. 소란스럽게 현관에 들어선 그녀가 대뜸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거실을 감싸던 지루한 공기는 다이앤에게 밀려 사라졌다. 마룻바닥 깊숙이 들어온 햇살에 그녀의 피부가 반짝였다. 다이앤은 데이팅 앱에서 만난 백인 남자 알렉산더와 이미 여러 차례 만났다며 목소리마저 들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데서 사람을 만나? 겁도 없네, 정말!
나는 쉬지 않고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이앤은 그런 나를 아는 체도 않았다.
너도 해 봐.
미쳤어! 사기꾼도 많고 어, 어? 너는 운이 좋았던 거지. 난 안 돼.
다이앤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휴대전화를 열어 요즘 가장 핫하다는 데이팅 앱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사진을 올려.
너 미친 거지?
해 봐 해 봐. 호호 히히.
다이앤이 신나게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나는 뒤따라 일어나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는 그녀에게 잔 두 개를 건넸다. 룽고 두 잔을 내려 돌아온 다이앤이 내 휴대전화기를 빼앗더니 ‘자기애’ 앱을 다운로드했다. 그러고는 나의 신상정보를 입력했다. 얼마 후 그녀는 악을 쓰며 만류하는 나를 흘겨보면서 제 할 일을 끝낸 듯 커피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네가 할 일은 엔터enter를 치는 거야.
다이앤은 ‘자기애’에 나의 신상을 써 넣은 후, 최소한의 나의 의지가 작동하길 바라면서 마지막 작업을 남겨 두고 떠났다. 자동차에 시동을 건 그녀가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가무잡잡한 그녀의 피부가 또 한 번 반짝 빛났다.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막, 말을 걸어? 난 못 해. 아니 안 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다. 언제까지 남 눈치 보며 살 거야? 삶은 능동태라며? 넌 운이 좋으니까 잘될 거야. 믿어 봐 네 운명을.
다이앤이 떠난 빈 거실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안마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연인의 체취를 맡기 위해 그이 옆구리에 코를 파묻은 것처럼 상체를 외로 꼰 자세였다. 나는 애써 잠을 청했다. 기존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는 탈피의 시간이 필요하다. 삶은 능동태여야 한다며 읊어 대던 건 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뭐 그 따위 말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 7
무엇엔가 이끌리듯 양팔이 들려 올라갔다. 나는 초록 정원에 서 있었다. 무릎을 구부렸다 펴면서 몸을 위로 길에 늘였다. 높이 치켜든 팔은 꽃송이를 쥔 듯 사뿐했다. 왈츠가 시작되었다. 한 발, 두 발… 천천히 벽을 따라 걷다가 샷세를 한 후 잠시 멈춤. 공중을 유영하던 손이 시선과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어설프게 시작된 춤이 완성되어 가며 나는 날아올랐다. 다시 몸을 돌린 나는 프로그레시브를 연기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어디선가 멀리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와 몸을 감쌌다. You belong to the sun, you belong to the sky. You have more than one song to sing before we die~ 죽기 전에 부를 노래가 있어요~
위스크 락- 샷세- 펫 어 케이크. 나는 구름 위를 걷듯 발꿈치를 세우고 몸 방향을 좌우로 바꾸며 정원을 누볐다. 몇 바퀴를 돈 것인지 음악이 가까이까지 와서 속도를 높였다. 체인지 스텝에 실패한 내가 몸의 균형을 잃었다. 나는 비틀거리다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뜨니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사조가 말미에 이르러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 사이에는 퇴폐적이거나 무관심, 시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발달한다. 데이팅 앱에 신상을 노출하고 사진을 까발리는 것은 내 인생에 전환이 될까.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문을 열어 두어도 도망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그 변화의 목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지는 말자. 나는 자신에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로 했다. 체인지 스텝이었다.
# 8
안녕하세요?
나는 말쑥해 보이는 남자 사진 하나를 골라 메시지를 보냈다.
‘나이 든 여자처럼 굴지 말자.’
삶이 궤도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진지하게 데이팅 앱 ‘자기애’를 여는데, 마음속에는 희극적 긴장감이 차올랐다. 화면을 옆으로 밀어 가며 남자들 사진을 훑었다. 웃음 이모티콘을 난사한 인물 패스. 다짜고짜 직업을 묻는 남자 패스. 30대로 보이는 남자 패스…. 그때 알림음이 울렸다. ‘바다 씨로부터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허파에서 풋 하고 꽈리 하나가 터졌다.
‘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바다는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건넨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달빛 님. 반갑습니다. (내 닉네임이 ‘달빛’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바다 님. (나는 키득거리며 문자를 전송했다.)
우리는 상대방이 앱에 올려 둔 정보를 기반으로 통성명도 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바다 님은 강원도에 살고, 약국을 경영하고 있으며, 나와 동갑이었다. 그가 나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미국 가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인상이 참 좋습니다.
10년째예요. 인상? ^^감사합니다. (그는 내가 올려 둔, 5년 전 프로필 사진을 보고 있었다.)
프로필에서 작가라고 읽었는데 무슨 글을 쓰세요? 장르랄까…. (대답하기 불편한 질문이었다.)
용기를 냈다고는 하나 익명을 유지하고 싶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망설였다.
‘이름을 밝혀도 좋을까? 그는 괜찮은 사람일까?’
직업에 관해 구체적 발언을 하고 나면 그는 내 실명을 궁금해할 것이고 대중에게 노출된 나로서는 곧 파놉티콘 아래 놓인 죄수처럼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것이었다.
신문에 종종 칼럼 쓰고요.
제 이름은 통통입니다. 성함을 여쭈어도 좋을지요? (그가 내 속내를 읽었던 게다.)
……
내가 말이 없자 그에게서 연이어 메시지가 왔다. 바다, 아니 통통의 이력서였다. (깜짝 놀랐다.)
이름 : 통통
1975. 04. 22.
혈액형 : O형
183㎝ / 97㎏
1999~2006 벼리동에서 약국
2006~2008 중국어 강사
2009~2014 D 제약회사 중국 지사장
현재 강원도 벼리동에서 바다약국 운영
내가 이력서를 살피는 동안 바다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여자분에게 이력서 보내 보기는 처음입니다. (이 말을 보내면서 그는 웃었을 것이다.)
하하하하하…. (나도 호의적인 웃음을 날렸다.)
이희주예요.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의심을 축소하고 중요한 웹 사이트에서 본인 인증을 해야 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 체크하는 것처럼 실명을 밝혔다.
# 9
백신이 공급되고 있었으나 코로나는 변종으로 거듭나며 팬데믹을 연장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바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느리고 낮은 음성이지만 소년 같은 말투였다. 글이 참 좋습니다. 그는 내 글들을 찾아 읽었다며 나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 (그는 순발력도 좋은가 보았다.)
그는 점잖은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음을 참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네요. 가 본 중에 어디가 좋던가요? 하와이요. 나는 망설임 없이 하와이라고 대답했다. 하와이에 매력을 느낀 후 나는 자주 그곳에 갔다. 빅 아일랜드의 검은 대지는 갈 때마다 경이로웠다. 빅 아일랜드, 코나에서 힐로로 관통하는 11번 도로는 건조대와 습지를 두루 지난다. 드라이브 도중에 차를 세우고 코나 커피 농장들에서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를 따 입에 넣는 재미도 좋을뿐더러, 힐로의 야생 숲, 그 상큼한 공기를 나는 몹시도 좋아했다. 그리고 또요? 알래스카….
나는 알래스카라고 입술을 달싹이면서 어깨를 떨었다. 알래스카는 매력적인 여행지지만 진수를 보낸 후 혼자 떠난 여행지였다. 파피 꽃밭을 다녀온 후 나는 진수에게 더 이상 작업실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즈음 진수를 맘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진수는 요양원에서 만난 이래 줄곧 내 곁에 남아서 나의 거추장스러운 일들을 도맡아 주었으나 내 맘속에 그를 위한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내가 알래스카를 떠올릴 때는 언제나 진수가 뒤따라왔다. 그 여름 알래스카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었다.
길거리 화단 가득 보라색 주황색 꽃이 만발해 있었죠.
내 대답이 그의 기대를 벗어났다. 그는 빙하, 설경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의 반문에 환영처럼 떠 있던 진수가 달아났다. 꽃밭도 사라졌다. 내 눈앞에는 흘러내리다 얼어 버린, 푸른 물이 절벽을 이룬 글레이셔 베이 빙하 광경이 나타났다.
내일은 화상 통화 어때요? 얼굴 보고 싶은데….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냐? 바다는 성급한 남자구나.)
나는 큭큭, 웃음을 터뜨렸고 바다는 그런 나를 따라 웃었다.
# 10
휴대전화 부르릉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의 전화는 어느새 내 휴대전화 알람 기능을 자처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원격조종 당하는 로봇처럼 자는 시간을 바다에게 알리고, 그의 전화가 걸려 오는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내가 전화를 받자 바다는, 다시 화상으로 걸게요, 하더니 전화를 끊고 화상 통화로 들어왔다. 큼직한 얼굴, 세워 멋을 낸 머리칼.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 차림인 그는 은목걸이와 은팔찌를 두르고 있었다. 그가 켜 둔 영상 너머로는 부엌이 보였다. 싱크대 위에 전기밥솥과 믹서가 나란히 놓여 있고 인덕션 뒤로 양념 병이 가지런히 보였다. 나는 급하게 주워 입은 분홍색 민소매 홈웨어에 머리띠 차림이었다. 나는 노트북 모니터를 그림 걸린 벽 쪽을 향해 세워 두었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유산균을 먹으러 부엌을 드나들면서 영상을 힐금거렸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해 가며 바다와 나는 쿡쿡 바보처럼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말이 필요치 않다. (사랑이 시작된 거 같았다.) 쑥스러운 상황에서 웃고만 있는 바다였다. 실어증 환자처럼 적당한 문장을 조합해 내지 못하는 나 역시 그를 향해 웃어 대기만 했다.
사진보다 이쁘시네요. (남자들의 흔한 말이다.)
그는 ‘자기애’ 프로필에서 봤던 내 사진을 떠올리며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이미 익숙함에 빠져 있었다. 전화 통화를 시작한 후부터 그는 매일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으니까. 돌 사진, 대학 때 찍은 사진, 최근 사진들, 개구진 표정, 흰 가운을 걸친 준엄한 표정의 사진까지. 처음 대하는 얼굴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바다는 날마다 영상통화를 걸어오고 통화 시간은 그때마다 늘어났다. 이삼십 분 하던 통화는 두세 시간으로, 다시 대여섯 시간으로 늘었다. 수명 다한 건전지처럼 우리의 하루는 빠르게 소진했다. 그와 통화를 시작한 후 나는 자주 이유 없이 웃었다. 그와 함께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내 안에서는 잠자던 어린아이가 자꾸만 깨어났다. 48세 소녀. 바다님 노래 불러 줘, ‘첨밀밀甛蜜蜜.’ (노래도 잘하네?) 가락으로 바뀐 그의 목소리가 내 아침 식탁을 장식하곤 했다.
‘당신의 미소는 달콤해요~. 마치 봄바람 속에서 꽃이 피는 것 같아요. 봄바람 속에 있어요. 거기서 당신을 봐요. 당신의 미소는 그렇게 익숙해요~.’
첨밀밀, 꿀처럼 달콤하고 달콤하다는 노랫말. 유행가에 감정이입이 되면 사랑에 빠졌다는 뜻이다. 얼마 만에 갖는 감동적 일상이었는지 몰랐다. 그는 내게도 노래 부르기를 종용했다. 나는 노래를 좋아할 뿐 잘하는 건 아니라고 정색했지만 ,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안의 아이, 쭈쭈가 노래를 부르는 게 좋겠다며 심장 위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노래 못 한다니까? 너도 알잖아!) 작은 소리로 불러. 불러야 돼. 어서어서. 쭈쭈도 바다도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쭈쭈는 심지어 연애에 빠지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 나이에? 그래도 되겠니? 또다시 함정에 빠지는 건 아닐까?) 살면서 처음 맛보는 달콤함에 내 목덜미에서는 닭살이 돋았다. (좋다 질러 보자!) 나는 톨스토이 장편 소설 「부활」을 내용으로 하는, 가수 송민호의 「카투사의 노래」를 열창했다.
# 11
나는 자기애 앱을 열어 ‘당신의 매력 지수’를 확인했다. 5점 만점에 4.9라고 쓰였다. 자신감이 한 뼘 상승했다. (흠^^ 운명을 믿어 봐?) ‘그래야 한다’에 매몰되었던 내 삶에 자유를 주고 싶어 마음이 꿈틀거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것들에서 나온다. 쭈쭈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볼까…. (잘못되어 봤자 얼마나 잘못되겠어, 이 나이에?) 그가 다시 내게 노래를 재촉했다. 아무거나 해 보세요~. 좋아요. 부를 줄 아는 건 다 60년대 노래예요. 오케이? 그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제는 잊어야 할 당신의 얼굴에서 수줍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봅니다. 내 젊음을 엮어서 내 영혼을 엮어서 사랑했던 여인, 연상의 여인~~
나이보다 훨씬 더 올드한데요? 하하하.
오래도록 잊고 있던, 꿈꾸던 일상이었다.
나 만나면 하고 싶은 게 뭐야? 버킷리스트 작성해서 보내 봐. 그의 목소리에는 도파민이 묻었다.
1. 손잡고 동네 돌아다니기
2. 길에서 뽀뽀하기
3. 영화관 커플룸 가기
4. 커플 룩 입고 여행하기
5. 바닷가 거닐기
6. 함께 사진 찍기, 사진관에서
7. 밤 기차 타고 멀리 가기
8. 함께 쇼핑하면서 서로에게 줄 선물 고르기
9. 노래방 가기
10.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꽃 피는 날 함께 보기
의심과 확신의 경계, 나는 그 좁은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 12
오전 8시 반. 카톡카톡. 머리맡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바다는 그즈음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내가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렸다가 아침 인사를 건네 왔다. 서울은 밤 12시 반. 잠이 덜 깬 눈으로 전화기를 열자 그의 얼굴이 코앞에 떴다. 잠옷 차림인데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화면이라는 경계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극장 관객처럼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털털하게 웃었다. 그건 가상의 세계였을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나눌 수 없다고 기욤 뮈소는 말했지만 현실과 가상의 경계도 내게는 모호했다. 오전 11시, 그의 시계는 새벽 3시. 한나절을 다 보냈다. 토요일 저녁 약속 없어? 어 괜찮아, 근데 왜? 내가 토요일 오후면 그에게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같이 밥 먹자.
토요일 오후 6시. 나는 영상을 켜 두고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의 시계는 일요일 오전 10시. 바다는 노트북을 부엌이 보이도록 돌려놓고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나는 바게트를 굽고 브라다 치즈를 넣어 샐러드를 준비했다. 우선 바게트를 썰어 염소 치즈를 올린 후 오븐에 넣고 브라다 치즈와 내가 좋아하는 아르굴라를 씻어 물기를 뺀 후 놋그릇에 담았다. 그 옆으로 데친 토마토를 반달 모양으로 썰어 구색을 맞추었다. 그런 후 진간장 설탕 매실즙을 섞어 소스를 만들고 호두를 빻아 샐러드 위에 뿌렸다. 치즈가 녹은 바게트를 꺼내 식탁에 올리면 완성이었다. 그도 순식간에 마파두부와 새우튀김을 만들어 왔다. 취미가 요리라더니 바다의 요리에서 풍미가 느껴졌다. 그는 맥주를 꺼내 오면서 내게도 술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화면을 돌려 나의 막걸리 냉장고를 보여 주었다. 내가 종종 막걸리를 담근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무화과 막걸리, 산삼 막걸리, 찹쌀 삼양주, 멥쌀 단양주 등으로 이름 붙여 놓고 날짜까지 써 둔 막걸리 병들을 보고 감탄했다. 나는 걸쭉하게 거른 찹쌀 삼양주를 꺼냈다. 그리고 와인잔 입 언저리에 설탕을 발라 마가리타 잔처럼 만들고 거기에 막걸리를 따랐다. 바다는 막걸리의 신세계를 본다며 기죽은 시늉을 하더니 맥주를 집어넣고 위스키 온더록스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화면에 대고 건배했다. 그날 저녁을 나는 바다와 함께 보냈다.
바다와 나는 노트북을 켜 두고 일과를 함께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때는 컴퓨터 화면을 열어 둔 채로 잠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고 기타를 쳐 주느라 약국 문 여는 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 13
바다는 내가 태평양 건너편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거리의 저주’에 걸려 못 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란다. 우리는 거리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를 함께하기로 했고 그것이 동영상 채널 공동 운영이었다. 편집은 바다가, 나는 콘텐츠를 구상했다. 개인 TV <달빛 책방>이 그렇게 태어났다. 내가 짧은 단상을 써서 녹음 후 바다에게 보내면 바다는 적당한 그림을 찾아 동영상을 만들어 편집했다. 우리는 허술하지만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해 나갔다. 행복, 위로, 혼자 빛나는 별, 한여름 밤의 여행, 두 여자를 사랑했다, 등등. <달빛 책방>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은 달빛과 바다의 공간이었다.
<달빛 책방>으로 바빠진 내게 쭈쭈가 보챘다. 그를 보러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더러 한국에 가라고? 그를 만나러? 진짜?) 쭈쭈는 내게 언제까지 가상 세계에서만 살 거냐고 다그쳤다. (가 볼까…?) 8월의 마지막 날, 로스앤젤레스 공항. 자기애에서 그를 만난 지 석 달 만이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공항 풍경을 사진 찍어 바다에게 보낸 후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발일지 모를 여행이었다.
# 14
마편초 꽃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가 물었다.
낼 아침엔 뭐 먹을까?
음…, 죽?
전복죽 좋아해?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음악처럼 가지런히 들려왔다. 늦잠을 잔 나는 동면에서 깨어나는 짐승처럼 기지개를 길게 켜며 부엌으로 나갔다. 흰색 모시 식탁보 위에 하얀 도자기 그릇, 전복의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듯 연한 녹두 빛깔의 전복죽. 전복죽에 해바라기 씨앗 두 개가 장식되어 있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보랏빛 장미가 꽂혀 있고 그릇들 사이로 장미 꽃잎이 흩어져 있었다. 영화에서 봄 직한 감각적인 밥상이었다. 식탐 있는 아이처럼 전복죽에 열중한 나를 지켜보면서, 바다는 숟가락 위에 김치나 장조림을 놓아주었다. 전복죽의 따끈함이 몸을 구석구석 데우며 위장으로 미끄러졌다.
배앓이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죽을 끓여 주었다. 부엌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고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방문 앞으로 다가오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레 더 아픈 체를 했었다. 엄마는 당신의 무릎에 죽 그릇을 올려놓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지켜보곤 했다. 바다의 전복죽 위로 엄마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응석 부리기 좋은 음식이다, ‘죽’은.
설거지까지 마친 바다가 약국 문을 열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달빛 책방>을 녹음한 후 오후에 나갈 생각이었다. 다음 주 영상은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의 눈먼 새우 이야기였다. 솔트레이크는 수억 년 전 지구가 융기하면서 바다가 내륙으로 들어온 후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고여 호수가 된 곳이었다. 높은 염도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생물이 죽어 갔지만 새우는 자기 눈을 퇴화시키며 호수에 적응했다. 결국 솔트레이크에는 눈먼 새우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변화를 받아들이고 상실을 감수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친 새우의 장엄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 15
우리는 밤차를 몰아 부산에 도착했다. 해운대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8시가 가까웠다. 태양은 붉은 기를 거두고 대양에서 이미 멀리 솟았다. 사람이 많지 않은 백사장에서 우리는 다시 못 올 것처럼 열심히 발자국을 남겼다.
태양이 기울기 전 장림포구에 들렀다. 원색으로 칠해진 담벼락이 줄지어 늘어선 장림항은 사진으로 볼 때 꽤 로맨틱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시멘트가 울퉁불퉁 발린 벽 곳곳에, 칠이 떨어져 나가 잿빛 속살이 드러난 낡은 벽이었다. 잔뜩 실망하여 걷고 있는데 ‘드론 촬영 15,000원’이라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진 찍자. 바다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진 속 원색 담벼락이 감쪽같이 환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더니 사진 속 벽은 전혀 울퉁불퉁하지 않고 칠이 벗겨진 부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든 전 생애를 상처 없이 살아 낼 수는 없다. 바다와 내가 버킷리스트를 완성해 가는 동안도 수많은 상처가 우리를 훑고 지날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와 내가 지나온 길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기를, 나는 그 순간 소망했다. 저 장림항의 낡고 빛바랜 벽처럼.
# 16
강원도 바다의 집에 온 지 넉 달이 지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르게 동화했다. <달빛 책방>을 녹음하고 오후에는 약국에 나가고 저녁에 함께 마트에 들르는 일들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었다.
노트북을 열고 메일함을 확인했다. 『한국에세이』로부터 원고청탁이 들어와 있었다. 마감일까지 한 달 남았다. 몰아 쓰다가 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는 나의 행태로 봐서는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욕심이 앞서 수락 메일을 보냈다. 나는 달빛과 바다 이야기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시작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님을 나의 독자들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달력에 원고 마감일을 표시해 두고 나는 우선 <달빛 책방>을 녹음했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가 소재였다. 열 편 넘게 녹음했는데도 <달빛 책방>은 여전히 아마추어 티를 못 벗었다. 이래저래 늦되는 인생이었다.
# 17
17년이나 혼자 지내 온 바다에게 갑자기 여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작은 시골 동네에 구석구석 퍼졌다. 학급에 새로 들어온 전학생처럼, 나는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서 온 여자, 글을 쓴다는 이력, 어리바리한 인상착의 등 나의 모든 것이.
헤어 롤로 앞머리를 부풀린 미용실 혜진 씨, 작은 키에 통통한 삼겹살집 사장 근영 씨, 스카프로 멋을 낸 카페 종업원 지선, 직업군인으로 퇴역한 김 중사, 택시 기사 재식 씨 등이 차례로 다녀갔다. 그들은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약국에 새로 온 여자를 염탐했다.
재식 씨와 김 중사가 자리를 만들어 우리는 근영 씨네 식당에 둘러앉았다.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밥보다도 달빛과 바다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쟁반에 들고 온 반찬을 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근영 씨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영화의 결말을 기다리며 조바심치는 관객처럼 내가 뭔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애 앱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 외에 우리 이야기에는 반전이 없었다. 인사를 건네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달려온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자기애 앱에서 만났어. 느닷없는 바다의 선언. 세 사람은 일제히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정말??? 완전 반전이야.
우리가 데이팅 앱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들의 예측을 벗어난 모양이었다. 일제히 손뼉을 치다가 술잔을 부딪고 한바탕 즐거운 소란이 일었다. 그들은 건배사로 반전을 외쳤다.
에필로그
넉 달이 흐르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기온은 내려가고 무성한 초록이 갈색을 띠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약국 안주인처럼 굴고 있었다. 바다는 내게 조제실을 보여 주었다. 여긴 아무도 못 들어와. 당신과 나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그건 내가 그에게 어떤 특권을 행사해도 좋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언제부터인지 당신으로 변해 있었다. 불안한 마음과 안정감이 동시에 나를 흔들었으나 나는 그의 ‘당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뇌하수체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되었을 것이었다.
조제실을 나오면서 바다는 내가 약 이름과 약 위치를 익힐 수 있도록, 내게 약 선반 정리를 부탁했다. 아침에 도매상이 놓고 간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제실에 다녀온 나는, 그의 내자라도 된 듯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상자를 끌어와 약 선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약국 유리문이 사정없이 열리며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지나쳐 조제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다가 순식간에 그녀를 따라 조제실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나는 혼란스러움에 잠시 멈칫했다. 조제실을 바라보다가 약장 정리를 하다가…. 방금 전까지 엔도르핀을 끓여내던 머리는 이미 하얗게 굳어 버렸다. 조제실 안에서는 작은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시간이 흘렀다. 조제실에서 나온 두 사람이 내게 거리를 두고, 시위하듯 내 앞에 나란히 섰다. (이 양상은 또 뭐지?) 바다의 얼굴이 복잡해 보였다. 그들은 변명하지 않았고, 이런 경우를 위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질러, 소리 지르라고. 욕해도 좋아!) 쭈쭈가 심장을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머리는 차갑게 식었고 온몸은 모멸감으로 달아올랐다. 여긴 당신과 나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내게 특권의식을 갖게 했던 그 말, 그 뜨거운 배반. 블랙코미디의 마지막 장면 같은 엔딩이었다. 나는 2층 계단을 천천히 올라 방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가방을 싸는 내내, 명석한 머리와 달리 손이 감정을 드러내며 떨었다.
계단을 오르는 내게 바다가 문장 몇 개를 날렸다. 옆 건물 병원 간호사야. 그냥…, 병원 쪽에서 급한 약이 필요해서 왔어. 걱정할 일 아니야. 이런 통속한 변명이 있나, 나쁜 자식. 나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성한 여름은 그렇게 낙엽이 되었다. ◎
이성숙 | 2015년 미주 『기독문학』, 2019년 『한국산문』 신인상 수상으로 수필가, 2017년 『시와 정신』 신인상으로 시인, 2021년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으로 소설가 등단. 아포리즘 에세이집 『고인물도 일렁인다』 『보라와 탱고를』 『인식의 깊이 삶의 너비』, 실용서 『AI 활용 단숨에 뚝딱 책쓰기』. 여행에세이집 『바람에 마음을 맡기다』. 계간 『문예바다』 편집장, 글쓰기와 인문학 포럼 <문예살롱>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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