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태풍에 잎과 열매를 힘없이 떨구어 보낸 은행나무가 새순을 올리고 있다. 새순이 가을에 올라오는 것을 보니, 조산하고 다시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잎을 피워 내야 호흡을 할 수 있는 게 나무의 생명이다. 은행나무는 여린 잎에 끊임없이 사랑을 불어넣어 보지만, 여린 잎은 머지않아 다시 찾아올 겨울 찬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또 맥없이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또 한 번 유산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아파트 뒷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있다. 내기라도 하듯 신나게 올라가던 담쟁이가 어느 날 정원사의 손에 몸이 잘리고 밑동만 남아 있다. 밋밋한 담에 자연의 그림을 그리며 푸른 가지치기로 식구를 늘리던 담쟁이가 속절없이 수난당한 모습이다.
무엇이든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픔이다. 집에서 기르던 소가 팔려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는 팔려 갈 것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듯 며칠 전부터 여물을 잘 먹지 않았다. 아버지의 속마음을 다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눈만 꿈쩍거리며 시선을 먼 곳에 돌린다. 울음만 토해내는 소가 안타까워 아재는 여물통을 들고 외양간을 왔다 갔다 한다. 솟값을 제값대로 받아야 한다는 속내도 있겠지만, 떠나보내는 길에 배라도 두둑하게 채워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깊이 자리했을 것이다. 장날 새벽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고 가지 않으려고 네 발을 땅에 박고 서 있는 황소의 등을 긁어주며 아버진 이런저런 말로 달랜다.
고삐를 끌고 외양간을 빠져나갈 때 움~ 머~ 하고 마지막 울음을 길게 풀어낸다. 그러다 다시 뻗대고 서면 아버지는 사정없이 소의 엉덩이를 후려친다. 소가 목을 빼면 한 대 더 후려친다. 논밭 갈이면 집안의 살림 밑천으로 피붙이같이 쌓은 정을 아버지는 모질게 떼려는 것이다. 주인의 마음을 어찌 모르랴, 소가 떠나가고 난 텅 빈 외양간은, 집안 살림이 절반이나 빠져나간 것 마냥 허전했다. 소가 차지했던 든든한 자리는 이내 아픔의 흔적으로 남는다.
큰 오빠는 황소 같은 분이었다. 여고를 다닐 때 오빠는 외항선 선장이었다. 오빠는 법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기울어가는 가세를 걱정해 해양대학을 택했다. 검은 제복을 입고 거대한 배에 컨테이너나 자동차를 가득 싣고, 마도로스 기상의 뱃고동을 높이 울리며 미국 샌프란시스코항, 캐나다 밴쿠버항을 항해했다. 내가 바라보는 마도로스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분이었다. 거센 파도를 가르며 높이 세운 기상은 오빠의 왕양한 깃발이었다.
약 일 년 간격으로 입항해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잠시 뿐, 출항할 때의 뒷모습은 다시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에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빠는 망망대해를 항해하여 집안을 지켰지만, 다시 떠날 때는 팔려 가는 황소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숱한 고독을 딛고 아픔을 치른 세월을 얼마나 보냈을까? 어느 해 육지에서 긴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어쩌다 그만 뭍으로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사기에 빠져 한순간에 가산을 몽땅 날려 버렸다. 한두 해 만에 파도보다 더 거센 바람이 집안에 일었다.
육지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땅에 발을 내딛고 마음대로 걸어 다니며 사는 삶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랬을까. 궁핍이라는 매서운 칼바람을 안고 거리로 나서 이일 저일 찾아보았지만 무엇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결국, 손에 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태풍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아래에 오빠가 있다는 생각에 나는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가끔 오빠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간단한 안부만 남긴 뒤 뚝 끊어질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팔려 나가던 소 울음 같다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했다. 느닷없이 지르는 고함 소리는 검푸른 파도 소리였다. 그것은 저 깊은 바닷속에 묻어둔 억한 심정을 분출하는 것이리라.
이제는 두문불출하고 입을 닫고 사신다. 드넓은 기상도 접고 녹슨 쟁기만 바라보고 우두커니 외양간이나 지키는 황소처럼 어느새 몸도 노구의 자리로 들고 보니 그 무엇 하나 운신하기 귀찮은 세상이 된 것이다. 한때의 젊음을 그렇게 날려버린 회한에 잠겨 말이 없다. 철 아닌 계절에 피어난 나무순처럼 오빠의 계절도 그렇게 지는 걸까.
앙상한 가지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스치는 오빠의 하선길을 따라 일렬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가로등이 새벽이면 졸음에 못 이겨 무겁게 내려앉는다. 밤이 낮으로 바뀐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서 있는 저 가로등도 어쩌면 내일의 일탈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을 타고 하늘을 향해 푸르게 푸르게 꿈을 그리고 싶었던 오빠의 그림 위에, 밑동이 잘려 시간의 벽을 바라보는 오빠의 시선이 걸려있다.
떠나보낸 자리에 사랑을 불어넣어 오는 겨울을 이기려 애쓰는 은행나무, 아픈 가지 사이로 어디선가 미풍이 불어온다. 미풍을 탄 담쟁이도 내일의 희망을 품고 시간을 쫏고 있다.
잎이 진 자리에 오빠의 그림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