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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0일 굴산사 가는 길... 남항진 해변...(09:36)
예부터 동대문 밖 강릉이라는 말이 있다. 동대문 밖을 나가서는 강릉이 가장 살기 좋다는 뜻인데,
강릉은 삶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다.
강릉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남항진해변에서 시작하여
청량동 입구, 중앙시장, 모산봉, 장현저수지를 지나 학산오독 떼기 전수관을 도착하는 코스이다.
소요 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리며, 주요 관광 포인트로는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강릉중앙시장,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문화유산으로 천년의 향기가 깃든 축제 한마당인
강릉단오제를 체험할 수 있는 강릉 단오문화관,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모산봉 전망대,
통일신라의 선승인 범일국사가 태어난 굴산사 절터, 연화와 무월랑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정자 월화정이 있다.
남항진동 南項津洞
남항진은 남대천과 섬석천이 만나 바다로 빠지는 곳에 있는 포구로,
옛날 송정에서 한송사(寒松寺), 한송정(寒松亭), 불하산(佛下山)으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강릉군 덕방면(德方面) 남항진리가 되었다. 1920년 덕방면과 성남면을 통합한 성덕면의 남항진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성덕면과 경포면(鏡浦面)을 병합하여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시 입암동(笠巖洞) 관할의 남항진동이 되었다.
1965년 두산동(斗山洞) 관할이 되었다가, 1988년 성덕동 관할로 바뀌었다.
강릉 남대천 하구 건너편 남쪽 해안가에 있으며,
남대천 하구의 섬석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길이 600m, 2만4천㎡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해변이다.
남항진동에는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나루터는 마을 앞에 배를 대는 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강릉시 남항진동 산12-2번지에 있는 한송사지는 신라 때의 고찰 한송사가 있었던 곳으로써
황폐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한송사지에 한송사란 암자가 유지되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한송사 석조 보살 좌상은 현재 국보 제124호로서 국립 중앙 박물관 불상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한송사지 석불 좌상은 국보 제81호로 지정되어 강릉시청사 내에 보존되어 있다.
한송사지 석불 좌상은 통일 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7세기경
중국 산서성 태원(太原) 천룡산(天龍山) 석굴의 자유스럽고 사실적인 조각과 흡사하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한송사는 200여 간의 큰 사찰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주위 200여 미터까지 기와, 자기 조각의 잔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안목과 남항진을 연결해 주는 인도교 솔바람다리가 2010년 4월 9일 완공되어
바닷바람과 강바람을 함께 쐬며 열대야를 잊기에 최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또 최고의 먹거리 삼교리동치미막국수가 있어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의 발목을 사로잡는다.
주변에는 횟집들이 많고, 주차장이 넓어서 주차하기도 용이하다.
또한 주변에는 깨끗이 정비된 민박집도 있어서 조용하게 하루를 묵으며 새해를 맞을 수 있는 곳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바우님들을 기다리면서...
미수기 & 복자매
이사님 Opening...(09:58)
6구간 지기 레이니어님 & 틸리초님
주니정님 & 테라님
굴산사 가는 길.... 출발...(10:04)
섬석천 剡石川
강원도 강릉시 남쪽의 유산동과 신석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섬석천은 구정면과 왕산면의 경계가 되는 칠성대(953.6m)를 최고봉으로 하는 일련의 산줄기로부터
북사면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물들이 경사급변점에 설치된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에 저장되고,
이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온 물들이 구정면 장현저수지의 물과 합하여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로부터 흐르는 물은 산지와 산지 사이에 완만한 부채꼴 모양의 지형을 흐르면서
고도가 점차 낮아지고 결국 장현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물과의 합류지점으로부터 본격적인 섬석천의 유로가 나타난다.
섬석천의 영향을 받아서 농사짓는 지역은 상류의 어단리, 부채꼴 모양의 중간 지점인 학산리와 금광리,
그리고 그 아래쪽에 담산동과 박월동, 섬석천 본류의 영향을 받는 신석동과 운산동,
더 나아가 하류의 넓은 저 평지 속에 자리 잡은 월호평동 등이다.
그리고 2002년 태풍 ‘루사’가 내습하였을 때 섬석천에 물 공급을 주도했던 장현저수지의 제방이 붕괴되어
저수지 하류의 섬석천 유역에 있는 농촌인 신석동, 월호평동, 그리고 그 하류 지역들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사하라 사막 모래 언덕...
섬석천 둑방길을 걸어간다...
자초들紫草-
강원도 강릉시 청량동 섬석천에 있는 넓은 들.
자초들 [자초아]은 예부터 마을 앞 냇가에 자초풀(지치)이 많이 자라 그 풀이름이 지명으로 되었다.
자초들은 청양이 앞 섬석천 냇가에 있는 들인데, 위쪽에는 섬둘이 있고, 아래쪽엔 남항진이 있고,
앞에는 월호평이 있고, 뒤에는 월대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있다.
자초들에 있는 자초풀[紫草]은 섬석천을 정비하면서 없어졌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석천에 있는 유다리를 건너면 월호평동이 된다.
불두화 ( 佛頭花)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하였다.
순백으로 피어 풍성한 불두화를 화병에 꽂아 들여놓으면 집안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정원수로 쓰이며 열매를 맺지 않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사찰에 많이 심겨져 있다.
꽃이 공처럼 아름다워 꽃꽂이용 소재로도 종종 이용된다.
번식은 꺾꽂이나 접붙이기로 한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이나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노지월동도 가능하다.
인동과의 낙엽지는 작은키나무이다. 불두화는 백당나무의 유성화를 없애버리고 무성화의 꽃잎만 자라게 한 원예품종이다.
공 모양의 커다랗게 핀 꽃이 인상적이다.
학동 한옥 팬션 근처에서 잠시 휴식...(10:40)
청량동 초입에서 처음 본 붉은 아카시아 꽃
청량동 靑良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법정동.
‘청량동’이란 명칭은 청량미가 잘 자라는 청량들이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청량동의 옛 이름은 ‘청양이’이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청량동은
두산, 입암, 학동, 병산, 남항진 마을과 함께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는 입암동 관할이던 법정동인 입암동,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법정동인 두산동, 학동, 병산동, 남항진동은 행정동을 두산동으로 하여 각각 분리되었다.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합에 따라 청량동이 속해 있던 입암동과 두산동이 통합되어 성덕동이 되었다.
청량동은 밋밋한 산줄기들로 이어진 고을이고 땅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으면 잘 자라고 땅이 좋아 소나무가 늘 푸르른 동네이다.
마을 앞[남쪽]으로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칠성산[구정면 어단리] 밑에서 흘러온 섬석천이 흐르고,
내 건너 남쪽에는 월호평의 넓은 들과 공군 비행장이 있다. 마을 뒤에는 산줄기가 여러 갈래로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예부터 청량이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 논농사가 잘 되었고, 그래서 농토를 구입해 농사짓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마을 앞 냇가에는 남쪽 마을인 월호평동으로 가는 ‘유다리’가 있다.
유다리는 ‘율다리’란 말의 준말로 과거에 밤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율다리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넓은 월호평이 되는데 옛날 정월 대보름에 월호평동 사람들과
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 이 다리에서 횃불싸움을 했다고 한다.
횃불싸움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에 모여 나이 숫자만큼 다리를 밟는 다리밟기를 했다.
주요 지명으로는 석밭골, 새우자리, 웃모퉁이, 아랫모퉁이, 자초들[자초아], 유다리, 해남방축 등이 있다.
유다리에서 율곡로까지 철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주변에 공군 비행장이 접해 있다.
성덕 공원
공원 그늘 아래서 잠시 휴식...(11:23)
삿갓바위
옛 철길 부지를 활용해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노암 터널
입암동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월화 거리까지 이어지는
강릉의 숨은 명소로 예전에는 실제로 기차가 드나들던 길목이었으나
KTX 철로가 신설되면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한국 3대 트레킹코스로 손꼽히는 강릉 바우길에 속한다.
터널 안에는 오래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며,
터널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노암 터널은 6.25의 아픔이 기억되는 피학살 현장이다
강릉시 노암동에 위치한 이곳은 6.25 당시 반공 인사 100여 명이
북한 공산도당에 의하여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원통한 현장이다
1985년 6월 25일 한국방송공사가 희생된 영령들을 추도하고
피 흘림 없는 조국 통일을 기원하며 삼가 이곳에 비를 세웠다
초록잎 사이에 노랑 나비가 내려 앉은 듯...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 김영랑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맹세는 가볍기 흰구름쪽
그 구름 사라진다 서럽지는 않으나
그 하늘 큰 조화 못 믿지는 않으나
월화정月花亭
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연화부인과 관련된 설화로 인하여 연화정(蓮花亭)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예전에는 명주각(溟州閣)이라고도 하였다.
월화정은 강릉 남대천 가에 있던 연화봉(蓮花峯) 옛 자리에 있었으며,
신라 때 연화부인(蓮花夫人)이 물고기를 길렀는데,
그 물고기가 김무월랑(金無月郞)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다는 옛 자취가 있으므로
이에 그 후손들이 양어지(養魚池) 바위 위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
1930년 강릉김 씨 종인들이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신축하였는데,
영동선 철도 부설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명주성 내로 이건 하였다가 1961년에 철거되었다.
2004년 옛터 인근에 관리사 1동과 함께 월화정을 복원하였다.
월화정은 강릉김씨 대종회에서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꽃으로 뒤 덮인 월화교...
변하는 계절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꽃처럼
사라지지 않는 나와 너의 시간
우리가 꽃이라 부르던 것보다
나에겐 너와 함꼐 하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이 꽃이었다.
옥연님
남대천 南大川
강원도 강릉시 중심지로 흐르는 내.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화실산(大花實山)[1,010m]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왕산·성산·구정 등 3면의 경계부에서, 역시 왕산면에서 발원하는 지류를 합친 뒤,
성산면과 구정면의 경계를 북동류하고, 강릉 시역(市域)에 들어와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강릉 시가지 남쪽을 거쳐 하구부에서 섬석천(剡石川)을 남안(南岸)으로 받아들이면서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길이 32.86㎞, 유역면적 258.65㎢이다.
남대천은 강릉대도호부의 관아 앞(남쪽)으로 흐르는 큰 내여서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경포호 하구로 흘렀으나 지금은 하평에서 동해 바다로 흐르는데 강을 직선화하여 물의 흐름이 빠르다.
상류의 산지에서는 좁은 곡저평지(谷底平地)를 대상(帶狀)으로 형성하고,
하류의 해안에서는 영동(嶺東) 해안평야 중 가장 넓은 평야의 하나로 꼽히는 유역평야를 형성하여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시를 발달시키고 있다.
남대천은 강릉의 서쪽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강릉의 중심부를 지나기 때문에
남쪽지역과 북쪽지역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대천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도로가 생겼는데, 영동고속도로, 동해대로, 7번 국도, 영동선 등이 있다.
남대천 상류에는 오봉저수지가 있고, 하류에는 죽도봉이 있고,
죽도봉이 있는 앞목과 남쪽 남항진을 잇는 솔바람 다리가 있다.
예전에는 영동선 외 4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다리가 많이 늘어났다.
남대천 주위에는 금선정, 연어대, 방구정, 영귀암, 삼포암, 이구산, 상임경당, 하임경당,
월화정, 와룡암, 서출지, 연화담 등의 정자와 명소가 있다.
월화거리 月花-
강원도 강릉시 강릉~원주 고속 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로 생긴 폐철도 부지에 조성 중인 거리 공원.
‘월화거리’라는 지명은 강릉 지역의 고유 설화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남대천 옆 연화봉 반석 위에 정자가 있었는데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의 아버지인 무월랑의 ‘월’자와 어머니 연화 부인의 ‘화’자를 따서 ‘월화정(月花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현재는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웠으며, 복원된 월화정이 남아 있다.
2014년 4월 강릉~원주 고속 철도 도심 구간[강릉시 교동 강릉역~노암동 부흥 마을]의 지하화가 결정되었다.
이 구간은 교동, 중앙동, 옥천동, 강남동 등 4개 지역을 관통하는 길이 2.6㎞, 폭 30m로 면적은 약 5만여㎡에 이른다.
그동안 이 부지의 활용 방안을 두고 공원, 도로, 주차장 등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강릉시는 2014년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그간 쇠퇴화가 진행되던 구도심 지역의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폐철도 부지를 대상으로 월화거리를 조성하기로 하였다.
월화거리 조성 사업은 2016년부터 시작되어 2단계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다.
1단계 사업은 강릉시 교동 강릉역에서 노암동 부흥 마을에 이르는 지역을
8개의 사업 구간으로 구성해 ‘말 나눔터 공원’, ‘숲길’,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생활 문화 광장 및 전망대’,
‘철도 보도 육교’, ‘물놀이 시설, 노암 터널’, ‘월화정 숲길’ 등으로 조성되었다.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등에는 89개의 풍물 상점도 문을 열었다.
무얼 먹을까?...중앙시장 內를 방황한다.
고민하다 결국엔 광덕 식당...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강릉시 용강동에 위치한다.
국보로 지정된 객사문과 보물로 지정된 칠사당이 관아 경내에 남아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1994년 사적 제388호로 지정됐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중수를 거쳐서 동헌과 객사를 비롯하여 총 83칸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거의 모두 헐렸고 지금은 강릉 객사문과 칠사당만이 제자리에 남아 있다.
이 외에도 관아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강릉시 남산에 위치한 오성정, 금산의 월화정,
경포의 방해정 등이 관아 건물들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정자들은 조선시대에 강릉도호부 관아의 건물들 중 일부를 헐었을 때 그 자재들을 가져와 새로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임영관을 헐고 강릉보통학교를 세웠다.
1975년 9월에 강릉보통학교 자리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섰다가,
강릉경찰서가 포남동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공터로 남아 있었다.
이 공터에 강릉시청사를 신축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에
관아 유구가 발굴되면서 공사가 중단되고 발굴조사가 행해졌다.
1993년 발굴조사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점심 식사 후 모임 장소 ... 칠사당 앞 ... (12:56)
칠사당(七事堂)
강릉대도호부 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동헌(東軒) 건물이다.
현재 강릉시 명주동에 위치한다. 1971년 12월 16일 강릉특별자치도 유형문화대 제7호로 지정되었다.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중건하고,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이후 1867년(고종 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부사 조명하가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부터 1958년까지 군수나 시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강릉대도호부 동헌이었던 칠사당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관아 건물이 있었다.
내아(內衙) : 지방관 및 지방관 가족생활공간 (칠사당 동쪽 소재)
문루(門樓) : 강릉 대도호부 동헌 정문 (칠사당 남쪽 소재)
군관청(軍官廳) : 군관 업무 공간 (문루 앞 소재)
부사(府司) : 호장(戶長) 공간 (칠사당 동쪽 소재)
질청[作廳] : 아전(衙前) 공간 (부사 남쪽 소재)
향청(鄕廳) : 유향소(留鄕所) 공간 (칠사당 서남쪽 소재)
임영관(臨瀛館) : 강릉 객사 (칠사당 동북쪽 소재)
시나미 명주 골목
‘시나미’는 강원도 사투리로 ‘천천히’ ‘명주(溟州)’는 신라시대부터 불린
강릉의 옛 지명으로 ‘바다와 가까운 아늑한 땅’이란 뜻이다.
명주동·남문동 일대를 아우르는 명주동은 강릉 시민들 사이에서 아날로그 골목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시나미 명주 골목’은 ‘시간도, 풍경도 천천히 흐르는 명주 골목’이라는 뜻이다.
과거 명주동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릉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에는 적산가옥 등 일본식 건축물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기도 했다.
지금의 경강로가 생기기 전 가구 판매점들이 밀집해 가구골목으로 유명했던 동네는
2000년대 초 강릉시청 청사가 홍제동으로 이전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노암동 魯巖洞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속하는 법정동.
강릉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남대천의 오른쪽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 입암동·청량동·신석동, 서쪽으로 내곡동, 남쪽으로 장현동과 박월동, 북쪽으로 명주동과 접해 있다.
강릉시의 중심부와 접해 있어 강릉 시내로 접근하기는 편리하다.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다.
노암동에는 냇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냇물이 중국 노나라의 냇물과 같다 하여 ‘노간리(魯澗里)’ 또는 ‘노가니’라고 불렀다.
또는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 임금이 서쪽[서울]에서 동쪽[영월]으로 귀양을 갔는데, 그 이름을 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노’ 자가 들어간 이름은 대개 쫓겨난 조선 임금 단종을 추모하여 붙였거나,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너레바우가 있어서 너레바웃골이라고도 하였으며 노간리와 너레바웃골을 합하여 노암동이 되었다.
노암동은 본래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아죽리를 병합하여 노암리라 하고
성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에는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어 노암동으로 고쳤다.
1955년 9월 1일 성덕면에서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행정동이 노암동으로 되었고,
법정동으로는 노암동과 유산동으로 구분하여 관리되다가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폐합 정책에 따라 기존의 장현동, 월호평동과 함께 강남동으로 되었다.
노암동 지역은 강릉시 중심부의 남대천 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매년 강릉단오제가 개최되는 시기에 가장 붐빈다.
2004년 단오문화관이 개관되어 노암동은 단오제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단오문화관에는 상설전시장이 있고, 전통문화교실과 전통민속 정기공연이 개최된다.
단오 개최 시 단오문화관을 중심으로 한 남대천 주변에서 다양한 전통공원화 체험이벤트가 개최되고, 난장들이 운영된다.
단오공원... (13:23)
단오공원 端午公園
세계 무형 유산 걸작 단오제의 상징 공간으로 조성한 시민 공원.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강릉시는 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에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단오제기간 중에는 축제, 휴게, 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오 문화관 앞 구(舊) 노암 공설 운동장 공터를 단오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총 8,290㎡ 부지에 잔디 광장 3,300㎡, 도심 숲, 벤치와 쉼터, 산책로, 이벤트 광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강릉의 대표 수종인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관목을 심어 자연 생태 학습장을 조성하였다.
단오공원은 단오제의 주요 행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평소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모산봉 입구에서...(13:47)
모산봉 母山峰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있는 산봉우리.
모산봉은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이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m이다.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또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모산봉은 2005년 강남동 향우회 등 지역 단체들이 복원 운동에 나서 현재 봉두의 높이가 105m로 높아졌다.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강릉 지역에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여 이 지역 명산인 모산봉의 봉두를 인위적으로 낮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근거해 옛 정기를 되찾고자 지역 주민들이 복원운동을 벌인 것이다.
강릉 남대천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강릉을 떠받혀주는 네 개의 기둥산 중 하나이다
모산봉은 어머니의 품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고 한다.
봉우리 생김새가 노적가리같다 하여 노적봉이라 하기도 하고,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 같다고 밥봉이라고도 하며,
강릉에 인재가 많이 난다고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릉에는 네 기둥산(四柱山)이 강릉을 떠 받치고 있어 강릉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고,
이 네 개의 기둥산은 강릉을 중심으로 마름모꼴로 버티고 있으면서 터를 단단하게 다진 것이다,
남대천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2개, 북쪽 2개를 합해서 네 개의 기둥산이 있다.
먼저 유천동에 있는 땅재봉은 옛날 이 봉에 당을 지어놓고 당재를 올렸다고
당재봉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땅재봉으로 되었다고 하며,
저동에 있는 시루봉은 생김새가 시루처럼 생겼다고 시루봉이라 하고,
두산동의 월대산은 초저녁 보름달이 떴을 때 동헌(東軒)인 칠사당에서 이 달을 바라보면
마치 산 위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월대산이라고 한다.
모산봉은 강릉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떠 받쳐주는 봉우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강릉의 안산이 되고, 그러므로 모산봉을 보고 집을 지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높은 모산봉 정상으로 힘차게 오른다.
후미에서 수고하신 틸리초님...
모산봉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출발...(14:13)
숲 속의 하이에나... 테라씨...
장현 저수지 도착...(14:41)
회색빛에 잠긴 저수지...
장현저수지 長峴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지를 지나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현저수지는 관개 개선과 지목 변환 목적으로 1941년 11월에 착공하여 1947년 9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제방이 40m가량 붕괴되어 돌과 흙으로 다시 쌓았다.
2002년 12월 모두 71억 14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저수지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2004년 12월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환경부의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돼 생태복원사업이 이루어진 강릉 장현저수지
시는 지난 2020년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에 선정되자 사업비 36억여 원을 들여
장현동 462번지 일대 저수지 둘레 1.91㎞에 생태복원 사업을 실시했다.
시는 농어촌공사에 공사를 위탁해 온실가스 감축과 수질개선 등을 위한
생태습지 2개소와 녹조 방지장치 3개소, 수질정화여울 1개소, 접촉산화수로 135m를 조성했다.
특히 저수지 둘레를 자연친화적으로 조성,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인도교를 설치해 연결하는 등 친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저수지 둘레길을 걸어 간다.
오래된 자재(資材)들을 모아 시공간(時空間)을 쌓고 있는 저수지 옆 고건축물...
관동대 드론 실습장 근처를 지나면서...
바우길 & 해파랑길 리본
팝콘을 튀겨 놓은 듯... 아카시아 꽃잎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아 놓았다.
신록 (新綠)의 옷으로 갈아 입은 거리의 악사...
겨울...벌거벗은 거리의 악사
수정님...
보호수( 保護樹)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중요한 나무. 일반적으로 수령이 오래되거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이 속한다.
마을의 입구나 관아. 면소재지등의 앞에 있는 정자나무나, 제사나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서낭나무와 당산나무는 일반적으로 오래됐기 때문에 보호수인 경우가 많다.
나무가 고사하면 해제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수 중에서 특히 가치가 있는 나무는 시도자연유산이나 시도기념물, 궁극적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승격지정되고는 한다.
보호수는 산림청 관할이지만, 기념물급부터는 국가유산청 관할로 넘어가는데,
나무가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생물학적 희소성을 국가유산으로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무 지팡이 삼총사...
왕고개 근처에서 잠시 쉼을...
도로의 고인 물에 비친 신호등 불빛...
양귀비 꽃
양귀비꽃의 빛깔은 선명한 주홍빛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치 화려하다.
길고 가느다란 줄기에 얹힌 둥글고 커다란 꽃잎이 바람이 불 적마다
나비가 날개를 파르르 떨 듯 흔들리는 모습은 자못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양귀비꽃은 풍문으로만 전해졌다.
어느 시골 주민이 그저 꽃이 예뻐서 길렀는데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경찰서에 붙잡혀 갔다더라,
아편의 원료가 되는 꽃이 있다더라, 하는 다소 무서운(?) 내용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시청이나 구청에서 조성하는 화단에 버젓이 양귀비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땐 매우 혼란스러웠다. 양귀비꽃은 아편의 재료인데 공공기관에서 기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알고 보니 공공기관 화단에서 피는 양귀비는 양귀비가 아니라 개양귀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약 성분이 없는 관상용 양귀비를 ‘개양귀비’라고 부르는데,
옛날 사람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원래와 다른 것의 이름을 지을 때 접두사로 ‘개’자를 붙였다.
옛날 사람들이 진짜와 가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가르는 기준은 참 명료했다.
바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 중에 대표적으로 ‘개꽃’이 있다. 철쭉을 가리키는데
진달래에 참꽃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철쭉을 개꽃이라 하대한 이유는
진달래는 먹어도 좋지만 철쭉은 독성 때문에 먹을 수 없어서였다.
개양귀비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름이 지어졌을 것이다.
오리지널인 양귀비꽃처럼 아편 성분은 없지만 양귀비꽃만큼 아름답고 예쁘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처럼 미모가 빼어난 꽃의 이름이 ‘개양귀비’라니 어감이 좋진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개양귀비에는 다른 예쁜 이름이 있다. 바로 ‘우미인초(虞美人草)’이다.
양귀비꽃이 당 현종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에서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미인은 초나라의 영웅, 항우가 사랑한 여인이다.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쫓기다 사방으로 포위됐을 때의 일이다. 항우는 어떻게든 적진을 뚫고 나간다지만 문제는 우미인이었다.
항우가 마지막 술잔을 들며 우미인을 걱정하는 시를 읊자 우미인은 그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답가를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훗날 우미인의 무덤에는 예쁘고 가녀린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우미인초라고 불렀다.
양귀비꽃과 우미인초.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들의 이름을 따온 유래를 통해 이 꽃들이 얼마나 어여쁜 꽃인지 알 수 있는데
양귀비꽃의 꽃말은 ‘위안’과 ‘망각’, 우미인초의 꽃말은 ‘속절없는 사랑’이다. 두 미인에 얽힌 사연에 어울리는 꽃말이다.
한편으로는 사랑의 속성을 품은 듯도 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동안에는 위안을 얻고 세상살이 시름을 잊을 수 있지만, 인연이 다하면 속절없어지는 바로 그 사랑, 말이다.
바우길에서 가장 긴 굴산사 가는 길... 열심히 걸어 학산 오독떼기 도착...(16:10)
학산 오독떼기
학산마을은 민요 「학산오독떼기」로 유명하다.
1985년 강원도 무형 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학산오독떼기’는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농업 노동요로서 강릉의 토속민요를 대표하는 곡이다.
노래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부터 즐겨 불렀다고 하며
조선왕조실록 에는 세조가 동해안 일대를 둘러보면서
오독떼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노래하게 하고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독떼기는 다섯 번 꺾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 한다는 설과
오독떼기가 동서남북중의 오독을 떼기(개척)한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이고 ‘독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
신라 때 화랑들이 강릉지방을 순력하면서 풍류도를 닦을 때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내려왔다는 설 등이 있다.
오독떼기는 벼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강릉 지방을 대표하는 농사노래다.
한두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사람이 소리의 후반을 제창으로 이어받는 메기고 다는 방식으로 노래를 부른다.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이 뒷소리가 이어받을 가사의 첫 글자의 운을 떼어주는 가창 방식도 특이한데,
강릉 지방을 벗어나면 남쪽으로는 동해시 일부, 북쪽으로는 양양군 일부에서도 비슷한 가락의 오독떼기가 불려졌다.
학산오독떼기는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제1회(1985. 원주)우수상, 제2회(1984. 강릉)우수상,
제5회(1987. 홍천) 종합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학산리에서는 학산농요보존회를 만들어
사라져 가는 전통 농요 보존을 위하여 매년 경창대회 개최 등 계승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verybody Hurts -R.E.M When your day is long 하루가 길고 And the night, the night is yours alone 밤은 당신 혼자만의 것만 같을 때 When you're sure you've had enough 이 삶을 충분히 겪었다고 확신할 때 Of this life, well hang on 그럴 땐 참고 견뎌요 Don't let yourself go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Cause everybody cries 세상 사람들 모두 울기도 하고 And everybody hurts sometimes 모두가 가끔은 아파도 해요 Sometimes everything is wrong 가끔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을 때 Now it's time to sing along 이제 함께 노래할 시간이에요 When your day is night alone (Hold on, hold on) 당신의 하루가 그냥 어두운 밤일 때 (참고 견뎌요, 참고 견뎌요) If you feel like letting go (Hold on) 당신이 신경쓰지 않게 된다해도 (참고 견뎌요) If you think you've had too much 이 삶을 충분히 겪었다고 느낀다 해도 Of this life, well hang on 그럴 땐 참고 견뎌요 'Cause everybody hurts 모두가 아파하며 살아요 Take comfort in your friends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찾아요 Everybody hurts 모두가 아파하며 살아요 Don't throw your hand, oh no 손을 놓지 마세요, 오, 아니요 Don't throw your hand 손을 놓지 마세요 If you feel like you're alone 당신이 혼자라고 느낀다 해도 No, no, no, you are not alone 아니, 아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If you're on your own in this life 이 삶에서 혼자라면 The days and nights are long 낮과 밤이 길기만 하죠 When you think you've had too much 이 삶에 지쳐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Of this life to hang on 참고 견뎌요 Well, everybody hurts sometimes 모두가 가끔은 아파하며 살아요 Everybody cries 모두가 울기도 해요 And everybody hurts sometimes 모두가 가끔은 아파하죠 And everybody hurts sometimes 모두가 가끔은 아파하죠 So hold on, hold on 그러니 참고 견뎌, 참고 견뎌요 Hold on, hold on, hold on 참고 견뎌, 참고 견뎌요 Hold on, hold on, hold on 참고 견뎌, 참고 견뎌요 Everybody hurts 모두가 아파하죠 No, no, no, no you are not alone 아니, 아니, 아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R.E.M은 1980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리드보컬), 피터 벅(Peter Buck/기타), 마이크 밀스(Mike Mills/베이스 기타), 빌 베리(Bill Berry/드럼 & 퍼커션)에 의해 결성된 얼터너티브 락밴드다. 그들은198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대학가등에서 활동하며 인디 신에서 젊은이들의 리더로 활동하였다. 그후1987년에 발표된 5집 앨범 [Document]에 수록된 "The One I Love"가 빌보드 챠트 톱10에 진입하며 오버 그라운드로 진입하게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 발표된앨범[Automatic For The People]에서 Everybody Hurts"를 비롯하여 "Drive" "Man On The Moon"등이 연달아 힛트하며 그들의 인지도를 전세계로 넓혔으며, 2007년 "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었다. R.E.M은 "Rapid Eye Movement"의 약자로 잠잘때 움직이는 안구를 뜻하며 이는 의학적으로 사람들이 "꿈을 꾸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구로 차올랐다.”고 회고했으며, 이렇게 탄생한 곡의 가사는 난해한 다른 음원들과 달리 매우 쉽고 명확했고, 이 곡에서 만큼은 매우 정확하게 들리는데, 메시지를 정확히 전하겠다는 의도라 생각한 이들의 의도대로 많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효과를 낳았고, 지난 1995년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이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 '사마리아인들'(The Samaritans)의 자살방지 캠페인에 'Everybody hurts'의 가사 전문이 쓰였고, 911 테러사건 직후에는 다양한 행사에서 들려지며 많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이후 영국 뮤지션들에 의해 자선 싱글로 커버된 이 곡은 발매 이틀 만에 20만장 이상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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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은 푸르고 싱싱하고 너무 씩씩한데~
하아~아프시고 마음이 허전하셨나요~?
노래가 너무 슬퍼요~
모~아무튼,,,
살다보니 제가 걷자님의 카메라에
뒷 모습이 잡히다니~
도대체 언제 뒤에서 담으셨을까 궁금해져요~ㅋ
분명 제 옆을 지나셨을텐데
호기심천국 테라씨는
어딘가에 정신을 팔고 있었겠죠~?ㅋ
또 아무튼,,
걷자님 많이 반가웠구요
더 건강해지시길 응원합니다~!^^
걷자님~~~너무 오랫만이세요 ~
반갑습니다 ㅎ
비가 내려 나무들이 더 푸르고 촉촉한 더 예쁜 날이네요 ^^
저도 촉촉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춘천 청평사를 돌아봤습니다
마침 오늘 국립춘천박물관에서 한송사 석조보살상도 만났습니다 ^^
그 자태가 어찌나 기품이 있던지요,,,
오랫만에 걷자님의후기
반가운 마음으로 읽습니다^^
다음 7구간에서 뵐께요~걷자님
감사합니다 ^^
즐거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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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빨리 나으시고..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