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火)저녁-明洞로얄호텔3 F서 회동한'大商포럼'에서
50回- 이만수감독이 발표한 내용를 요약 게재함을 諒知 바랍니다.
45동안 Field 에서 야구만 하다가 강연까지 하게된 李동문의 저력을 였볼수 있었습니다
이만수 감독이 겪은 야구人生 STORY~
이만수동문은 지난 40년넘께 일기를 쓰고있다 했으며 特히'야구일지'는 高校 1년차부터
지금까지 걸러지않고 쓰오고 있기때문에 FORUM에서 발표할 용기가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오래전에 美國으로 건너간후 (시카고/화이트삭스시절)
그당시 흑인이 어떻게 美國대통령이 될수있을까?우선 추적해보니-어두운시절임에도
빈민촌에서 헌신적인 생활을 해오면서 유년시절부터 '오바마'는 꿈이 있었다고 하였고
젊을때부터 자기가 세운 꿈을위해 최선 노력 했기때문에 대통령 입지를 구축했다 한다.
이만수감독은 人生살이에서 자기나름 의지를 설정 3번의 꿈을 키우길 노력했다 하였다
14살 선수 입문시절엔-하루4시간 자고 10년을 내다봤다고 하였고
야구 첫스승인 정동진감독을 만난뒤에 땡땡이를 치다가 적발되었을때~정동진감독(왈)
스승인 내잘못으로 너희가 해이해 졌으므로 너희가 야구방망이로 나를 쳐라! 하였기에
이감독이 엉겹결에 시키는데로 스승을 내려 쳤드니만-엉덩이에 피가나고 찢어 졌드라!
나중에 목욕탕에 가서 볼수있게됨에 살펴보니 붉게 터진자리가 검정색으로 변하였다고-
그러든 어느날 정동진감독에게 뜽금스럽게 제안을 하였답니다.그 사연인즉슨 일정기간
한국에서 활약한다음 야구의나라 미국에 진출-메이즈리그를 겨냥하겠다고 하였답니다.
세월이 흘러 우여 곡절끝에 나이 40에 三星에서 퇴출되어 홀로될 계기가 되서-플로리다
야구의나라 美國에 진출-메이즈리그에 젓가락 놓을때가 나이41세라-그동안 말로만듣던
이역만리 외국생활에서 남몰래 흘린눈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한편으로는
코리안/베이브루스를 꿈꾸며 USA에 당도했지만-주변 모든것이 철저히 상업mind로무장
되어있었기 때문에-야구경기를 관람해주는 관중이없으면 선수의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하였드랬습니다.
어떨때는 3루코치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제풀에 주저앉기도 하였고 마이너리그 또
메이즈리그 까지 안목을 넓힐수있는 계기가됨에,한번 해볼수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답니다.
어느날 시범타구를 펜스에 맞치뒤에,자신감이 동반되어10개 시구중 7개를 홈런쳤지요
그래서 소문이 꼬리를 달게되어 나중엔 트리폴A팀에서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었다고 함.
또 한세월 보내면서 미국에서의 정착은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귀국행을 결심하였다!
돌이켜보게되면 당초에 불가능한것으로 여겨졌지만 어떤면에서보면 (게리워드가 추천)
메이즈리그 코취 데뷰로 어떤의미에선 '이만수'의 꿈은 나름데로 이룬셈이질 않는가요?
그러다가 어느사이에 (2006) 시즌을 마치고 귀국후 다시 10년앞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그시절 大商人으로 출발 國內外를 들락거리는 동안 야구를 통해 삶의질을 높이게되었고
2014 시즌이후부터는~사실상 퇴임한샘이지만 현재도 달려가는 과정으로 생각되어 45年
받은 야구사랑을~소중히 섬겨 기회닿는데로 日本 라오스등지에서도 아이들에게 야구를
전수할수 있음은 제人生의 크다란 사명감(責務)라고 생각하여 최선노력 경주코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