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말이야
김혜숙
눈이 켜켜이 쌓이면
내 근심도 켜켜이 쌓이더란 말이지
전장戰場같은 저 눈발 속으로 달려나가
일터로의 무사 안착을 해야할 가족 걱정
웬수 같은 눈 때문에 노인정에도 못 나가
재미도 없는 티브이 앞에 쭈그려 앉아
긴~
긴
하루를 만지작거릴 뿐일 엄마 걱정
장 보러 갈 걱정
채소 값 오를 걱정
먹이 찾아 헤매야 할
노루 사슴 다람쥐 걱정
어젯밤 밤새 울던
아파트 단지 화단의 어린 고양이 걱정
그러다
문득
저 눈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아직은 낯설다 느껴졌던 그 근심까지
슬금
슬금
내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지면
아이고 쓰라려,
미처 녹지 않은
눈雪물이
내 눈에 먼저
녹아 흐르더란 말이지
눈 앞이 자꾸
뿌ㅡ해지더란 말이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넘나 좋은
김혜숙
뜨거운 도다리탕 한 뚝배기 먹으니
겨울이란 놈이 백기를 든다
나무껍질마냥 버석거리던 얼굴에
맑은 햇살 톡톡 두드려 펴바르니
비로소 광채가 흐른다
오늘 아침엔
아랫녘에서 보내온 고로쇠 물
한 컵 마시니
몸 구석구석
수액이 흘러들어
정맥마다 푸른 힘줄들이
파도를 탄다
돌아온 입맛과
벗어버린 무거운 외투
목선을 드러내어 느껴보는
훈풍의 간지럼과 향긋한 내음
꽃물들인 옷감들 하늘거리는
화사한 실루엣의 이 거리
더 무엇을 바라리
이 계절 한가운데에 서서,
넘나 좋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