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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0일(일).
천은사 상생의길 / 화엄사 홍매화 / 산수유마을 : 전남 구례군.
▣탐방코스 : 천은사주차장-청류계곡-천은사-수홍루-보듬길-누림길-천은사주차장.
▣탐방시작 : 천은사주차장 10시 02분.
▣탐방종료 : 천은사주차장 11시 11분.
▣전체거리 : 약 3.87km. .
▣전체시간 : 01시간 08분.
▣운동시간 : 01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누 구 랑 : KJ산악회 따라서...
10 : 02 천은사 상생의 길 출발.
10 : 05 나눔길 입구.
10 : 14 청류계곡.
10 : 25 천은사.
11 : 11 천은사주차장.
▲ 10시 02분 : 전남 구례군 천은사 주차장 출발.
▲ 천은사(泉隱寺)입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8년(흥덕왕 3)에 덕운대사가 창건했는데 극락보전 앞뜰에
있던 샘물이 감로와 같다고 하여 감로사라고 했다. 875년(헌강왕 1) 도선대사가 중축한 이래 여러 차례 중건. 중수했다.
숙종때..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 샘의 물이 자취를 감추자 절이름을 "샘이 숨었다"라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 천은사 일주문..
현판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양명학자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이광사는 추사 김정희와 얽힌 일화로 유명한데.. 원교가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편액을 쓴 후, 이를 본 추사 김정희가
촌스럽다고 떼어 내라고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하게 했다. 제주도 귀양을 마치고 돌아온 추사는 다시 대흥사에 들러
"이광사의 글은 부족함이 없는 명필" 이라 말하고 자신이 쓴 현판을 내리고 창고에 있던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게 했다.
▲ 천은사는 tvN에서 2018년 24부작으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세 코스로 구성된 "천은사 상생의 길" 중에 먼저.. 나눔길을 역순으로 걷고 천은사로 내려 올 것이다.
▲ 조금후에 만나게 될.. 천은사 수홍루.
▲ 왼쪽은 명상쉼터로 가는 데크길.. 직진은 천은사로 이어지는 나눔길..
▲ 명상쉼터에는.. 중년의 부부가 선점을 하고 있다.
▲ 청류계곡을 건너는 목교..
▲ 천은골 청류계곡..
▲ 수령 300년 이상이라는 천은사 보호수..
▲ 천은사 관음전.
▲ 천은사 관음전의 천수천안십일면 관세음보살상..
중생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무엇이든 보고 들으며.. 어느 곳에든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베푼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 천은사 관음전 뒷쪽 옹벽에 서옹스님의 휘호가 있는 "수처작주"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당나라 임제선사의 임제록에 나오는 말로
"가는 곳마다 주체가 되라, 지금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세계다"..라는 의미다..
▲ 천은사 팔상전.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이머... 1774년에 지어졌다.
▲ 천은사 팔상전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다.
▲ 천은사 포대화상.
포대화상이 앉아 있는 바위는.. 멧돼지가 바위로 변하여 마을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복돼지 바위다.
포대화상의 본명은 "계차"로 항상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 불렸고, 배가 나오고 대머리가 특징이다.
▲ 천은사 극락보전.
천은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어나..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가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 극락보전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서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오른쪽은 관세음보살, 왼쪽은 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 편액은 일주문 편액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 천은사 회승당.
단청이 없고, 퇴색된 나무 벽으로 되어 옛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 회승당 툇마루 한켠에 자리 잡은 범종에는 한국전쟁 때 생긴 조그마한 총알자국이 있다는데 확인을 못하였다.
▲ 천은사 명부전에는 주존으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 천은사 보제루.
"보제"는... "모든 중생을 두루 제도한다"라는 뜻이다.
사찰의 중심 불전 맞은편에 있어, 법요식 같은 행사 장소 또는 강당의 역할을 한다.
▲ 천은사 보제루 내부.
"무량수각"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전국 사찰에 이 글씨체의 모각 편액이 많이 걸려 있다.
무량수각은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의 다른 이름이다.
▲ 천은사 보제루 현판.
원교 이광사의 제자로 조선 후기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의 글씨다.
창암 선생은 19세기에 붓하나로 호남서단을 평정한 인물이다.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 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벼루를
세 개 구멍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아 없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 구눌 조광진(1772~1840)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손꼽히는데..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서예를 연마했다고 한다.
▲ 천은사 범종각.
▲ 천은사 천왕문으로 올라가는 삼도보계다.
"삼도보계"란 세 줄짜리 보석 계단이란 뜻으로... 석가모니가 도리천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마야부인)을 뵈러 올라가 석 달
동안 설법을 한 후, 하늘에서 사다리같이 생긴 세 줄짜리 보석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이 때 양옆에 제석천과 범천이 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불국사.. 범어사.. 화엄사 등에 삼도보계를 상징하는 삼도계단이 있는 것이다.
▲ 천은사 수홍루.."수홍(垂虹)" 이란...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다"라는 의미다.
피안교 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2층 누각형태로 세워진 수홍루는 조선 영조 때 건물이다. 많은 분들이 여름과 가을에 수홍루 뒷편의 다리에서 수홍루와 천은제를 함께 찍는 인생샷을 남기는 곳이다. 특히, 일몰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 수홍루에서 바라본 천은사 저수지. 아래쪽에 무언가 보여서..
▲ 물을 다스리는 신장인가 보다..
▲ 피안교 위에 세워진 수홍루는 조선 영조 때 건물이다.
▲ 수홍루 지붕을 잘라버린 인증샷...ㅠㅠㅠ..ㅎㅎ~
많은 사람들이 여름과 가을에 수홍루 뒷편의 다리에서 수홍루와 천은저수지를 함께 찍는 인생샷을 남기는 곳이라고 해서..
젊은이에게 부탁하였더니.. 아쉽게도 지붕을 날려 버렸다... 바로 확인을 해보고 다시 찍어 달라할걸~..ㅎㅎ
사진의 주제는 아름다운 누각인 수홍루이고 나는 수홍루의 손님이다..
▲ 수홍루에서 시계역순으로 가기위해.. 매점 옆으로 간다.
▲ 천은사 상생의 길.. 두번째 구간 보듬길이다.
2020년 12월에 천은사..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전라남도 등 8개 관계기관의 협력 끝에 천은사 문화재입장료 징수 폐지를
기념하고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 3개 구간에 총 3.3km로 조성
한 산책로를 말한다. 아름다운 일이다.
▲ 그 전에는 천은사로 들어오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어서 천은사 탐방객과 노고단 등산객에게도 "문화유산지구 관람료"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모두 폐지되어 무료 입장이다. 이 곳 문화재 관람료를 가지고 대중과 마찰이 생긴 내용의 소재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서 다뤄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하는 곳이다.
▲ 천은사 산문 바깥 쪽에는 방장산 천은사로 되어 있고.. 여기서 부터는 상생의 길중에 세번째 구간인 "누림길" 이다.
예로부터 지리산은 방장산으로도 불렸다. '방장'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장(丈, 3.3m) 크기의 정사각형 방이란 뜻으로
덕이 높은 승려의 처소나 큰 수행 도량의 최고 어른을 이르기도 한다. 천은사 산문의 앞·뒷면의 편액은 호남 서예가
학정 이돈흥(1947~2020) 선생의 글씨다. 학정 선생은 송곡 안규동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고,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송곡 안규동으로 이어지는 호남 서예를 대표하는 21세기 한국 10대 서예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히고 있다.
▲ 산문 안쪽에는 천은사 이름 앞에는항상 따라붙는 수식어 "남방제일선찰"이라 되어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남방제일선찰"로 지정된 게 그 유래다.
▲ 다시. 천은사 일주문을 통과..
▲ 2022년 12월에 보물로 지정된 구례 천은사일주문은 하동 쌍계사의 일주문과 유사한 모양이며, 그 모습이 화려하여
"아름다운 일주문" 으로 평이 나 있다. 일주문의 문지방이 목재가 아닌 석재로 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찰 중 유일하다.
▲ 천은사 부도탑..
▲ 천은사 감로천.. 그 옛날의 감로수라 생각하고..한바가지 시원하게 마시고...
버스에 승차하여 화엄사 홍매화를 만나러 간다.
▲ 11시 30분에 천은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11시 45분에 화엄사입구 회차장에 도착..
▲ 11시 45분 : 화엄사입구 회차장에 도착하니..
아래쪽 주차장까지 태워다 주는 무료셔틀버스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다.
▲ 화엄사 일주문인데.. 양쪽으로 담장이 있는게 특이하지만.. 사연이 있다.
편액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 광(珖)의 글씨로.. 지리산화엄사는.. "지혜가 뛰어난 산속에 화엄경을 모신 사찰" 이다.
임진왜란 때 주지 설홍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이 구례의 길목 석주진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부 전사하였고..
왜군이 화엄사 전각을 모두 불태웠다. 그래서 일주문에 대문과 담장을 만들어 중생에게는 문을 활짝 열고..
관리들의 수탈과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위해 문을 굳게 닫았다.
▲ 화엄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의 대문도 성문처럼 굳게 만들어 놓았다..
▲ 화엄사 홍매화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상춘객들로 절집 마당이 가득하다.
문화재청은 2024년 1월 24일 대한불교조계종 지리산 대화엄사의 홍매화 1주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지정된 홍매화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옆에 있는홍매화 사진 찍기 대회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올해 4회 대회는 2월 25일부터 3월 23일까지 홍매화와 들매화 사진 콘테스트가 있다.
수상작 발표는 4월 23일 오전 9시에 화엄사 홈페이지와 BBS불교방송에서 발표하고 시상식은 부처님 오신날에 발표한다..
▲ 화엄사 초입의 오른쪽에 분홍에 가까운색의 홍매화가 있다...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그 홍매화가 아니다.
▲ 이 홍매화는... 분홍에 가까운 색이다.
▲ 화엄사 3지혜.. 첫번째는 불견이다 : 남의 잘못을 보려 하지 말라.
▲ 화엄사 3지혜.. 두번째는 불문이다 : 남의 말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
▲ 화엄사 3지혜.. 세번째는 불언이다 : 남을 비방 하지 말라.
▲ 화엄사 벽암국일도대선사비... 구례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대사의 탑비다.
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했었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도 지었다고 한다.
▲ 화엄사 금강문..
금강역사와 문수.. 보현동자가 있는 사찰의 대문이다.
▲ 좌측의 "밀적금강" 은 금강저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으로.. 항상 입을 닫고 "훔"소리를 낸다고 하여
"훔금강역사"라고도 한다...우측의 "보현동자"는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실천과 자비의
상징이다..
▲ 좌측의 "문수동자"는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사자를 타고 있으며.. 지혜의 상징이다.
우측의 "나라연금강" 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힘이 코끼리 100만배로 항상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낸다고 하여
"아금강역사" 라고도 한다.
▲ 화엄사 중흥비와 영세불망비.
▲화엄사 천왕문.
금강문을 지나서 바로 만나는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신곳이며 건물의 배치는 약간 비틀어져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찰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되었다.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은
극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특히 머리장식이 화려하고, 목의 머플러는 거의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 화엄사 사자문. 스님들의 수행처인데 열려있다.
▲ 화엄사 법고루와 당간지주.
▲ 화엄사 보제루.
▲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과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였던 사찰이다.
▲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부처님은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므로 "각행원만불"이라하여 "각황(覺皇)" 이라고 한다.
숙종 임금이 "각황" 이라는 이름을 주고.. 형조참판 이진휴의 글씨라고 한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과 석등(국보 제12호).. 둘다 국보급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의상대사가 조성하였으며, 높이가 6.36m로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크다.
각황전과 조화를 위해 크게 조성했으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밝혀 지혜로 이끈 부처님의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현재는
오염물제거, 파손부재 접합, 복원 등 작업을 위해 해체하여 보존처리 중으로 2025년 6월 이후에나 볼수 있다고 한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은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으로 단청은 없지만,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며, 외부는 중층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인
통층 구조다. 법주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불전중의 하나다.
각황전이 있기전 통일신라 때는 4.6m나되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둘러 깨달음
의 세계가 장엄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숙종 때 계파대사가 4년에 걸쳐 중층건물로 재건하였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불단.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다보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적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저 있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 내부 불단.
▲ 적멸보궁 가는길.. 각황전 왼쪽으로 올라간다.
▲ 108계단을 오르다가 뒤 돌아본 각황전.
▲ 108계단에서 올려다본 명품송.
▲ 견성전(적멸보궁) 가는길의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석등.
▲ 구례 화엄사 견성전(적멸보궁).
▲ 적멸보궁.
부처님 사리탑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고..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다.
▲ 견성전(적멸보궁)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 확대해본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
4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서 희노애락 표정의 4마리의 사자가 머리 위에 탑을 이고 있고, 탑안에는 합장을 하고있는
어머니상이 조각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높이 5.5m의 불사리 공양탑이다.
▲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효대(孝臺)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 석등..
연기조사가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탑을 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을 조각한 석등 조각상이다.
▲ 다시 108계단을 내려와서..
▲ 각황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마당.
신라말 후삼국시기에 화엄종은 해인사 중심의 북악파(왕건)와 화엄사 중심의 남악파(견훤)로 나뉘었는데, 견훤의 패배로
화엄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신도들은 수행 중심의 각황전이 아닌 예불 중심의 대웅전으로 오게 된다.
각황전과 대웅전이 한 사찰에 두개의 대법당이 공존하는 사찰이 되어.. 이러한 가람 배치를 통해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 드디어.. 문화재청이 2024년 1월 2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홍매화를 보려고 왔는데 10%도 안 핀것 같다.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화엄매라고도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꽃과 열매가 다른 재래종보다 작지만 꽃향기는 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과 향긋한 향기로 화엄사에서 인기있는 명물이라고 한다.
▲ 천연기념물 지정 공식명칭은 "화엄매" 이다..
아쉬움에 먼저 핀 화엄매 하나를 접사로 찍어 보았는데.. 잘 나온것 같다.
▲ 각황전을 배경으로..
▲ 다음주 17일(일)을 넘어서야 만개할것 같다..
▲ 발걸음이 쉽게 떼이지 않는 아쉬움에 만개 했을때의 모습을 다른 블로거님에 사진을 빌려 왔다.
▲ 화엄사 원통전..
▲ 화엄사 원통전 불단..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이 협시보살 없이 홀로 모셔져 있다.
▲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사자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감로수를 받들고 있고, 네모난 돌에는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다... 네 마리 사자의 얼굴에는 인간의 희, 노, 애, 락을 표현하고 있다. "4사자 감로탑" 으로도 불리운다.
▲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편액은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 광(珖)이 썼다.. 원래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신 법당을 말하는데..
이 곳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시므로 "대적광전" 이나 "대광명전" 이라고 썼어야 되는데.. 대웅전이라고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한다.
▲ 화엄사 대웅전의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국보 제336호).
중앙에 법신 비로자나불이 지권인을 하고 계시고, 우측에는 보신 노사나불이 우리나라에서 는 유일하게 보관을 쓰고 손을
펼친 설법인을 하고 계시며, 좌측에는 화신인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다. 위 삼신불은 1635년 청헌스님 등
18분의 스님이 조성하였으며, 위계에 맞추어 비로자나불은 3.8m, 노사나불은 3.7m, 석가모니불은 3.5m로 조성하였다.
후불탱화는 18세기 유명한 의겸스님이 참여해 조성하였다.
▲ 화엄사 대웅전 불전 내부..
▲ 화엄사 영전.
영전에는 의상대사, 자장율사, 도선요공선사, 대각국사 의천, 서산대사 등 역대조사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이다.
▲ 화엄사 영전에서 뒷쪽으로 화엄사의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들매화"를 보기위해 화엄사 산내 암자인 구층암으로 간다.
▲ 화엄사 구층암과 삼층석탑...
▲ 화엄사 들매화는 구층암 바로 뒤에 가는길이 이어진다.
▲ 화엄사 들매화는 2007년 10월 7일에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공식지정 되었다.
▲ 화엄사 들매화가 만개하고 연못에 만수가 되면 물에 비치는 반영도 아름다울것 같다.
▲ 돌아가는길에 구층암 뒤 툇마루에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죽은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썻다고 한다.
▲ 화엄사 삼전.. 화엄사 주지스님의 거소라고 한다.
▲ 정면의 각황전과 우측의 화엄사 대웅전을 보며.. 나가는데..
▲ 화엄사 대웅전앞 계단에서 스님의 설법을 경청하고 있다.. 단체복인걸 보니.. 탬플스테이 인가보다.
▲ 화엄사 화산학림.
▲ 화엄사 성보전(박물관)에 잠시 들른다..
▲ 화엄사 성보전 마당의 사자상.
돌사자상은 일본 도쿄 영친왕의 신축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의 사자를 모방하여
일본 조각가가 제작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화엄사에서 위탁관리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지리산 화엄사 탐방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선다.
▲ 화엄사 주차장까지 무료로 태워다주는 셔틀버스를 타면 5분이면 가지만.. 줄서기가 귀찮아서 걸어간다.. 약30분 예상..
▲ 화엄사 방장교에서 걷기 시작..
▲ 화엄석경관을 새로 조성하는 모양이다.
▲ 화엄사 부도탑.
▲ 화엄사 일주문.
안쪽(좌측사진)에는 "해동선종대가람"이라 되어 있고.. 바깥쪽(우측사진)에는 "지리산대화엄사"라 되어 있다.
▲ 화엄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 14시 00분 : 화엄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산수유축제장으로 가는길이 엄청 밀린다...
▲ 15시 03분 : 화엄사 주차장에서 산수유축제장까지 평일같으면 20여분이면 올거리인데 길이 막혀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내려서 걷기로 한다..
▲ 차와 상춘객들이 서로 엉켜 완전 북새통이다.
▲ 그런 와중에도 사브작사브작 걷다가 보니..
▲ 메인 축제행사장이 보인다.
▲ 어떤가수인지는 몰라도.. 산수유 같은 노랑치마 저고리가 이쁘다..
▲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본다..
사람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북적대는것 보다는 위에서 휘들러 보는게 상책이다.
▲ 지리산 종석대가 올려다 보이는 구례군 산동면의 마을 전체가 온통 노랑의 물결이다.
▲ 메인행사장쪽...
▲ 지나왔던 분수연못.. 완전 개화는 다음 주중쯤이 절정일것 같다..
▲ 칭얼대지 않고 혼자서도 잘 노는 착한 나도 인증샷 해주고...
▲ 사랑공원이라는 곳을 찾아서..
▲ 사랑공원의 산수유꽃 조형물..
▲ 사랑공원 제일 높은곳에 전망대가 있다..
▲ 언젠가 산행중에 만복대 아래 상위마을로 내려왔던 케케묵은 추억도 소환해 보고...
▲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를 이어가던 산행의 추억도..
▲ 방호정 입구..
▲ 방호정은..
일제강점기에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시로 달래는 시 모임을 위해 지리산 자락에 지은 작은 정자이다. 구례 운조루를
건립한 유이주의 후손 유형업이 1935년 지인들과 뜻을모아 세웠으며 방호산의 이름을 따 방호정이라 하였다.
▲ 구산공원에서 계곡의 물을 찾아 내려오는 거북이들을 보며 봄나들이를 마친다...
많은 수량의 사진과 긴글 보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