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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운 채 동시 입장하고 있다. 평창/공동취재사진
전쟁은 전후 재건의 출발점 “난리 통에도 살아남았는데 무언들 못하겠느냐”
삶과 나라가 힘들 때마다 한국인 일으켜 세운 힘의 원천위기를 극복하고 더 도약했다
1950년 전쟁의 시작 이후 한반도는 마치 역사의 영년처럼 절대 죽음과 완전 파괴를 향해 줄달음쳤다. 그 시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선조들은 우연적 필연과 필연적 우연이 뒤섞인 광풍으로 내몰렸다. 전쟁은 본시 피죽음인지 피울음인지 구별이 안 되는 지옥을 만든다. 전쟁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생존하고 생활해야 했다. 멈추면 죽는 것은 삶의 숙명이다. 그리하여 전후 모든 삶들은 살아남은 것이 형벌이고 죽음보다 더한 절망에서도 희망과 미래를 향해 한걸음 더 내딛지 않으면 안 되었다. 파괴가 창조의, 전쟁이 ‘전후’, 즉 재건의 출발을 이루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심리구조와 행동양태는 더 나아갔다. 절대위기 때 작동하는 한국인들 특유의 살아남기와 튀어오르기, 즉 회복탄력성과 용수철 심리였다. 석유 파동,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포함해 한국 사회는 위기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더 도약하였다. 첫출발은 한국전쟁이었다. “그 난리통에도 살아남았는데 무언들 못하겠느냐?” “난 가족이 다 죽었다. 동료들도 죽었다. 산 나는 그들 몫까지 해내야 한다.” “아무러면 전쟁보다 더하겠느냐?” 그 시대 실록들은 항상 생에의 강렬한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한국민들은 삶과 나라가 힘들 때면 저 끔찍했던 6·25 동란을 떠올렸다. 그것이 난파선 한국호를 복원하고 달음박질치게 한 힘의 근원이자 정신의 원천이었다. 생명과 소생을 향한 집합적 묘비명이었다.
시대와 마주한 개인적 숙명과 희망의 전체가 모이면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모두의 일, 나라의 일이 된다. 곧 정치다. 그러나 나라 자체의 생사를 건 전쟁에서는 체제·이념·진영의 단일 깃발로 뭉칠 수밖에 없기에 개인과 단체의 목소리는 묻힌다. 자유와 민주주의도 실종된다. 전쟁의 부정적인 속성이다. 모든 나라들이 전쟁 시기의 고난을 잊지는 않되, 전후 정치를 전쟁과 단절시키려 한 까닭이다.
그러나 전후 한국에서 정치는 절반으로 축소되었다. 전체는 위로부터 주어졌고, 아래의 참여는 협애하였다. 정치는 경세제민을 의미한다. 목적으로서의 정치다. 그것은 나라를 경영하고 국민을 구제한다. 동시에 정치는 대의와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수단으로 한 대화와 타협의 기예를 말한다. 과정으로서의 정치다. 물리적 군사적 전쟁은 끝났으되 의식적 정서적 전쟁은 끝나지 않았던 전후 한국에서 목적으로서의 정치는 존재했지만, 절차로서의 정치는 폐색되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가 본질인 전쟁은 종식 이후에도 한국 정치를 흑백논리·선악구분·승자독식·양자택일로 몰아넣었다.
따라서 정치의 실패가 폭력과 전쟁이었음에도 전후 한국에서는 전쟁 같은 정치가 난무했다. 독재의 원인이었다. 특히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다른 가치와 목적들은 유예되었다. 인간 존엄, 자유와 평등, 인권과 법치, 대화와 경청의 요목들은 뒤로 밀려났다.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한 사람, 한 이념, 한 진영으로만 뭉치는 단일표제주의였다. 이승만이면 이승만, 김구면 김구, 박정희면 박정희, 민주화 운동이면 민주화 운동,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로의 결집은 충돌할지언정 섞이지는 않았다.
대결은 선명했고 정의는 하나였다. 4·19는 이승만을, 박정희는 이승만과 4·19를,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부정하고 배척하기에 바빴다. 민주화 이후에는 진보와 보수가 그러했다. 이것은 국가의 근본 속성에도 맞지 않지만, 민주공화 정신에는 더욱 들어맞지 않는다. 정의는 공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민주공화의 골간이다. 민주 더하기(+) 공화, 곧 정의로운 타협을 말한다. 국가를 수호한 이승만,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박정희·전두환을 전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퇴출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특장이었다. 자생적 민주화의 꽃다발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불의-정의 이분법에 기반해 권력독점을 추구하기에 이후 민주공화, 즉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의 원리와 충돌한다.
무엇보다 평화는 내부에서 출발한다. 경계국가는 안에서 연대하면 밖의 양쪽 누구도 갈라치기를 못한다. 연대는 상대수용을 말한다. 경계의 생존을 위한 철칙이다. 두 번의 국망 위기에 빛난 이순신·유성룡과 민영환·이승만·안중근의 깨달음도 같았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세번째 위기에는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분할점령 상황에서조차 이승만·김구·송진우·여운형·박헌영·김일성·김두봉이 연합은커녕 회합조차 갖지 않았다. 이토록 큰 죄악이 없었다. 연립은 고사하고 그들은 상호 비난을 넘어 서로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동서 고전들이 밝혀내었듯 동족 간 전쟁은 가장 잔인하고 참혹하다. 그래서 거꾸로 이후엔 대타협과 대화해의 지평을 창출한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 전쟁과 전후 분단을 지속하고 있는 지구상 단 하나의 사례에 해당한다. 분열과 증오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무거운 성찰을 요한다. 처음 민주공화국을 구상할 때 인간사를 깊이 고구한 세계 선현들은 오직 평화의 근본조건을 안출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그것은 결국 하나, 즉 나라 안의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디자인으로 귀결되었다. 대내평화가 대외평화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이었다. 평화의 안과 밖은 분리될 수 없었다. 내부 연대와 평화가 없다면 외부 안전과 평화는 어렵다. 내부가 외부인 것이다.
근대 이후 영국·네덜란드·미국·스웨덴, 그리고 전후의 선진국들은 장인적 경지에 다다른 대화와 타협에 바탕해 대립과 갈등을 해소한 사례들이다. 참혹한 혁명과 내전을 겪은 뒤 영국은 타협주의와 의회주의를 선도하였다. 정의와 용서, 원칙과 타협의 두 덕성을 함께 보여준 남북전쟁 시기 링컨의 정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전의 참담한 비극들이 준 각성 덕분에 2차대전 이후의 경로들은 더욱 선연하다. 분할점령, 연합점령, 재분단과 내전 위기에도 불구하고 내부 분열이 초래할 피해와 비극을 알았기에 자신들의 이념과 정의, 노선과 주장을 다른 세력들과 최후까지 조정해갔다. 특히 전전 전체주의, 내전, 파국을 극복한 전후 이탈리아, 핀란드, 독일, 오스트리아의 대타협·대양보·대연합과 장기 평화의 병행은 인간 평화와 복리의 궁극적인 결정요인에 대해 가르쳐준다. 안이 밖인 것이다.
한국은 전후 분단을 지속하는지구상 단 하나의 사례죽기 아니면 살기가 본질인 전쟁종식 이후에도 한국 정치를흑백논리·양자택일로 몰아넣어정치의 실패로 폭력과 전쟁 겪고도전쟁 같은 정치가 난무했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시기는 가능한 한 내부 대화와 타협, 연립과 연합의 정치를 추구하려 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동안 두 침략국가, 즉 일본 및 북한과의 관계도 좋았다. 특히 김대중 시기는 내부 연합에 바탕해 남북, 한-일 관계는 물론 한-미, 한-중 관계도 순항하였다. 반면 다른 정부들은 승자독식·정의독점·적폐청산을 추구하였다. 이는 그 시기들 동안 내부 타협과 남북 및 한-일 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가 왜 함께 어려워졌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북한에서 민주주의의 결여는 한반도 평화 위협의 한 핵심 요소다. 북한은 오늘날, 헌법에서 밝히듯, 수령체제와 세습독재를 포함해 ‘세계에 유일무이한 국가 실체’를 구축하였다. 세기를 넘는 동안 일본 군국주의, 한국전쟁, 전후 수령체제로 이어지며 북한에서 시민 참여, 견제와 균형, 민주주의의 요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명시대에 전례없는 전체주의 체제다. 전쟁이 끼친 폐쇄 체제와 권력독점, 군사주의와 가족세습의 유산은 북한을 일인독재 체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시민·의회·언론의 비판을 통한 인권 존중, 의회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향후에도 상당 시간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기적 추종과 증오, 수용과 적대를 넘어 주권국가 북한에 대해 분리·독립과 공존·개방의 자세로 접근할 때 비로소 자체 민주공화적 전변과 상호 평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요체는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서, 또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한반도 인권, 한반도 민주주의, 한반도 인도주의, 한반도 복지의 관점에서 북한에 대해 객관적 비판과 보편적 인류애를 여하히 결합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안별 다가가기와 거리두기의 섬세한 균형을 말한다.
비극을 체험한 사회에서 정의와 화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전시 헌신과 희생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선 ‘국가를 위한 헌신’은 합당한 명예와 보훈이 필수다. ‘국가에 의한 희생’ 역시 정의와 화해의 관점에서 명예회복과 보상·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 모두 파괴된 삶과 영혼을 위한 최소 지원이다. 그런데 이 둘의 시작이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때였다는 점은 정의와 화해의 실현이 재정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 및 최근 사건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전쟁의 폭풍 속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희생되고 다친 사람들에 대한 예우는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 생명 가치의 관점에서 모든 사회적 죽음은 같다. 국가를 위한 충성과 국가에 의한 희생을 생명의 관점에서 통합할 수 있는 만큼 나라는 안정되고 고결해질 수 있다. 인류의 종교와 정치, 철학과 문학의 한결같은 지혜다. 국가의 도덕성과 품격 고양을 위해서라도 우리 공동체가 명심할 일이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시기내부 대화와 타협, 연합정치 추구북한·일본과의 관계도 좋았다.세계 최악 자살률·출산율은한국적 참상의 재연
진영싸움의 늪에서 벗어나생명부터 살려라
마지막으로 전쟁 같은 정치를 넘는 제일 요체는 진영대결의 타파다. 내 진영이 부패하고 무능하더라도 상대 진영에게 권력을 넘겨줘선 안 된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불의다.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반대다. 시민단체와 법률단체를 포함해 거의 모든 비정부기구(출신)들조차 친권력과 반권력 구도로 포획되어 있다. 공준은 사라졌다. 진영을 넘는 원칙은 배반이 된다. 대화와 타협이 힘든 이유다. “어? 저 사람, 진보 아니었어?” “보수가 웬일이지?”라는 물음들처럼. 한국 사회를 가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몰아넣는 반이성적 속물적 진영대결은 속히 극복되어야 한다.
진영대결에 바탕한 승자독식과 독임의 정치를 넘어서지 않는 한 평안하고 안온한 평화정치와 생명정치는 불가능하다. 대내공존 없는 민족공존이나 대외공존은 허구요 위선이다. 지지 정당과 인물의 독식을 추구하는 동안 반대세력은 철저히 배제하는 반평화 정치이기 때문이다. 남남연대, 남남타협, 남남화해가 남북, 한-일 및 국제 화해와 평화의 선결요건인 것이다.
전쟁 70주년이다. 옛글들에 따르면 군사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타의에 의한 한 생명의 종말은 같다. 더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생명의 대면 방식은 존엄하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특히 인간 생명의 철학과 정책과 조건에서 그러하다. ‘인간 없는 국가’, ‘생명 없는 세계’는 존재할 수조차 없으나 한국전쟁의 고난을 극복한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거친 뒤 나타나고 있는 세계 최악 자살률과 세계 최악 출산율의 장기 지속은 치유하기 힘든 한국적 참상의 재연이다. 전쟁이 아니라 생명 출산 중단으로 인한 인구 소멸로 국가가 소멸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오래다. 더 이상 진영싸움의 늪에 빠져 있지 말라. 소멸을 향해 치닫는 나라부터 살리라. 생명 살리기 없는 나라 살리기는 없다. 다른 방식으로 70년 전의 인간 죽임을 재연하고 있는 오늘, 정치의 본령이 생명과 평화에 있음을 절실한 심정으로 호소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