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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창2:17)고 하셨으며, 아담은 어떻게 하와와 같이 약속을 어기는데 동참할 수 있었을까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하심은 제글 '선악과에 담겨진 하나님사랑'을 다시 읽어보시면 자세히 설명이 나왔으므로 그것을 보시면 됩니다.
간략히 말씀드리면 선악을 알게되면 만가지 죄악중 단 한가지 죄악이라도 범죄케되어 사람 또한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분리케 될까염려하심입니다.
아담이 약속을 어김은 그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함보다는 욕심에 이끌리어 하와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창세기에 나와있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늘사랑님의 글과 같이 흙으로 빚으신 사람을 걱정하셨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어떤 한계와 제한이 있다는 것인데...
걱정하시고 근심하신다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어떤 한계와 제한이 있다고 유추할수있을까요..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근심하시고 슬퍼하시고 심지어 후회하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삼상15:11)
그럼 만일 누가 속되고 우스운말로 '후회할일을 왜 하셨는가'라고 물으며 그분의 능력을 폄하할수있겠지만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사람의 후회함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23:19)
사람의 후회는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수 없듯 돌이킬수도 없고 대처할수도 없는 자신의 제한된 무능력과 함께 감정적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염려함이나 근심한다해서 실질적인 해결을 할만한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보통 표현하기를 운에 맡긴다라고 자조하지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는 다른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인애와 자비의 하나님이시나 또한 모든 피조물의 재판장이십니다.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베푸실수있는 능력이 있으시고 불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삼,사대까지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축복과 형벌을 내리시는 권세를 갖고 계시니 모든일들을 공평하게 판결하시고 공의로 갚으시는 분이시지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23)
악인의 죽는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을 인하여 보응하시는것입니다. 그분은 공의로 판결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주께서 그것을 기뻐하시지는 않는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주의 심령은 악인의 죽는것을 원치않으시는데 그분의 공의와 권세로는 악인을 죽게 하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이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사 근심하시고 염려하시고 걱정하시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형벌받을자에게는 형벌을 내리시고 마땅히 복받을자에게는 복받도록 이루시니 어떤경우에든 그 행위대로 갚으시는 능력이 있으므로 주의 심령과는 상관없이 그 능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으신 사람을 걱정하신다고 해서 그분의 능력이 제한받는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됐을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능력을 발휘하셨는지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창3:17-19)
주의 심령과는 상관없이 복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요 형벌과 보응하시는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고 표현하셔도 그분의 공의로운 능력은 위와같이 제한받지 않고 그분의 진리속에서 펼쳐지는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물어볼수있겠지요 미래를 다 아시는 지혜라면 미리 악한일을 막을수있는것이 아닌가라고요..이 대답은 밑의 질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라(창1:26~28)는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 받았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것을 어기기 전에 어떤 범죄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선악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죄되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닌가요?
선악과를 알기전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행위를 하였는지 하지않았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선악과이전에는 그들이 설령 범죄행위를 하였다 한들 그것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5:13)
선악의 분별이 없다 함은 율법이 없다함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사건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죄는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님말씀처럼 죄되는 일이 없는것은 아니었겠지요.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지못한상태에서 후손을 낳고 별과 같이 많아졌을때 가지 많은나무 바람잘날 없다고 서로 송사하고 서로 피해주는 일이 없을수있었을까요..그건 누구도 장담못할일이지요..그러므로 죄되는 일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또한 위 성경말씀을 보면 율법있기전에도 죄가 있었다하니 죄가 없지는 않았으나 아담과 하와가 그런일을 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또 그것이 그리 중요한것도 아니구요..
오늘날의 실정법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기 때문에 일정나이 미만의 어린이들은 범죄하여도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아담과 하와가 약속을 어기기전 에덴동산에서의 행동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고자 말씀드렸던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도 이치상 선악을 분변치 못하는 이들에게는 죄를 묻는것이 올바르지않음을 본성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실정법으로 정해놓았는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이법칙을 알리셨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먼데 있는 허황된 허구가 아님을 알리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을 창조할 때 부여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의 속성-자유의지로 약속을 어길 줄을 과연 모르셨나요? 과연 그럴까요???
네..님 말씀하신대로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다함이 없지요
그러나 주께서 미래일을 아시는것에 관하여 우리가 반드시 확실한 개념을 가져야할게 두가지 가 있습니다. 그것은 되어질일과 주께서 이루실일의 관점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모든 미래의 예언은 실상에 존재하는것이요 허상에는 존재치 않는다는것입니다.
하실일이라함은 주께서 현재부터 미래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시려 하는것이요 될일이란 그분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것과는 별개로 결국 되어질 일이라는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의 경우를 잠깐 보겠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지으신 여러 목적중의 하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것입니다.(창9:1)
따라서 그당시에나 또 그이후에나 주께서 하시는 일과 장차 하실려고 하신것은 사람으로 복주고 번성케하고자 하시었으나 결국 될일은 홍수로 말미암아 지면에서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끊으시는것이었습니다.
만일 미래의 어느시점에서 불행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본래 그결과를 계획하심은 아닙니다. 이 사건을 과거의 시점에서 본다면 주께서 하실일은 사람으로 번성케하고자 복주시려 하심이었고 되어질일은 결국 노아와 그식솔들을 제외한 모든 생기있는것들의 절멸이었습니다.
만일 누가 선한 목적과 옳은 의도로 자식을 키우고자했을때 미래에 자식의 범죄함을 보고 염려하여 근심하여 자식을 낳지 아니할수있겠습니까. 자식이 범죄하더라도 그 범죄를 부추기거나 장려하지 않았다면 그 부모의 선한 목적과 의도는 옳다 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선한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하여 각양 좋은것과 복된것으로 양육하고 성장케하고자 창조하셨는데 미래에 될일이 불행함을 안다고 해서 미리 포기한다면 주께서는 아무것도 창조하실수 없을것입니다.
다시 같은 예를 든다면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어떤 아들은 훌륭하게, 어떤 아들은 악하게 될줄알아서 골라서 낳을수는 없는것이고 설사 그런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미래를 안다는것은 어떤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야하고 그 존재의 실존이 있어야만 그 미래가 나타날수있는것입니다.
있지도않은 태아를 가지고 이 애기는 나중에 위인이 될것이다라거나 혹은 악인이 될것이다라고 예언하여 단정지을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언이나 미래를 논할수가 없는것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약속을 어길줄을 아셨다고 해서 그들을 창조치 아니하시면 아담과 하와는 실존하는 실체가 아니므로 약속을 어기리라는 미래예언 자체가 허상이되어버립니다.
주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심으로 그들이 구체화된 실존이 되고 따라서 그 실존에 대한 미래도 허상이 아닌 실상이 되어짐에 따라 그들이 주의 약속을 어기리라는 예언도 할수있는것이요 그들의 미래도 알수있는것이지요
존재치않는 허상에 대해선 아무 미래도,될일도, 예언도 존재치 않고 실존하는 실상에 대해서만 미래와 될일과 예언이 있을수있지요 그 될일과 예언이 불길하고 불행하다고 해서 이미 실존하게된 실상을 아무것도 없는 허상처럼 여기며 되돌릴수는 결코 없습니다. 이미 번복할수없는 실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게되리라는 사실을 주께서 그 지혜로 미리 아셨지만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없던일로, 그리고 선악과를 없앨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사건은 하나님이 하실일이 아니라 미래에 될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다 아시는 지혜라면 미리 악한일을 없게 하여 막을수있는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은 우문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당신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당신 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온 우주에서 불순동으로 인한 사망과 죽음을 없애기 위하여 스스로 당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 결국 하나님 당신이 죽기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죄없으신 하나님을 사망권세로 죽음에 가둘 수 없었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이제 주의 재림으로 천사장이었던 루시엘, 사탄을 심판하시고, 불순종으로 인한 죽음과 사망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는 사랑의 계획으로 결론하여 봅니다.
네..말씀하신 견해도 아름다운 모형이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예수께서 죽으심에도 불구하고 사망과 죽음의 고통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경험하고있고 또 경험되어질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의 희생으로 건짐을 받지만 주께서 지으신 수많은 사람들은 사망과 죽음가운데 여전히 거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건짐을 받는 우리들만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 또한 주의 사랑으로 지음받은 자들입니다.
말씀하신것과 같은 오해를 하는 이유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객을 전도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자랑하고 감동시키시고자 계획하신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사랑하심이 이렇게 여실히 드러나고 큰 감동을 받게되었다면 만일 죄의 문제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하였겠습니까..
사람과 하나님사이에 죄로 인한 문제가 없었다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풍성하였을것이며 더 크고 아름다왔을겁니다..
세상의 하는말로 주께서 병주고 약주는 식의 얕고 소영웅적인 사랑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만일 인류에게 죄와 불의의 문제가 없었다면 현세에 사는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만큼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목도하였을것이며 말할수없는 기쁨으로 기뻐하고 감동하였을것이니 이것을 우리가 지금은 희미하나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부르실때 더욱 확실하게 알수있을것입니다.
사람이 죄의 문제가 없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맛보시지 아니하셨을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이시지 않았겠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이 없었다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지못하고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감동을 받았을까요.. 결코 그렇지 아니하지요.
만일 십자가가 없었더라도 그분의 하시는 모든 행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알며 뜨거운 감동속에서 살게 됐을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죄가운데 거하여 여러 은혜를 베푸시기를 준비하신것이 아니라
원래는 죄의 문제없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살기를 원하셨으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일이 어려워지고 걸림이 되었어도 끝까지 사랑으로 구원코자 하심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정도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군요. 님의 의문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더 풀어쓰고 길게 설명을 해드려야하는데 만일 이해안되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좀더 이해하기 쉽게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이번기회에 제 맘속에 산만히 흩어져있던 기억들을 다시 정리할수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늘 주안에서 강건하시기를...샬롬~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창1:22 하나님이 가라사대..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중요한 것은 창세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 중에서 지금의 나의 모습이라 여깁니다. 여러가지 우문에 친절히 말씀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