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불모산 숲에서
장마가 물러가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하순이다. 폭우 재난 문자는 폭염을 염려해 한낮 야외활동을 자제하십사로 바뀌었다. 무덥기는 해도 오전 반나절은 산행을 나서 숲을 누비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몸을 담가 더위를 잊고 지낸다. 어제는 진북 수리봉 기슭 의림사 언저리 숲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내고 계곡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너럭바위에 한동안 머물다가 나왔다.
칠월 끝자락 금요일은 엊그제 다녀온 불모산 숲을 다시 찾으려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창원 도심에서 정상의 방송국 송신 중계소와 통신사 중계탑이 아스라이 보이는 불모산이다. 불모산은 정상을 등정하려면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야 되어 나는 근년에 들어 그곳까지는 올라간 적 없다. 대신 성주사 언저리 숲길을 걸어 산중턱쯤에서 하산길을 택해 되돌아오길 반복한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더위에도 자연학교 등교는 언제나 그렇듯 무척 이른 시각이다. 일반 학생의 등교나 회사원의 출근 시간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원이대로에서 진해로 가는 155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성주동으로 건너가 안민터널 사거리에서 내려 남천 상류 천선동 유허지 빗돌을 지나니 제2 안민터널 공사 현장이 나왔다.
기존 안민터널은 교통량이 한계치를 넘어 출퇴근 시간대는 정체현상을 빚는지 오래다. 부산신항과 동진해 아파트 밀집 지구에서 창원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뚫는 제2 안민터널이다. 수년 전 착공된 토목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연전 접속도로를 개설하면서 진해 석동에 삼국시대 고분군 유적이 드러나면서 개통이 지연되었는데 올겨울에는 완공되어 통행이 가능하지 싶다.
성주사 수원지 아래 공사 현장에는 한여름 무더위에도 아침부터 인부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성주사로 드는 자동찻길과 나란한 보도를 따라 걸어 주차장을 지난 산문에는 최근 세운 일주문이 덩그렇게 보였다. 외기둥에 겹겹의 공포를 짜서 끼운 다포식 일주문은 단청을 하지 않은 채였지만 편액은 걸려 있었다. 명망 있는 서예가가 썼을 예서체를 닮아 보이는 개성 있는 글씨였다.
일주문에서 절집으로 드는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 돌층계를 올라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았다. 지장전 바깥 둘레에 놓인 연화분 꽃은 모두 저물고 연잎만 싱그러웠다. 한 스님이 절집의 넓은 경내 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절집에서 스님은 수행의 한 과정으로 일과의 시작을 마당을 쓰는 일로 시작되는 듯했다. 지난번에는 스님 두 분이 함께 쓸더니만 이번엔 혼자서 쓸었다.
지장전에서 관음전을 지나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비공식 등산로로 들었다. 사람들이 다니질 않은 묵혀진 길을 따라 걸어 개울을 건너기 전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혔다. 불모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성주사로 옆으로 가면 진해 시민이 상수원으로 삼는 수원지로 모여든다. 내가 앉은 개울물도 성주사 바깥 수원지로 흘러드는 물줄기였다.
개울에서 건너편으로 들어 활엽수가 우거진 숲속을 거닐었다. 등산로가 희미해져 식별이 잘 되질 않는 숲에서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를 살폈더니 밥주걱 크기 영지버섯을 몇 개 찾아냈다. 남향 산등선에 이르러 산마루를 넘지 않고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내려가 북향 산등선으로 올라 산마루를 넘었다. 상점 고개로 가는 숲속 나들이 길을 걸어 불모산터널 입구 가까운 곳에 닿았다.
계곡에는 암반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숲속 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니 인적은 끊겨 오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맨살을 드러내고 폭포수가 떨어져 이룬 물웅덩이에 들었다.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줄기로 다가가니 서늘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투명한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니 차가움으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물기가 묻은 몸을 말렸다. 23.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