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서 앵두꽃은 피고
봄이 와서 머리가 더 허예진 사내가
어린아이처럼 그 꽃을 보는 것은
어딘가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보는 것은
어쩐지 좀 미안하고 기쁜 일
쬐끄만 흰 꽃들은
편종 소리를 내며
나를 때린다
-『동아일보/나민애의 詩가 깃든 삶』2024.09.27. -
길을 지나가는데 배롱나무가 여전히 꽃을 달고 있다. 아들에게 “여기 꽃이 피었다” 말했더니 힐끗 돌아보지도 않는다. 아, 나는 늙었고 너는 젊구나. 예전에 아버지와 길을 걸으면 “여기 꽃이 피었네, 저기도 꽃이 피었네”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뭐 어떻다고.’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젠 내가 꽃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제가 꽃의 나이일 때는 꽃보다 자신을 예뻐하는 듯하다. 거울 속 꽃 같던 내 얼굴이 사라지니까 이제야 꽃 같은 사람, 사람 같은 꽃이 예뻐 보인다. 잃으면서 배운다. 나쁘지 않다.
한 해 한 해 같은 꽃이 돌아오는 것은 어쩐지 고맙다.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핀 것도 아니고 나 좋으라고 핀 것이 아니지만 좋다.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꽃을 보던 작년의 나와 더 먼 옛날의 내가 함께 있어 반갑다. 시인에게도 꽃은 그런 의미였다. 피어난 꽃은 의미가 되어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때린다. 세상 천지 다 이런 이치 아니겠는가 싶다. 꽃이 피었어도 마음에 심어야만 꽃이다. 그걸 발견하고 해석해야만 꽃이다.
내가 장미라고 불렀던 것은 하이에나의 울부짖음이었다
내가 나뭇잎이라고 불렀던 것은 외눈박이 천사의 발이었다
내가 비라고 불렀던 것은 가을 산을 달리는 멧돼지떼, 상처를 꿰매는 바늘
수심 이천 미터의 장님 물고기였다 내가 사랑이라고, 시라고 불렀던 것은
항아리에 담긴 바람, 혹은 지저귀는 뼈
내가 집이라고 불렀던 것은 텅 비었거나 취객들 붐비는 막차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으며
내가 나라고 불렀던 것은
뭉개진 진흙, 달과 화성과 수성이 일렬로 뜬 밤이었다 은하를 품은 먼지였다
잠자기 전에 빙빙 제자리를 도는 미친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