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백작]
샌드위치(Sandwich)라는 지명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빵 사이에 무언가를 끼운 음식’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는다. 기록에 따르면 이 이름은 642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영국 Kent 지방 동쪽 끝자락, 템스 하구로 이어지는 해협과 가까운 이 작은 마을은 한때 잉글랜드 동남부에서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다. 비록 지금은 해안에서 약 3km 떨어져 있지만, 이는 중세 이후 지속된 퇴적 작용과 해안선 이동 때문으로, 고대와 중세의 샌드위치는 실제로 바닷물 바로 곁에 자리한 ‘해양 도시’였다.
샌드위치라는 이름은 고대 영어 sand와 wic(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래마을”, 혹은 “모래 위의 부두·거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wic’이 붙은 지명들은 대개 해안 교역지나 어업·염전 중심지를 가리켰으며, 이는 샌드위치가 애초부터 교통·교역의 관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중세 잉글랜드의 해상동맹 ‘신크 포트(Cinque Ports)’ 중 하나로 지정될 정도로 이곳은 번성했고, 국왕이 함대를 머물게 하는 전략적 요충지로도 활용되었다.
17세기로 시계를 돌리면, 이 항구는 에드워드 몬태규(Edward Montagu)라는 인물과 깊게 얽힌다. 그는 찰스 2세의 복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맡았고, 결국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찰스 2세는 그에게 백작(earl) 작위를 하사했다. 몬태규는 새로 얻은 귀족 작위에 도시 이름을 붙여 ‘○○ 백작(Earl of ○○)’이라는 칭호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영국에서 명성이 높았던 브리스톨이나 포츠머스가 후보에 올랐지만, 그는 샌드위치를 선택했고, 그렇게 샌드위치 백작(Earl of Sandwich) 가문이 탄생했다.
이후 11명의 백작이 이어졌지만, 그중 가장 이름이 널리 퍼진 인물은 단연 4대 샌드위치 백작 존 몬태규(John Montagu, 1718~1792)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명성’을 남길 만한 뛰어난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능·도박·실패한 정책으로 오히려 악명이 더 컸다.
4대 존 몬태규는 증조부와 마찬가지로 해군 대신(First Lord of the Admiralty)을 지냈지만, 증조부가 왕정복고에 결정적 공을 세웠던 것과 달리 그는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을 대비하고 지휘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무능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영국 해군은 세계 곳곳에서 전선을 유지해야 했고, 식량과 군수품 공급, 장교 임명, 함대 배치 등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나 존 몬태규는 전쟁보다 겜블링 테이블에 더 집중했고, 해군 행정은 총체적 난맥에 빠졌다.
독립전쟁에서 영국이 패하자, 많은 정치적 비난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영국 정치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인기 없는 인물 중 하나로 남았다.
그의 이름은 전쟁 패배보다 ‘음식’ 때문에 더 오래 살아남았다.
1762년, 몬태규는 세인트 제임스 거리에 있는 도박 클럽에서 친구들과 카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장시간 진행되던 게임 중 그는 배가 고파졌지만, 손가락에 기름이 묻으면 카드 표면에 자국이 남아 상대에게 패를 읽힐 수 있다는 핑계로 하인에게 “고기를 빵 두 장 사이에 끼워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이 간편식은 도박꾼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그가 늘 먹던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샌드위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 간단한 주문이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 이름을 결정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770~1780년대 영국 사교계의 도박장은 사교·정치·술자리가 결합된 곳으로, 새로운 유행이 퍼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결국 ‘샌드위치’는 귀족 출신 타락한 정치인 한 명의 비밀 식사에서 시작해 영국의 일상식이 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된다.
존 몬태규가 1792년 사망했을 때, 그의 묘비에는 친구들이 다음과 같은 독설을 새겼다.
“이토록 많은 공직을 맡고도 이토록 적은 공을 세운 이는 드물다.”
그러나 정작 세상은 그를 정치적 실패보다 점심 메뉴로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그가 역사에 남긴 유산은 샌드위치 하나가 아니었다.
해군 대신으로 있던 시절, 그는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의 남태평양 탐험을 지원했다. 쿡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항해(1776~1779)는 태평양 북상 항로를 찾아 아시아와 대서양을 잇는 북서항로 가능성을 조사하는 임무였다.
1778년 1월 14일, 쿡의 배는 오늘날의 하와이 제도에 도착했다. 서양인의 기록상 하와이에 최초로 도착한 순간이었다. 쿡은 이 군도를 후원자이자 상관이었던 몬태규의 작위에 경의를 표해 “샌드위치 제도(Sandwich Islands)”라고 명명했다.
이 이름은 무려 100년 가까이 지도와 항해 기록에 등장했고, 19세기 중반 이후 ‘하와이(Hawai‘i)’라는 고유 이름이 정식화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남극해 인근의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South Sandwich Islands)와 샌드위치 해협(Sandwich Channel)에는 이 늙은 도박꾼의 이름이 남아 있다.
존 몬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