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잊으려고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끝자락이다. 퇴직 첫해였던 작년 얼떨결 지기 권유로 텃밭을 가꾸느라 여가에 작물을 돌봤다. 에어돔 축구장이 들어설 시청 공한지에 한시적 텃밭이라, 올해 초 예정된 공사가 시작되어 연이 닿아 오래도록 경작해오던 이들도 모두 터를 비켜주었다. 텃밭 농사 관건은 잡초에 끌려가지 않음인데 장마가 오기 이전 제대로 김을 매주어야 했다.
농가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여름에 무더위가 찾아오면 할 일이 별로 없다. 논둑의 풀을 자르거나 고추밭에서 영근 고추를 따주는 정도 일거리가 있을 테다. 이런 일로 농부는 해 뜨기 전 이른 아침에 논밭을 둘러보고 한낮에는 정자 그늘에서 한담을 나누며 더위를 식힌다. 나는 작년에 여름날 이른 새벽에 텃밭에 나가면 오이나 호박잎을 따오거나 부추를 잘라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텃밭 농사가 나로서는 작년 한 해로 종료되어 다행이다. 경작이 계속되었다면 나의 소중한 시간을 텃밭에 얽매이고 저당 잡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봄날이면 근교 산행을 나서 산자락을 누비면서 여러 가지 산나물을 뜯어와 찬거리로 삼아 먹는다. 우리 집 식탁에 올려 산나물 특유의 식감과 향긋한 향을 맡음은 물론 이웃이나 지기들과도 봄내를 나누었다.
여름이 오면 여름대로 나의 발걸음은 무척 바빴다. 장맛비 틈새 여러 날에 걸쳐 근교 숲으로 들어 내가 한 일이 있었다. 활엽수림 가운데서도 참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 삭은 그루터기에 붙는 영지버섯을 찾아낸 일이다. 봄날의 산나물이 그랬지만 영지버섯의 자생지도 특정되어 있어 해마다 자라나는 곳을 찾아갔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내가 찾아낸 영지버섯을 제법 말리는 중이다.
영지버섯은 잘게 조각내어 훈증시켜 말려야 벌레가 꾀질 않고 오래 보관된다. 이런 절차가 까다로워 나는 자루에서 갓을 펼쳐나온 원형 그대로 말리고 있다. 베란다에 널어 여름내 뒤져 말리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이번 장맛비로 그간 꿉꿉하던 영지버섯은 햇볕이 제대로 드러나 잘 마르는 중일 테다. 이렇게 말린 영지버섯은 형제를 비롯해 인연 닿는 주변 지기들에게 나누고 있다.
어제는 불모산 산행을 나서 정상까지 오를 생각은 하질 않고 성주사 언저리를 맴돌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몸을 담그고 나왔다. 계곡에 몸을 담그기 전 숲속을 누벼 영지버섯을 몇 조각 찾아냈다. 집으로 와 배낭을 정리하면서 영지버섯이 든 봉지를 현관에 두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아내가 하는 말인즉 오늘 영지버섯은 이것뿐이냐는 투로 양이 적음을 아쉬워한 듯했다.
나는 속으로 여태 찾아낸 영지버섯도 대단했거니와 이제 산행을 나서도 더 찾아낼 영지버섯이 드물다고 사정을 그대로 일러주었다. 앞으로 산행에서는 어쩌다 미쳐 눈에 띄지 않아 남겨진 이삭 정도 주워올 형편이라고 했더니 아내는 그제야 이해가 되는 듯했다. 사실 영지버섯은 장마가 끝난 이즈음부터 본격적 채집 시기가 되겠으나 나는 발 빠르게 남들보다 먼저 찾아낸 것이었다.
칠월 끝자락 토요일 이른 아침은 창원대학 삼거리로 나가 장유계곡을 거쳐 김해 삼계로 가는 59번 좌석버스를 탔다. 시내를 벗어나는 남산터미널에서 중고생 청소년들이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차림으로 다수 탔다. 창원터널을 지나 장유계곡을 앞둔 윗상점에서 내렸다. 나는 불모산 송신소로 가는 자동찻길을 따라 걸어 약수산장보다 더 위쪽 화산의 활엽수림이 우거진 계곡을 찾아갔다.
원시림을 방불하게 하는 숲이 우거진 인적 없는 계곡에 쏟아지는 맑은 물줄기와 웅덩이였다. 바깥은 뙤약볕에 폭염경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알탕지에서 더위를 잊고 지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몸을 담그니 시원함이 더해져 추위를 느껴 턱이 떨려오기도 했다. 한동안 계곡에 머물다 의관을 정제하고 숲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와 반송시장에서 열무 물국수로 점심을 잘 해결했다. 2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