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중앙SUNDAY/시(詩)와 사색』2024.09.28 -
친구에게 책을 빌려주기로 약속한 날, 오후 다섯 시쯤 이런 문자메세지가 도착합니다. “오늘까지 책 빌려준다더니, 왜 안 빌려줘?” 아무래도 친구에게 오늘의 끝은 저녁인 듯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끝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오후 여섯 시에 업무 메일을 보내든 혹은 양해를 구하고 내일 오전 아홉 시 전에 메일을 보내든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중에서 가장 유동적인 것은 밤입니다. 동트기 전 어두운 창밖도, 야근 후 돌아오는 지친 길도, 심지어 잠들지 못한 채 자정을 넘어서는 시간도 사실상 오늘밤이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밤이 이토록 많아 걱정도 많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