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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지례(請文之禮)
글을 청하는 예절을 일컫는 말이다.
請 : 청할 청(言/8)
文 : 글월 문(文/0)
之 : 갈 지(丿/3)
禮 : 예도 례(礻/13)
당나라 관리들이나 지식인들은 부모의 비문이나 부모에 관계된 글을 받을 때 가장 뛰어난 문장가의 글에 가장 뛰어난 서예가의 글씨를 받아 비석을 세우거나 현판을 거는 것을 가장 큰 효도로 여겼다.
글을 요청할 때 예물을 갖추어 사례를 했다. 요청하는 사람이 정승이고 글을 짓는 사람이 벼슬 없는 선비라 해도, 본인이 예물을 가지고 가서 정중하게 글을 요청하는 예를 갖추었다.
당나라 정승 배도(裵度)가 대문장 한유(韓愈)에게 비문을 청하면서 비단 800필을 폐백으로 가져갔는데, 한유는 "내 문장을 어떻게 보고 이런 대우밖에 안 해?" 하며 노발대발했다.
한유의 문집에는 남의 비문이 많은데, 사람들이 '무덤에 아첨하는 글(諛墓之文)'이라고 비웃었다. 별것 아닌 사람을 미화한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손으로서 조상에게 효성을 다하며 집안을 지키려는 정성까지 나쁘게 볼 것은 없다.
글을 요청할 때는 지켜야할 기본 예의가 있다. 반드시 글을 필요로 하는 본인이 직접 가서 요청해야 한다. 소박하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시해야 한다.
한문학계의 태두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에게 큰 기업가가 조상의 비문을 부탁하면서 직원을 보냈다. 기분이 나빴지만 워낙 글짓기를 좋아하는 어른이라 지어 "다 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또 직원을 보냈다. 한동안 받았다는 인사가 없었다. "이렇게 예의 없는 자가 다 있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그제서야 약간의 사례를 하였다.
1995년 남양주시(南楊州市)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하루 전날 연민 선생에게 전화로 상량문(上梁文)을 부탁해 왔다. 어렵기로 유명한 상량문을 하루 만에 어떻게 지으며, 또 전화로 부탁해서 될 말인가?
연민 선생이 그들의 하는 짓을 보면 지을 마음이 안 났지만, 다산의 생가에 상량문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밤을 새워 지어 보낸 적이 있다. 지금 다산의 생가에 걸려 있다.
한학자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은 원고 청탁을 전화로 하면 "여기까지 올 정성도 없는 사람이 내 글은 왜 찾느냐?"며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다.
오늘날은 생활이 워낙 바쁘고 통신이 발달돼 꼭 전화로 해서는 안 될 것은 없다 해도, 본인이 부탁해야지 남을 시키면 안 되고, 글을 받으면 받았다는 인사는 해야 한다.
필자에게도 글을 청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요즈음은 전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스마트폰 문자만 보내놓고 전화도 한 통 안 하는 사람도 있다. "내일 오전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초서 현판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놓고 풀이해 달라고 하면서 신분도 안 밝히는 사람도 있다. 며칠 지나서는 "왜 안 보내줍니까?"고 항의하는 정도다.
웬만하면 대부분 응해 주려고 하지만, 글의 가치를 모르고 예의 없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글의 값
프랑스에선 글 때문에 언론인 10여 명이 테러를 당했고, 국내에선 몇몇 기자가 글값을 치르느라 법원을 들락날락하는 중이다. 근데 지금 그 글은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나.
내가 한 달에 쓰는 글자 수는 2만 자 안팎이다. 다른 업무들도 있지만 대충 보이는 것들로만 계산하면 한 달 2만 자 분량의 글값이 나의 수입이다.
매달 마감이 끝나면 외부 필자들의 원고료를 정산한다. 단가는 업계 평균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2만원.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9년 전부터 오름세는 없다.
책은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고, 프리랜서 작가들은 외딴 산골 땅값 만큼이나 오르지 않는 글값에 불만을 표하며, 블로거라 불리는 이들은 맛집에 가 VIP의 대우를 요구하며 기자 행세를 하려 한다.
근데 프랑스에선 만화 한번 잘못 그려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글 하나로 갑론을박하며 법정 싸움 중인 사람도 많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선 풍자만화 잡지 '샤를리 에브도'의 기자 12명이 죽었다. 만화에서 묘사한 무함마드의 모습이 모욕적이라며 불만을 품은 이슬람 테러 세력이 잡지사 사무실에 쳐들어가 총을 휘두른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테러 직후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잡지를 휴간하지 않겠다 발표했고, 평소 6만 부 발행하던 책의 부수를 100만 부로 늘렸다.
파리 시민들은 발행 전날부터 서점 앞에 줄을 섰다. 펜의 힘, 언론의 역할, 그리고 집회 대열이 들고 나온 한 손으로 굳세게 펜을 움켜진 그림. 이 얼마 만에 듣고 보는 언론의 이상인가.
물론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단순히 펜의 권리만 지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언론의 역할을 제한하는 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비하하는 기사를 게재할 시 처벌을 받는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 역시 처벌 대상이 된다. '샤를리 에브도'의 몇몇 칼럼은 수차례 유대인 비하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라 해도 이제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거다. 역시나 글의 역할은 '기레기' VIP 행세하는 블로거 필자, 단어 당 500원의 가격 그 이상이다.
국내에서도 '나는 꼼수다'의 멤버이자 각각 '시사인'의 기자인 주진우와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은 지난 대선과 관련해 수많은 소송에 휩싸였다.
대부분 박근혜, 새누리당 쪽 인사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건들이고, 지난 1월 16일 무죄가 확정된 사건 역시 둘이 '나는 꼼수다' 방송에서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의혹에 대한 건이었다.
사법부는 "'나는 꼼수다'가 보도한 내용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닌 듯 보이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의 역할을 제재할 순 없다"고 했다. 어쨌든 언론의 권리는 다시금 입증됐다.
하지만 여전히 글의 처지는 순탄치 못하다. 꽤 많은 보도 기사가 명예훼손 혐의로 법원 심판대를 오르내리고 있고,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 작가들의 앓는 소리도 여전하다.
심지어 주진우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법정에서 싸워온 날들의 기록을 담아 최근 책을 냈다. 제목은 '주기자의 사법활극'.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고 언론의 역할을 다하는 글이면 무엇하나.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 의미를 갖는 건 법정에서의 무죄 판결보다 그 글이 돈으로 환원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인지 모르겠다.
밥벌이를 스스로 걱정해야 하는 글의 현실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 다음에선 '뉴스펀딩'이란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기자가 글을 올리면 독자는 공감 여부에 따라 후원 버튼을 누르고, 그 반응은 바로 돈으로 환산된다.
주진우 기자와 방송인 김제동이 '애국소년단'이란 이름으로 올리는 글은 연재 3회 만에 벌써 1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았다. 돈의 액수가 곧 글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면이다.
글의 역할은 크다.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글을 둘러싼 환경은 언론의 자유를 외쳐대던 과거와 비교도 못할 만큼 변했다.
이제 누구나 글을 쓰며, 글의 파급 속도는 예전에 비해 수십 배 빨라졌고, 글 하나에 얽힌 이해관계도 복잡다단해졌다. 일상다반사를 고려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 하지만 중요한 표현의 자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수준의 글값.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의 죽음 앞에서, 혹독한 글쟁이들의 현실 한복판에서 글의 값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글은 과연 지금 제 값어치를 하고 있나. 그 값어치는 충분히 존중되고 있나. 그리고 글은 최소한의 밥벌이 수단이 되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글의 요즘 처지다.
글값 / 김영주
청탁서 꽁무니에 계좌번호 적으라 하면/
액수야 얼마가 됐건 공연히 즐거워진다/
내 시도 대접받는구나/
자랑하고 싶어진다
글씨건 그림이건 자기 몸값 당당한데/
아픈 속 쓰라린 속 제 속 다 까발리고/
왜 유독 글 쓰는 일만 업장처럼 느껴질까
시집 한 권 사보는 일 그러고 보니 게을렀다/
오늘은 가판대 위 낯 모르는 시인을 만나/
그니가 아낀 설움을 대신 울어 주고 싶다
글 값 / 淸溪 趙冕熙
글값이라고 하면 선비로서 체면이 손상되는 듯하지만 마음속에 넣어놓고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무엇이든지 분명한 것이 뒤끝이 훨씬 깨끗하다고 생각하여 그 동안 느낀 바를 적어본다.
글 값이라고 하면 쉽게 말하여 원고료를 말한다. 이 원고료를 오래전에 작고하신 대학자 양주동 박사님이 어떤 대담 프로에서 글 값이라고 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양주동박사님은 한글과 한문은 말할 것도 없이 영어에도 능통하신 학자로 양주동(梁柱東) 양박사(兩博士)라는 별명을 가진 천재학자로서 우리고전 향가해독에 지대한 공을 끼치신 학자이다.
이 양주동 박사께서 어느 대담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곧 "무식한 사람에게 글 지어주지 말아라. 지어 주거든 글 값을 정하고 지어주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강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식한 사람은 육체노동의 중요성만 생각하지 정신노동인 글은 그냥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술술 끌어내어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글을 한편 받아 가게 되면 그냥 술이나 한 잔 사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학자 집안끼리 글을 서로 주고받으면 그렇지 않다. 글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자기 기준으로 글값을 알아서 많이 준다.
그러면 무식한 사람 아니고 학자들이 무슨 글을 받는다는 말인가? 학자들도 자기가 쓸 수 없는 선대의 비문이나 문집의 서문 같은 것은 반드시 남에게 받는다.
양주동 박사의 이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문장을 만들고 글을 쓰고 또 특히 나와 같이 한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한문 풀이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자기 조상들이 썼다고 하는 가훈이라든지 편지문 같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정자로 쓰고 번역해 달라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어쩔 수 없이 초서일 때는 탈초도 하고 번역도 두어 번 해 주게 된다.
그러나 고맙다고 하고는 끝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모르는 글은 아주 쉽게 물어온다. 나는 이럴 때 이렇게 대답한다.
어려운 한자 글 한편 쓰든지 탈초를 하든지 번역하는 일은 이 역시 중노동이다. 당신이 TV나 라디오가 고장 나면 수리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한 두 시간 수리하면 수리비를 달라고 하는 대로 엄청 많이 준다. 또 집에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 고치게 된다. 그리고 품 싹을 시간에 따라 준다.
그러면서 글은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이 글을 번역해 달라고 한다. 찍어 보내는 사람은 쉽다. 그것을 받은 사람은 몇 시간 아니 며칠까지도 그것을 풀이하기 위하여 옛글도 참고하고 사전도 찾아보기도 하고 또 알기 쉽게 번역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나에게 글을 받으려면 원고료를 많이 내야한다. 나는 바쁘니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학자에게 맡기고, 꼭 나에게 받으려면 한문 초서의 탈초(정자로 바꾸는 일)와 번역을 각각 200 자 원고지 한 장당 2만 5천 원씩 내야 한다"고 한다.
한시(漢詩)는 한편에 5만원씩인데 탈초를 하게 되면 10만 원이라고 한다. 이 원고료는 7-8 년 전에 내가 정한 원고료이다.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원고료를 받은 것이다.
그 이유는 누구도 그 글을 번역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 1920년 대 우리나라 개신교 초창기의 목사님께서 설교한 내용을 한자로 그것도 철필로 흘려 써 놓은 글이라서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손자 되는 분이 미국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분인데 이 것을 꼭 번역해야 하겠다고 하며 사방 알아보아도 할 수가 없다고 하여 맡은 글인데, 돈이 있다고 다 하는 일이 아닌데 참으로 효성이 지극한 손자이었다.
한편 글을 배우기 위하여 짧은 글을 제시하면서 자신이 탈초하고 번역한 원고를 보내오면 나는 최대한으로 내가 아는 한도에서 그냥 풀이해 준다. 이는 보낸 사람의 편에서 보면 배운 보람이 있고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가르친 자긍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 너무 인색하다고 하겠으나 나는 그 동안에 한문학자로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의뢰하고 싶어 한다.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다른데서 할 수 없다고 하여 의뢰해 오면 최대한으로 시간을 내어 부응하려고 한다.
그래서 글을 의뢰할 때마다 따로 이야기 하던 것을 이렇게 글로 써서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니 다른 곳에 알아보아도 알 수 없다고 여기는 글이 있고, 또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글이 있으면 의뢰해 주시기 바라는 바이다.
술값이 제일 비싸고, 글값이 제일 싸다
나는 '술값이 제일 비싸고, 글값이 제일 싸다'란 문구가 원래 있는 명언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자주 내게 해주셨던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봐도 검색이 안되는 걸로 봐서 아빠의 명언인가 보다.
아빠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그 때부터 쭈욱 일을 하셨다. 정말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내가 13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였다. 아빠가 자식에게 뭔가를 얘기 해주실 때, 노래방 18번처럼 얘기했던 시작말이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많으시다.
한글을 가르치는 학원, 검정고시 학원으로 유명한 '수도학원'에서 꾸준히 배움을 이어오셨다. 그래서 결국 고입검정고시와,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시고 대학교까지 나오셨다. 그런 아빠가 하셨던 말이 바로 술값과 글값에 대한 비유였다.
○ 술값과 글값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술값이 싸고, 글값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안주도 시키고, 술도 시키면 일인당 2만원 이상의 돈은 쉽게 주머니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아마 일인당 2만원의 돈으로 술을 마셨다고 하면, '와 싸게 마셨네'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된다.
때로는 술값이 100만원이 넘게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잘 모르지만, 건너건너 들은 바로는 나이트클럽이나 고급 양주집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비싼 술값의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글값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가는 냉정한 것 같다. 책 한권에 보통 15000원 정도 하는데, 술값을 낼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주저하며 고민하며 책을 사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책을 읽는 다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동안 얻었던 지식을 전수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의 세계에서는 많은 역사속 인물들의 지식을 체험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그런 것 치고는 책이 참 싼 것 같이 느껴진다.
○ 술과 책에 대한 아빠의 명언
아빠는 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색을 한다는 말이다. 경험한 것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살아가신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자주 말하시는 말은 마음속에 새기려고 노력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술값이 제일 비싸고, 글값이 제일 싸다'는 말일 것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아빠는 결국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나오셨다. 글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 아빠가 존경스럽고, 아빠의 지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사회적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신다.
그렇다고 술이 나쁘고, 글만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책을 사는 걸, 술마시는 것보다 아까워 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 請(청할 청)은 ❶형성문자로 请(청)은 간자(簡字), 請(청)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靑(청; 하고자 한다)으로 이루어졌다. 하고자 하는 일을 청한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請자는 '청하다'나 '바라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請자는 言(말씀 언)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청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바람과 요구를 간곡히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請자를 살펴보자. 靑자는 맑은 우물과 푸른 새싹을 그린 것으로 '푸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맑고 푸름을 뜻하는 靑자에 言자가 결합한 請자는 '깨끗하게 말하다' 즉 '말을 정중하게 하다'는 뜻이다. 請자는 본래는 '아뢰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정중히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워낙 간곡한 표현이다 보니 중국어에서는 존칭어로 쓰인다. 그래서 請(청)은 (1)청탁(請託) (2)청촉(請囑) 등의 뜻으로 ①청(請)하다 ②바라다 ③부르다 ④청탁(請託)하다 ⑤묻다 ⑥뵈다 ⑦청컨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탁할 촉(囑), 부탁할 탁(託)이다. 용례로는 상대방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일을 청구(請求), 유가증권 등의 공모 또는 매출에 응모하여 인수 계약을 신청하는 일을 청약(請約), 청하고 부탁함을 청탁(請託), 일정한 기일 안에 완성해야 할 일의 양이나 비용을 미리 정하고 그 일을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청부(請負), 경사에 손님을 초청하는 글발을 청첩(請牒), 신도에게 오라고 청하는 글을 청장(請狀), 바라는 바를 들어 주기를 청함을 청원(請願), 결혼하기를 청함을 청혼(請婚), 청촉을 하여 허락을 얻음을 청득(請得), 사람을 청하여 맞아 옴을 청래(請來), 다수의 의견으로 의결하기를 요구함을 청의(請議), 요긴하게 청함을 요청(要請), 신고하여 청구함을 신청(申請), 청하여 불러 들임을 초청(招請),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마땅한 사람을 추천하여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 또는 그렇게 함을 제청(提請), 간절히 청함을 간청(懇請), 다른 사람의 동의에 대하여 찬성하는 뜻으로 거듭 청함을 재청(再請), 무슨 일에 나설 것을 제 스스로가 청함을 자청(自請), 가시 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을 부형청죄(負荊請罪), 직접 청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거쳐서 간접으로 청한다는 말을 전지전청(轉之轉請) 등에 쓰인다.
▶️ 文(글월 문)은 ❶상형문자로 攵(문)의 본자(本字)이다. 사람 몸에 ×모양이나 心(심)자 꼴의 문신(文身)을 한 모양이다. 살갗에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 등으로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를 들이는 것을 문신이라 하고, 형벌로서 하는 수도 있지만 축하(祝賀)하는 표로도 하였다. 나중에 '무늬', '글자', '학문', '문화'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文자는 '글'이나 '문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文자는 양팔을 크게 벌린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文자의 갑골문을 보면 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가슴에 어떠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몸에 새긴 '문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文자의 본래 의미는 '몸에 새기다'였다. 그러나 文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서'나 '서적'과 같이 글을 새겨 넣은 것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文자가 이렇게 글자나 서적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糸(실 사)자를 더한 紋(무늬 문)자가 '무늬'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文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그래서 文(문)은 (1)문장(文章) (2)무(武)에 대하여 학문, 학예, 문학, 예술 등을 이르는 말 (3)어떤 명사 아래에 쓰이어 문서, 문장(글)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4)신발의 치수의 단위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글월, 문장(文章) ②어구(語句; 말의 마디나 구절), 글 ③글자 ④문서(文書) ⑤서적(書籍), 책 ⑥문체(文體)의 한 가지 ⑦채색(彩色), 빛깔 ⑧무늬 ⑨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 ⑩법도(法道), 예의(禮義) ⑪조리(條理) ⑫현상(現狀) ⑬산문(散文) ⑭결, 나뭇결 ⑮얼룩, 반점(半點) ⑯돈의 한 가지, 그 돈의 개수를 나타내는 말 ⑰신발의 치수의 단위 ⑱아름다운 외관(外觀) ⑲주문왕의 약칭(略稱) ⑳빛나다, 화려하다 ㉑아름답다, 선미(鮮美)하다 ㉒몸에 새기다 ㉓꾸미다 ㉔입묵(入墨)하다, 자자(刺字)하다 ㉕어지러워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 서(書), 글 장(章), 문서 적(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호반 무(武),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생각이나 느낌이나 사상 등을 글로 표현한 것을 문장(文章), 글자나 숫자 따위로 일정한 뜻을 나타낸 것을 문서(文書), 공적인 성격을 띤 문서나 서류를 문건(文件), 좋은 글을 가려서 뽑음을 문선(文選), 옛날의 제도나 문물을 아는 데에 증거로 되는 기록이나 서적을 문헌(文獻), 글의 성분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문맥(文脈), 글의 구절을 문구(文句), 글을 짜고 꾸미는 법칙을 문법(文法), 글을 볼 줄도 쓸 줄도 모름을 문맹(文盲),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다른 물색을 넣음 또는 그렇게 만든 몸을 문신(文身), 한 사람의 시문을 모아서 엮은 책을 문집(文集),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즉 종이와 붓과 벼루와 먹을 일컫는 말을 문방사우(文房四友), 전문식과 무략을 다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전(文武兼全), 문화의 모든 산물이 서로 오고 감을 일컫는 말을 문물교류(文物交流),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을 일컫는 말을 문과식비(文過飾非),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쳐 글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문맹퇴치(文盲退治), 문장이 썩 잘 되어서 한 점도 가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문불가점(文不加點),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는 뜻으로 규칙이나 예절이나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을 일컫는 말을 번문욕례(繁文縟禮),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사문난적(斯文亂賊),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문(創業守文),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禮(예도 례/예)는 ❶형성문자로 豊(례)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신에게 바치기 위해 그릇 위에 제사 음식을 가득 담은 모양의 뜻을 가진 豊(풍, 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제사를 풍성하게 차려 놓고 예의를 다하였다 하여 예도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禮자는 '예절'이나 '예물', '의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禮자는 示(보일 시)자와 豊(예도 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豊자는 그릇에 곡식이 가득 담겨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예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도'라는 뜻은 豊자가 먼저 쓰였었다. 고대에는 추수가 끝나면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수확한 곡식을 그릇에 가득 담아 올렸는데, 豊자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후에 豊자가 '풍성하다'나 '풍부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示자를 더한 禮자가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禮(례)는 ①예도(禮度) ②예절(禮節) ③절(남에게 공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하는 인사) ④인사 ⑤예물(禮物) ⑥의식(儀式) ⑦책의 이름(=예기禮記) ⑧경전(經典)의 이름 ⑨단술(=감주), 감주(甘酒: 엿기름을 우린 물에 밥알을 넣어 식혜처럼 삭혀서 끓인 음식) ⑩예우(禮遇)하다 ⑪신을 공경(恭敬)하다 ⑫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예의에 관한 모든 질서나 절차를 예절(禮節), 사회 생활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손하며 삼가는 말과 몸가짐을 예의(禮儀),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우(禮遇), 예법에 관한 글을 예문(禮文), 예로써 인사차 방문함을 예방(禮訪), 존경하여 찬탄함을 예찬(禮讚), 예법과 음악을 예악(禮樂), 예법을 자세히 알고 그대로 지키는 사람 또는 그러한 집안을 예가(禮家), 사례의 뜻으로 주는 물건을 예물(禮物), 예법을 따라 베푸는 식으로 결혼의 예를 올리는 의식을 예식(禮式),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대(禮待), 예법으로써 그릇된 행동을 막음을 예방(禮防), 예절과 의리를 예의(禮義), 혼인의 의례를 혼례(婚禮), 스무살이 되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고 어른이 되던 예식을 관례(冠禮), 예의에 벗어나는 짓을 함을 결례(缺禮), 볼품없는 예물이란 뜻으로 사례로 주는 약간의 돈이나 물품을 박례(薄禮), 장사지내는 예절을 장례(葬禮), 예법에 따라 조심성 있게 몸가짐을 바로함을 약례(約禮), 예의가 없음을 무례(無禮), 아내를 맞는 예를 취례(娶禮), 언행이나 금품으로써 상대방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사례(謝禮),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경례(敬禮), 말이나 동작 또는 물건으로 남에게서 받은 예를 다시 되갚는 일을 답례(答禮),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 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의와 음악이 깨지고 무너졌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예괴악붕(禮壞樂崩),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예의를 숭상하며 잘 지키는 나라를 일컫는 말을 예의지국(禮儀之國), 예의가 너무 까다로우면 오히려 혼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예번즉란(禮煩則亂), 예의는 서로 왕래하며 교제하는 것을 중히 여김을 일컫는 말을 예상왕래(禮尙往來),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말을 예불가폐(禮不可廢)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