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최고 점프슈터 '박인규'의 멋진 슛 폼
박인규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연세대학과 삼성을 거치며 75년부터 86년 아시안 게임 때까지 대표팀의 슈터로 활약했던 박인규 선수는 황유하 선수와 더불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국농구 최고의 슈터라 불리우던 포워드입니다.
이 두 선수야말로 "70년대의 이충희/김현준"이었습니다.
박인규... 아마츄어 시절의 기록이긴 했지만, 3점 슛이 없던 당시에 한 경기에서 60점 (56~58점 사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까이 득점한 득점기계였기도 하고, 80년대 삼성 시절엔 상대팀 에이스를 전담하던 에이스 스타퍼였기도 하지요.
황유하 선수가 스크린을 돌아 나온 후 캐치-앤-슛에 능한 전문슈터였던 반면, 박인규 선수는 스스로 공간을 확보하며 능동적으로 공격을 풀어나갈 줄 알았던 185cm의 포워드였습니다.
점프력과 체공력이 탁월해서 웬만해서는 상대 수비수의 블라킹에 걸리는 법이 없었고, 슛 타이밍을 수비수에게 읽혀 막히거나 하면 허리를 뒤로 완전히 제끼면서 페이더웨이 점퍼로 바꿀 수 있는 유연성도 있었으며, 페인트 존 안까지 들어온 후엔 상당히 고난이도의 더블 클러치 슛까지 자주 구사하던 선수였지요.
제가 박인규 선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만이 보유하고 있던 특이하고도 다이나믹한 점프 슛 동작 때문이었습니다.
움짤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코트바닥을 탁 차고 올라가 높은 타점에서 왼손으로 공을 완전히 감싸며 두 팔을 앞으로 쭈욱 뻗어서 쏘는 아주 독특한 점프 슛의 소유자였습니다.
1982년도 현대와 삼성의 경기장면입니다.
얼핏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점프 슛 동작과 비슷해 보이지만, 드렉슬러의 슛 동작은 그리 매끄럽거나 아름답지는 못 했습니다. 그러나 박인규 선수의 슛 동작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항상 안정적이었으며 포물선도 컸습니다.
사람마다 기호도가 달라서, 이런 슛 폼을 선호하지 않을 분들도 계시겠지만, 당시에 농구를 배우던 저로선 박인규 선수의 이 특이한 슛 폼을 따라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답니다. 점프를 높이 한 후에야 슛 동작이 이어지다 보니 공을 몇 십개 던지면 체력적으로 좀 힘에 부치더군요.
박인규 선수는 누구보다도 성실했고, 수비수로도 이름을 날렸던 올라운더였습니다. 만약 삼성에 김현준 선수가 가세하지 않았다면, 팀 전력 자체는 현대에 좀 밀렸을 지 몰라도, 팬들의 머리 속에는 이 박인규 선수가 이충희 선수와 함께 80년대 최고의 점프슈터로서 각인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박인규 선수는 김현준 선수의 입단과 함께 팀의 공격 2옵션으로 내려왔고, 경기당 15점 정도만 득점하며, 수비에 더 열심을 내는 모범적이고도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오늘, 문득 박인규 선수의 전성기 적 모습이 떠올라서, 많지 않은 그의 자료들을 뒤지고 뒤져 움짤을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이충희/김현준 시대 이전에 뛰어났던 한 슈터에 대해 짧게나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By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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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영 아쉬운분이지만 저런 시절도 있으셨군여...저 당시에는 저런 슛 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았던것 같은데 말이죠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오히려 점프슈터들이 요즘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박수교, 오동근, 이충희, 황유하, 최철권, 오세웅 등... 모두들 높이 떠올라 허리를 뒤로 제끼거나 비틀며 슛을 쏘던 득점기계들이었죠.
한국은행의 오동근 선수 참 오랫만에 들어보네요... 전 80년대 당시 약체인 산은, 한은을 응원했었습니다. 당시 선수단 다 합쳐도 7-8명이고 그나마도 은행업무보고 야간에 연습할 정도로 안습이었지만 나름대로 현대, 삼성을 상대로 잘 싸운 기억이 나네요. 산은 이도룡, 장철수, 윤철진, 한은 오동근, 황상하 등등... 추억의 이름들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Doctor J 님의 ㅎㄷㄷ한 옛 농구지식을 바탕으로 한 80년대 국내농구 얘기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요즘 국내농구는 잘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런 점프슛을 쏘는 선수가 참 없기는 하네여...닥터제이님의 예전 영상을 보면은 정말 기본기나 마무리 같은것은 예전 선수들이 더 깔끔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보았습니다.저도 박인규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박인규...선수 시절적엔 잘 모르겠지만.... 해설은 좀...
별로 멋져 보이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ㅋ..시니컬하신..ㅋ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선수 시절의 모습도 알게 되네요^^
상체를 젖혀서 쏘는것이 김민수 선수의 점프슛과도 유사하네요. 탄력이 아주 좋네요.
삼성,현대전에서 저런 점프슛으로 좋은 활약을 하셨던 장면들이 간간히 머릿속에 스쳐가네요 한골넣고 한손가락을 추켜들고 환호하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옛날 어렸을때 전 삼성을 응원하곤 했는데 같은 반의 현대팬인 친구조차도 박인규선수가 자기네편이면 좋겠다고 얘기했을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선수죠
근데 농구대잔치가 시작되고 80년대 중반이후로 현대가 많이 이겨서 그 균형은 깨졌지만 80년대초의 농구대잔치 이전의 삼성,현대전의 전적에서 근소하게 삼성이 우위를 지켰던 것으로 알고있는데 맞나요?
이충희가 입단하기 전까진 삼성이 근소하게 앞섰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김동광의 기업은행이 70년대 말부터 하향세를 걸었고, 그 때 창단과 함께 신동찬, 박인규, 조동우, 안준호, 진효준, 이성원, 이동균, 김형년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대거 스카웃한 삼성이 실업농구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충희가 현대로 가면서부터는 현대가 우위를 점했습니다. 삼성도 임정명과 김현준을 얻었지만, 이충희의 현대에 우위를 점하진 못 했습니다. 이후로 84-85 한 시즌을 빼면 양 팀 간의 대결에서 현대가 항상 근소하게나마 우세했을 겁니다. 그 다음에 기아의 시대가 열렸지요.
이충희 입단후에도 두팀이 비슷비슷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농구대잔치 원년 83-84시즌 현대 우승, 84-85시즌 삼성 우승, 그런데 85-86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와 중앙대가 맞붙습니다.. 그때 한기범, 김유택, 허재, 강정수 라인의 중앙대가 정말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현대에게 아깝게 2승1패로 집니다.. 그 이후부터는 현대가 삼성에게 근소하게 앞섰던 걸로 기억하지만 중앙대와 연세대의 스타들을 스카웃해간 기아자동차의 시대로 접어들었죠..
80년대 초반 삼성에서 김현준과 쌍포를 이루어 득점을 많이 하긴 했지만, 상대팀 에이스인 이충희가 던지면 다 들어갈 것 같은 공포를 유발하던 것에 비하면 썩 믿음직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84년인가 3점라인이 도입된 이후로 위력이 반감했던 것 같고요... 당시 삼성을 응원하던 저로서는 박인규 개똥슛 그만하고 임정명이나 안준호한테 패스나 해라..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자기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 낼 수 있던 박인규 선수가 있었기에 임정명이나 안준호가 확률높은 골대 근처 점퍼를 던질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3점 라인이 도입된 후에 위력이 반감한 것 같다'에 저도 동의합니다. 박인규 선수의 슛 사정거리는 3점 라인 바로 안쪽 부근이었어요. 이전부터 3점 라인이 존재했었다면 사정거리도 늘어났겠지만, 박인규 선수를 포함, 이미 20대 대부분을 3점 없이 뛰어왔던 선수들이 많았지요. 그리고, 확실히 김현준 선수가 가세하면서부턴 슛 감과 자신감 자체를 많이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박인규 선수도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엔 이충희를 연상시키는 위력을 발휘했었어요. 그래서 제목도 "70년대 최고 점프슈터"라고 한 것이죠. 농구 대잔치 출범 이후의 박인규 선수는 좀 답답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88년인가 삼성이 우승 기아가 준우승한 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의 이충희 선수가 무릎부상이었던 해였나 모르겠네요. 이충희 선수가 한두달 결장하다가 딱 삼성전에만 나와서 걸어다니며 삼성을 농락한 경기가 기억나네요. 박인규 선수는 삼성을 응원하는 제 입장에서는 슛폼(왼손의 위치와 괘적)이 아름다웠지만 클린슛 아니면 안들어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충희 선수는 림 한가운데가 아니더라도 골이 통과되지만 삼성 선수들은 클린슛이 아니면 되돌아 나오는 경향이 강했어요.
안양코치하실때 많이봤는데...
박인규 오세웅 등도 결국 부상을 이기지 못했죠.
아..오세웅 삼성전자의 그 오세웅~ 김현준, 김진, 오세웅.. 손..누구인가? 등이 주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오세웅 참 탄력 좋았죠. 김진은 3점이 좋았고 김현준은..전설까지는 아니고..
손영기입니다.
추억이 새롭습니다. 현대, 삼성 라이벌 시절 이유 없이 삼성을 응원했었는데 경기는 현대쪽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충희 정말 대단했지요. 삼성은 김현준, 박인규 두 선수가 모두 좋은 슛터였는데 제 기억으론 박인규 선수는 지금으로 치자면 3점 슛터라기 보다는 미들점퍼가 아주 좋았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안정정인 외곽능력을 보여주었던 선수로 그리고 슛폼이 좋았던 선수로 기억하는데 영상을 보니 슛폼이 좀^^
탄력이 매우 좋았던 선수였습니다. 아주 오래된 인터뷰가 기억나는데, 연속해서 점프하여 림을 20회 이상 잡을 정도로 점프능력이 뛰어났었다고 합니다. 박인규 선수의 실제 키는 182~3 정도일 것입니다.
내 친구 저렇게 슛쏘는데 ㅋ 저렇게 쏘니까 슛타점이 ㅎㄷㄷ함
이분은 nba농구 해설로써 농구해설계의 한확을 그으셨다는...
무엇보다 맨밑의 짤방..꽉꽉 들어찬 관중이 눈에 들어오네요.움짤만으로도 체육관의 열기가 느껴질정도 ㄷㄷ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시절입니다. 온갖 광고들을 통해서 농구대잔치 홍보를 했고, 거의 매경기가 TV로 생중계되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 근데 아래움짤은 임정명선수의 움짤이군요 임정명선수가 마치 매직존슨처럼 코스트-투-코스트로 길게 리딩드리블을 치고 나가며 트레일러인 박인규선수에게 패스하는데요 센터인 임정명선수가 포가같은 플레이를 했던 기억이 저에게는 많진 않은데요 전 기억이 잘안나지만 임정명선수가 플레이메이킹을 많이 했나요?
꽤 했습니다. 주로 활동하던 공간은 페인트존이었지만,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후 가끔씩 기습적으로 공을 몰고 나가 전진패스를 해줄 때도 있었고, 신동찬 선수 게시물의 움짤에서도 나오듯이 하이포스트에서 안쪽으로 킬 패스를 넣어주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런 플레이를 자주 한 것은 아닙니다. 임정명 선수는 신동찬이나 김현준, 박인규 선수가 막혔을 경우, 공격의 활로를 뚫기 위해 과감한 플레이들을 해주는 에너자이저이자 터프가이 역할을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