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조 창작 후기
지난 삼월 초순 초등학교 동기회 회장이 단체 카톡방을 개설해, 이전부터 열어두었던 밴드에는 나는 들지 않아 모르던 고향 친구들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모교는 여느 시골이 다 그렇듯 진작 폐교되어 읍내 학교와 통합했다. 그 이후도 동창회는 맥이 이어져 여태껏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봄이면 고향에서 총회가 열리고 가을에는 전세버스로 소풍을 다녀온다.
코로나가 오던 무렵 회장과 총무를 맡은 친구는 펜데믹으로 제한받던 모임이 풀리자 서서히 연락이 오갔다. 임원진 임기가 2년인데 연장해 올봄까지 맡다가 다른 친구들이 받았다. 직전 회장은 임기 도중 총무까지 겸했는데, 총무가 와병으로 임무를 수행할 여건이 못되어서였다. 지난봄 회장으로부터 총무가 지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 입원했다는 소식을 단체 카톡에 올려줘 알았다.
나는 총무 병실로 문병을 가볼 여건이 못 되어 단체 카톡방에 위로의 글과 함께 꽃을 소재로 한 자작 시조를 남겼다. “부엽토 쌓인 숲은 아직은 한뎃바람 / 돌부리 틈새에서 가랑잎 이불 삼아 / 기다린 볕살 퍼지자 밀어 올린 꽃대다 // 온기가 식을까 봐 솜털로 제 몸 감싸 / 작년에 피던 자리 올해도 어김없이 / 연분홍 꽃봉오리로 봄소식을 전한다” ‘노루귀’가 그날 넘긴 글이다.
중환자실 입원한 친구는 작품을 열어볼 처지가 못 되었겠지만 안부가 궁금했던 다른 친구들의 호응이 좋았다. 내가 산행 중에 찍어둔 야생화 노루귀의 사진을 같이 보냈으니 봄소식과 함께 의외로 반응이 신선했던 모양이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나는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는 의미로 매일 아침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아내 한 수씩 시조를 남겨 초등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나의 일상은 산책이나 산행에서 본 풍광을 사진으로 남겨 몇몇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보내 안부를 나누곤 했다. 올봄 초등 친구들과 단체 카톡방이 생겨 보내는 시조를 기존 지기들에 카톡을 보낼 때 같이 보냈더니 시진만 넘길 때보다 역시 반향이 괜찮은 듯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생활 속 그간 남겨가는 일기와 함께 시조까지 보태져 두 갈래로 꾸준하게 이어 오고 있다.
나의 1일 1수 시조 창작 도전은 봄을 지나 한여름이 된 지금껏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내일이면 칠월이 가고 달이 바뀌어 팔월이 온다. 그간 몇 수를 지었는지 오늘 헤아려보니 146수에 이르렀다. 작품은 3행 단시조에서 늘어난 2연 6행의 연시조로 창작한다. 시조의 글감은 주로 자연에서 취하는데 때에 맞춰 피는 들꽃이 가장 많고 두 발로 현장에서 확인한 풍광이다.
시조 창작을 시작해서 한 달 지난 사월 어느 날이었다. 아침 8시 카톡 보낼 시간이 다가와도 작품이 생성되지 않아 초조했다. 전날 저녁이나 늦어도 이튿날 새벽이면 2연 6행이 완성되어야 하는데 그날은 날이 밝아와도 준비되지 않아 고심이었다. 아침밥을 먹는 도중 온통 시조 6행을 떠올렸는데 마침 전날 고성 옥천사를 다녀와 ‘윤이월 자방루’를 극적으로 남겨 단절을 면했다.
그새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오월 어느 날 앞서 언급했던 투병 중인 초등 친구는 안타깝게도 생을 하직하고 말았다. 친구는 생의 끈을 놓았지만 단체 카톡방의 창은 여전히 열려 활성화되어 있다. 내가 아침마다 풍경 사진과 함께 올리는 시조는 어김없이 그날그날 넘어가고 있다. 어제는 불모산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내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 남긴 ‘곰절 산문’이었다.
“여항산 맥이 뻗은 수리봉 산언저리 / 임진란 승병 기지 한국전 최후 보루 / 의림사 당간지주와 지켜봤던 탑이다 // 국사봉 뭉친 바위 지자기 솟구치고 / 암반에 흐르는 물 음이온 뿜어나와 / 청류에 발을 담그니 그 자리가 선계다” ‘여름 의림 계곡’의 전문이다. 이 작품은 엊그제 내가 의림사 계곡을 다녀와 남긴 시조로 오늘 아침에 초등 친구들 카톡방으로 넘긴 시조 작품이다. 23.07.30